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깨버린 명품제국 `구찌`의 변신

2012. 3. 3. 17:07분야별 성공 스토리

고정관념 깨버린 명품제국 `구찌`의 변신

명품업은 '으쓱하는 기분'을 파는 것
"명품이라고 꼭 비싸야 하나…
20대도 살 수 있는 엔트리급<명품에 진입하는 첫 단계> 가죽 가방 모델 강화할 것"

구찌 工房의 명품 사령관 글로벌 명품 브랜드 구찌의 최고 사령관인 패트리지오 디 마르코(Di Marco) 회장이 이 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구찌 소 유의 카셀리나 공방(工房)에 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91년 역사를 지닌 구찌의 장인정신 을 복원하고 현대적 첨단 감각 과 구찌 특유의 전통적 가치와 미를 접목시켜 다른 명품 브랜드들과 확연하게 차별화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블룸버그

1897년 열여섯 살 된 이탈리아 청년이 런던 사보이호텔에 짐꾼으로 취직했다. 이 호텔은 유럽 재력가들의 사교 모임이 자주 열리던 곳. 마구(馬具)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이 청년은 짐을 들어다 주며 손님들의 최고급 가죽 가방을 눈여겨 관찰했다. 디자인과 박음질 등….

이탈리아로 돌아온 이 청년은 공방에 들어가 20년간 가죽 기술을 익힌 다음 1921년 고향인 피렌체에 자기 이름을 딴 가게를 열었다. 피렌체는 물론 독일, 영국을 돌며 구입한 질 좋은 가죽으로 그가 만든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가죽 제품은 피렌체·토스카나를 넘어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청년의 이름은 구찌오 구찌(Guccio Gucci).

재클린 케네디,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같은 세기적 로맨스를 흩뿌린 명사(名士·celebrity)들의 패션 상징이 된 구찌의 창업자이다. 지난해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업체인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세계 100대 브랜드' 순위를 보면, 구찌는 39위로 아르마니(93위)와 페라리(99위)를 제치고 이탈리아의 '넘버 1' 브랜드로 등극했다. 브랜드 가치는 87억6300만달러(약 9조8500억원)로 세계 명품 브랜드를 통틀어 루이비통에 이어 둘째다.

프라다·루이비통·셀린느 등 명품 브랜드서만 24년 일해
"품질이 전부가 아니야 당신 제품을 산 사람이살 때도, 산 다음에도 왕처럼 느끼게 해줘야"

구찌는 현재 전 세계 376개 매장에서 정규 직원 8300여명을 포함해 5만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명품 제국(帝國)'이다. 총괄 CEO인 패트리지오 디 마르코(Di Marco·49) 회장은 프라다·루이비통·셀린느 등 명품 업계에서만 24년 동안 일한 명장(名將)이다. 38세이던 2001년 당시 구찌와 같이 PPR그룹(루이비통 등을 소유한 LVMH와 함께 양대 글로벌 명품·패션그룹)에 속해 있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CEO로 전격 발탁된 그는 도산(倒産) 일보직전이던 보테가 베네타의 매출을 8년 만에 10배나 늘리는 발군의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가 진행 중이던 2009년 1월 "1970년대 구찌의 최전성기를 재현하라"는 특명을 받고 구찌 회장에 영입된 그는 지난해 유럽 재정 위기라는 대형 악재(惡材)까지 이겨내며 구찌호(號)의 상승세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해에 구찌는 2010년 대비 24% 정도 영업이익이 늘었으며, 매출액은 창업 90년 만에 처음 31억유로(약 4조5000억원)를 돌파했다.

그 주역인 디 마르코 회장을 Weekly BIZ 지면으로 끌어내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기자가 지금까지 어떤 CEO들을 만나왔는지 자세한 이력을 요구했고, 인터뷰 질문지도 네댓 번 재작성을 요청할 만큼 '완벽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다.

마침내 지난달 22일 Weekly BIZ가 디 마르코 회장을 만나기 위해 밀라노 본사 사무실을 찾았다. 그가 한국의 독자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글로벌 명품 기업 경영의 최고 고수(高手)인 그의 명품관(觀)이 먼저 궁금했다. 그의 대답은 약간 의외였다.

"명품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은 품질이지만 서비스도 아주 중요해요. 제품을 살 때 왕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야 하지요. 예컨대 구찌 옷을 입고, 구찌 핸드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해지는 느낌. 명품은 그런 만족감과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해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패션쇼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구찌 본사 4층에 있는 회장 집무실에서 디 마르코 회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해왔다. 짙은 하늘색 슈트에 남색 넥타이, 갈색 구두를 신은 전형적인 이탈리아 미남(美男)이었다. 큰 키(185cm 안팎)에 군살 없이 매끈한 체형의 그를 보는 순간, "혹시 패션모델을 하다가 CEO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넓고 현대적인 그의 집무실에선 고풍스러운 밀라노 시내 건물의 낮은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책상에는 지난해 발간한 구찌 90주년 기념 서적이 여러 권 쌓여 있었고, 의자 뒤로 낡은 흑백사진이 여러 장 걸려 있었다.

올해 회장 4년차인 그에게 지금 가장 주력하는 경영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자, '브랜드 재정립(re-positioning)'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고급 제품(super high segments)과 중간급 명품 브랜드(mid-high end brand)를 동시에 추진하고자 합니다. 수퍼 명품의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대중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데 힘쓰고 있어요."

그는 "구찌를 대중 친화적인 명품 브랜드(mid-high end brand)로 자리매김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케팅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것은 성공 가능성이 낮지 않은가. 더구나 대중의 머리에 명품과 대중성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심겠다는 시도는 더더욱 어렵다. 마케팅의 거장(巨匠)인 잭 트라웃(Trout)은 '포지셔닝 이론'에서 "차별화를 통해 고객의 마음에 특정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게 효과적이다"라고 했다.

볼보는 안전, 페라리는 속도, 벤츠는 기술력 같은 식으로 한 가지 이미지를 줄기차게 밀고 나가야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글로벌 명품 기업들이 예외 없이 고가(高價·하이엔드) 제품 경쟁을 하는 최근 흐름과도 맞지 않아 보인다. 디 마르코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