작란(作亂)하는 아이가 작품(作品)을 만든다
2012. 3. 3. 08:49ㆍ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O2/유영만이 풀어보는 생각지도]작란(作亂)하는 아이가 작품(作品)을 만든다
동아일보 입력 2012.03.03 03:05 수정 2012.03.03 03:06
[동아일보]
르네상스 시대의 수많은 창조활동은 '작란(作亂)'에서 비롯됐다. 작란은 말 그대로 난동(亂)을 일으키는(作) 행위다. 난동(亂動)은 기존의 당연한 것, 즉 상식과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지고 시비를 걸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활동을 말한다.
인류 역사상 변화를 주도하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한 사람들은 거의가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들이었다. 이들은 이제까지 아무도 제기하지 못한 질문과 그에 대한 색다른 해결책을 찾아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기 방식대로 세계를 재창조하면서 기존의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어린 시절 놀이가 부족했던 사람은 학업 성적이 높아도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질 수 있으며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동아일보DB |
문제아는 언제나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작심을 하고 사고(事故)를 치면서 색다른 사고(思考) 실험을 반복한다. 어제와 다른 사고(事故)를 쳐야 기존 사고(思考)에 변화가 일어난다. 사고(事故)치는 사고(思考)야말로 기존의 생각에 시비를 걸고 난동을 일으키는 작란이다.
창조는 놀고 싶은 유희 충동 속에서 생긴다.
- 카를 융(스위스의 심리학자)
'작란'은 사실 '장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표준말은 아니지만, 국어사전에도 나온다. 장난삼아 해보는 일에서 생각지도 못한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지 않는가. 장난치다 보면 재미가 있어지고, 재미있게 장난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전과 다른 시도를 즐기게 된다.
이처럼 장난이란 것은 예상외로 큰 의미와 역할을 가지고 있다.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란 말을 만들어낸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에 따르면 장난, 즉 놀이는 인간의 생리적 본성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란 존재의 특성은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의 이성보다, 호모 루덴스의 놀이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했다.
장난의 가장 큰 역할은 창조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놀이는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기 방식대로 세계를 창조하고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면서 틀에 갇힌 기존의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어린이는 놀이 속에서 세계를 재배열하고 자신을 더 기쁘게 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고 말했다. 게다가 놀이는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을, 지루함보다는 즐거움을, 절망보다는 희망을 가져다줌으로써 '즐거운 변화'의 촉매가 된다.
당연히 예술적 창작의 근저에는 언제나 놀이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놀이를 통한 창작의 세계가 제도화된 교육을 받으면서 점차 사라진다는 것이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대로 칠할래요. 학교에 가면요, 거기서 원하는 대로 칠해야 하잖아요." 미국의 네 살짜리 어린이가 한 말이다.('놀이, 유년기의 예술', 버지니아 글래스고 코스트)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열쇠는 장난의 시작은 호기심이란 점에 있다. 아이들은, 아니 다 큰 어른이라도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즐기려는 마음을 가진다면 창의성의 쇠퇴를 막을 수 있다. 축음기, 영사기, 백열등을 발명한 에디슨. 1093개의 발명품에 대한 특허를 얻었던 그는 호기심으로 무장한 발명왕이었다. 달걀을 품어 병아리를 만들겠다는 호기심 어린 '장난'이 에디슨을 전대미문의 발명가로 만든 '작란'이었다.
놀이 부족하면 정서적 문제 생길 수 있어
한편 장난, 즉 놀이는 삶에 현실적이면서도 중요한 도움을 주기도 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제트추진연구소(JPL)는 어린 시절 손을 이용한 놀이를 적게 한 사람들은 성인이 된 후 전반적으로 문제해결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리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더라도 말이다.
어린 시절 놀이, 특히 몸으로 하는 놀이가 부족했던 사람들은 인지와 정서 발달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미국 국립놀이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Play)의 설립자인 스튜어트 브라운은 살인범을 연구하던 중 놀이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1966년 텍사스대 학생이던 찰스 휘트먼은 27층 건물에 올라가 총기를 난사했다. 그가 경찰에 사살되기 전까지 그로 인해 14명이 숨지고 31명이 부상을 당했다. 브라운은 휘트먼이 어린 시절 놀이의 경험이 매우 부족했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며 놀고 싶은 아이들에게 대부분의 부모들은 '놀지 말고 공부하라'는 말로 충고한다. 물론 공부를 안 하는 것은 문제지만 놀지 않는 것 역시 자녀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젠 부모들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들에게 장난은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재미있게 즐기는 '놀이'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장난은 버르장머리 없는 '놀림'이다. 어른이 조금이라도 '철없어 보이는 짓'을 하면 "지금 장난하냐"란 말을 듣거나 "놀고 있네"란 비아냥거림을 듣는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장난도 못 치고 놀지도 못하는 가운데 오로지 어제와 비슷한 방법으로 틀에 박힌 일만 하는 재미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어떤가? 당장 오늘부터라도 놀이에 대한 생각을 바꿔볼 만하지 않은가?
한양대 교수(교육공학)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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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르네상스 시대의 수많은 창조활동은 '작란(作亂)'에서 비롯됐다. 작란은 말 그대로 난동(亂)을 일으키는(作) 행위다. 난동(亂動)은 기존의 당연한 것, 즉 상식과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지고 시비를 걸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활동을 말한다.
인류 역사상 변화를 주도하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한 사람들은 거의가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들이었다. 이들은 이제까지 아무도 제기하지 못한 질문과 그에 대한 색다른 해결책을 찾아냈다.
세상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과 (새로운 것이 아닌, 주어진)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사람으로 나뉜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모든 것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자기만의 문제의식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답을 찾는 사람은 다른 이의 사고 논리에 갇혀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주어진 과제를 풀 것인지만 고민한다.
문제아는 언제나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작심을 하고 사고(事故)를 치면서 색다른 사고(思考) 실험을 반복한다. 어제와 다른 사고(事故)를 쳐야 기존 사고(思考)에 변화가 일어난다. 사고(事故)치는 사고(思考)야말로 기존의 생각에 시비를 걸고 난동을 일으키는 작란이다.
창조는 놀고 싶은 유희 충동 속에서 생긴다.
- 카를 융(스위스의 심리학자)
'작란'은 사실 '장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표준말은 아니지만, 국어사전에도 나온다. 장난삼아 해보는 일에서 생각지도 못한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지 않는가. 장난치다 보면 재미가 있어지고, 재미있게 장난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전과 다른 시도를 즐기게 된다.
이처럼 장난이란 것은 예상외로 큰 의미와 역할을 가지고 있다.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란 말을 만들어낸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에 따르면 장난, 즉 놀이는 인간의 생리적 본성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란 존재의 특성은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의 이성보다, 호모 루덴스의 놀이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했다.
장난의 가장 큰 역할은 창조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놀이는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기 방식대로 세계를 창조하고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면서 틀에 갇힌 기존의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어린이는 놀이 속에서 세계를 재배열하고 자신을 더 기쁘게 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고 말했다. 게다가 놀이는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을, 지루함보다는 즐거움을, 절망보다는 희망을 가져다줌으로써 '즐거운 변화'의 촉매가 된다.
당연히 예술적 창작의 근저에는 언제나 놀이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놀이를 통한 창작의 세계가 제도화된 교육을 받으면서 점차 사라진다는 것이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대로 칠할래요. 학교에 가면요, 거기서 원하는 대로 칠해야 하잖아요." 미국의 네 살짜리 어린이가 한 말이다.('놀이, 유년기의 예술', 버지니아 글래스고 코스트)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열쇠는 장난의 시작은 호기심이란 점에 있다. 아이들은, 아니 다 큰 어른이라도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즐기려는 마음을 가진다면 창의성의 쇠퇴를 막을 수 있다. 축음기, 영사기, 백열등을 발명한 에디슨. 1093개의 발명품에 대한 특허를 얻었던 그는 호기심으로 무장한 발명왕이었다. 달걀을 품어 병아리를 만들겠다는 호기심 어린 '장난'이 에디슨을 전대미문의 발명가로 만든 '작란'이었다.
놀이 부족하면 정서적 문제 생길 수 있어
한편 장난, 즉 놀이는 삶에 현실적이면서도 중요한 도움을 주기도 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제트추진연구소(JPL)는 어린 시절 손을 이용한 놀이를 적게 한 사람들은 성인이 된 후 전반적으로 문제해결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리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더라도 말이다.
어린 시절 놀이, 특히 몸으로 하는 놀이가 부족했던 사람들은 인지와 정서 발달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미국 국립놀이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Play)의 설립자인 스튜어트 브라운은 살인범을 연구하던 중 놀이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1966년 텍사스대 학생이던 찰스 휘트먼은 27층 건물에 올라가 총기를 난사했다. 그가 경찰에 사살되기 전까지 그로 인해 14명이 숨지고 31명이 부상을 당했다. 브라운은 휘트먼이 어린 시절 놀이의 경험이 매우 부족했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며 놀고 싶은 아이들에게 대부분의 부모들은 '놀지 말고 공부하라'는 말로 충고한다. 물론 공부를 안 하는 것은 문제지만 놀지 않는 것 역시 자녀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젠 부모들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들에게 장난은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재미있게 즐기는 '놀이'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장난은 버르장머리 없는 '놀림'이다. 어른이 조금이라도 '철없어 보이는 짓'을 하면 "지금 장난하냐"란 말을 듣거나 "놀고 있네"란 비아냥거림을 듣는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장난도 못 치고 놀지도 못하는 가운데 오로지 어제와 비슷한 방법으로 틀에 박힌 일만 하는 재미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어떤가? 당장 오늘부터라도 놀이에 대한 생각을 바꿔볼 만하지 않은가?
한양대 교수(교육공학) 010000@hanyang.ac.kr
르네상스 시대의 수많은 창조활동은 '작란(作亂)'에서 비롯됐다. 작란은 말 그대로 난동(亂)을 일으키는(作) 행위다. 난동(亂動)은 기존의 당연한 것, 즉 상식과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지고 시비를 걸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활동을 말한다.
인류 역사상 변화를 주도하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한 사람들은 거의가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들이었다. 이들은 이제까지 아무도 제기하지 못한 질문과 그에 대한 색다른 해결책을 찾아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기 방식대로 세계를 재창조하면서 기존의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어린 시절 놀이가 부족했던 사람은 학업 성적이 높아도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질 수 있으며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동아일보DB |
문제아는 언제나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작심을 하고 사고(事故)를 치면서 색다른 사고(思考) 실험을 반복한다. 어제와 다른 사고(事故)를 쳐야 기존 사고(思考)에 변화가 일어난다. 사고(事故)치는 사고(思考)야말로 기존의 생각에 시비를 걸고 난동을 일으키는 작란이다.
창조는 놀고 싶은 유희 충동 속에서 생긴다.
- 카를 융(스위스의 심리학자)
'작란'은 사실 '장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표준말은 아니지만, 국어사전에도 나온다. 장난삼아 해보는 일에서 생각지도 못한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지 않는가. 장난치다 보면 재미가 있어지고, 재미있게 장난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전과 다른 시도를 즐기게 된다.
이처럼 장난이란 것은 예상외로 큰 의미와 역할을 가지고 있다.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란 말을 만들어낸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에 따르면 장난, 즉 놀이는 인간의 생리적 본성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란 존재의 특성은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의 이성보다, 호모 루덴스의 놀이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했다.
장난의 가장 큰 역할은 창조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놀이는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기 방식대로 세계를 창조하고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면서 틀에 갇힌 기존의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어린이는 놀이 속에서 세계를 재배열하고 자신을 더 기쁘게 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고 말했다. 게다가 놀이는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을, 지루함보다는 즐거움을, 절망보다는 희망을 가져다줌으로써 '즐거운 변화'의 촉매가 된다.
당연히 예술적 창작의 근저에는 언제나 놀이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놀이를 통한 창작의 세계가 제도화된 교육을 받으면서 점차 사라진다는 것이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대로 칠할래요. 학교에 가면요, 거기서 원하는 대로 칠해야 하잖아요." 미국의 네 살짜리 어린이가 한 말이다.('놀이, 유년기의 예술', 버지니아 글래스고 코스트)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열쇠는 장난의 시작은 호기심이란 점에 있다. 아이들은, 아니 다 큰 어른이라도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즐기려는 마음을 가진다면 창의성의 쇠퇴를 막을 수 있다. 축음기, 영사기, 백열등을 발명한 에디슨. 1093개의 발명품에 대한 특허를 얻었던 그는 호기심으로 무장한 발명왕이었다. 달걀을 품어 병아리를 만들겠다는 호기심 어린 '장난'이 에디슨을 전대미문의 발명가로 만든 '작란'이었다.
놀이 부족하면 정서적 문제 생길 수 있어
한편 장난, 즉 놀이는 삶에 현실적이면서도 중요한 도움을 주기도 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제트추진연구소(JPL)는 어린 시절 손을 이용한 놀이를 적게 한 사람들은 성인이 된 후 전반적으로 문제해결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리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더라도 말이다.
어린 시절 놀이, 특히 몸으로 하는 놀이가 부족했던 사람들은 인지와 정서 발달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미국 국립놀이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Play)의 설립자인 스튜어트 브라운은 살인범을 연구하던 중 놀이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1966년 텍사스대 학생이던 찰스 휘트먼은 27층 건물에 올라가 총기를 난사했다. 그가 경찰에 사살되기 전까지 그로 인해 14명이 숨지고 31명이 부상을 당했다. 브라운은 휘트먼이 어린 시절 놀이의 경험이 매우 부족했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며 놀고 싶은 아이들에게 대부분의 부모들은 '놀지 말고 공부하라'는 말로 충고한다. 물론 공부를 안 하는 것은 문제지만 놀지 않는 것 역시 자녀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젠 부모들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들에게 장난은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재미있게 즐기는 '놀이'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장난은 버르장머리 없는 '놀림'이다. 어른이 조금이라도 '철없어 보이는 짓'을 하면 "지금 장난하냐"란 말을 듣거나 "놀고 있네"란 비아냥거림을 듣는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장난도 못 치고 놀지도 못하는 가운데 오로지 어제와 비슷한 방법으로 틀에 박힌 일만 하는 재미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어떤가? 당장 오늘부터라도 놀이에 대한 생각을 바꿔볼 만하지 않은가?
한양대 교수(교육공학)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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