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학생회장, 1억 빚지자 학교 그만두고…
2012. 3. 25. 10:55ㆍ분야별 성공 스토리
입력: 2012-03-24 17:51 / 수정: 2012-03-24 17:53
정수환 대표는 CJ 등에 직접 찾아가 20여 개의 대기업으로부터 미리 광고 영업을 수주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만 스물여섯의 나이에 벌써 사업을 해 보고 두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 번째 사업에 도전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 정수환 앱디스코 대표는 대학생 시절 창업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 시작한 사업에서 짧은 시간 안에 정착하고 있다. 애드라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정수환 대표를 만났다.
창업자들을 만나다 보면 별별 사람이 다 나오지만, 이제는 드디어 운동선수 출신까지 나왔다. 정수환 대표는 중학생까지 태권도 선수였다.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공부를 해도 그는 제대로 했다. 요즘처럼 아주 어릴 때부터 영재 교육이다, 과외다 하는 분위기에 비하면 한참 늦은 셈이다. 그래도 열심히 해 고려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2005년이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그가 느낀 것은 학생들의 목소리가 학교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심했다.
태권도 선수에서 고려대 총학생회장까지
그는 스스로를 ‘하고 싶은 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고 했다. 이런 성격은 나중에 사업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고집스럽다는 단점이 있지만 판단이 맞을 때는 확실한 의지와 방향성을 갖고 일을 추진할 수 있다.
총학생회장이 된 것도 가장 큰 이유는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뭐든 악착같이 달라붙어 제대로 하고야 마는 그 성격과 추진력이 그를 총학생회장으로 만들었다. 2008년 그는 고려대 총학생회장이 됐다. 하지만 총학생회장 경험은 그에게 새로운 숙제를 안겨줬다. 사회 공헌 활동과 이 활동을 청년들의 단체를 통해 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더 강하게 했기 때문이다.
2009년 청년 단체 활동을 시작한 그는 어찌 보면 처음으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게 된 것 같다. “금전적인 필요성을 느꼈어요. 돈이 없으면 사회 공헌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그래서 외주 개발 일을 맡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러다가 기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매력적이라는 걸 알게 됐죠.” 2010년 대학생 정수환은 그래서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사업 경험이 없이 개발 용역만 동료들과 해본 경험이 전부였던 그에겐 경험자의 조언이 필요했다. 카카오 이제범 대표는 그에게 사업을 위한 멘토가 돼줬다. 잠시 카카오에서 일하며 사업을 한다는 것, 대표이사가 된다는 것에 대해 어깨너머로 배운 그는 법인을 설립했다. 청년 단체 활동을 하면서 외주 개발을 맡아 모은 돈 3000만 원이 사업 밑천이 됐다. “개인 사업으로 시작하면 흐지부지될까봐 주식회사로 시작했어요. 처음엔 왕십리에 하루에 1만 원 내면 사무실을 대여해 주는 곳을 썼죠. 결국엔 안암동 고려대 앞에 사무실을 차리게 됐어요.”
경험이 없다는 것, 그리고 사업을 하기로 했지만 아직 현실에 대한 감각이 부족했다는 것은 그에게 실패를 경험하게 했다. 사회 공헌 쪽에 관심이 많아 ‘선행을 릴레이하자’라고 하는 사회적 기업의 성격을 지닌 사업이 그의 첫 일이었다. 경험 부족에 사업 성격이 모호한 점이 맞물려 첫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바로 다시 도전에 나섰다. 2010년 10월 소셜 커머스 서비스 해피즌을 시작했다.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고 한다. 첫 사업을 실패한 데다 소셜 커머스를 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게 이유였다. “저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죠. 그런데도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도 주위 사람들의 만류 때문인지 그는 친구들과 함께 시작하면서 시한을 걸었다. “3개월 해 보고 안 되면 접자.” 늦게 하다 보니 투자 받기도 쉽지 않았고 지출만 늘었다. 결국 3개월 만에 사업을 접게 됐다. 2011년 초였다. 이것저것 합하면 1억 원 넘는 빚만 지게 됐다. 같이 일하던 친구들도 모두 그를 떠났다.
두 번의 실패…‘애드라떼에 모든 것을 걸었다’
실패는 혹독했다. “정말 아침에 일어나 해를 보기가 싫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그때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의 특징은 힘든 가운데도 뭔가 활동을 하면서 재기를 모색한다는 점이다. 그 역시 그랬다. 대학 동기인 황원준 씨를 만나 창업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최신 트렌드를 공부했다. 둘은 결국 창업하게 된다. “해피즌 당시에 정말 열심히 했지만 기본적인 경험이 부족해 초기에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실패를 곱씹던 그는 문득 그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광고하는 것이 아직 국내에서 본격화되지 않았고 해외에서는 가능성을 이미 보여준 분야라는 것에 착안했다. 그래서 그는 2011년 7월 앱디스코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사업 직전 학교를 그만뒀다. 졸업을 불과 한 학기 남겨뒀는데 말이다.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 약해지고 결단을 못 내릴 것 같아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승부사적인 면도 엿보인다. 물론 빚을 갚아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그는 그래서 ‘이 사업에 목숨을 걸었다’고 했다. 애드라떼의 키워드는 영업이었다. 사업 시작 전 투자를 받으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직접 영업을 뛰면서 광고를 수주했다. CJ 등 20여 개의 대기업으로부터 미리 광고 영업을 수주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광고를 보고 카페라떼 한 잔’이 처음 내세운 모토였다.
그는 광고의 흐름이 소비자에게 혜택을 돌려주는 쪽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독창적인 모델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발로 뛰는 영업력으로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애드라떼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면 광고주들이 올린 광고를 볼 수 있다.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기 때문에 단순 광고는 아니다. 광고를 보면 적립금이 쌓인다. 친구를 초대하면 500원씩 현금이 생긴다. 이것으로 진짜 커피를 사먹을 수 있다. 이런 보상성 때문에 애드라떼는 지난해 8월 출시된 이후 4개월여 만에 누적 다운로드 수 100만 건을 달성했다. 일본에도 진출해 앱스토어 무료 분야 전체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해외에서의 성공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임원기 한국경제 IT모바일부 기자 wonkis@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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