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둔갑한 해외 범죄자들, 복지까지 누린다

2012. 4. 24. 09:18이슈 뉴스스크랩

한국인 둔갑한 해외 범죄자들, 복지까지 누린다

  • 석남준 기자
  • 입력 : 2012.04.24 03:10

    [인우보증제 惡用… 범죄 피난 노린 '유령 한국인' 증가]
    현행법상 보증인 2명 있으면 수십년 지나도 출생신고 가능
    의료보험·수급자 혜택받고 孤兒 행세하며 국적 얻기도

    지난해 9월까지 10년 동안 중국인 이모(64)씨는 한국인으로 살았다. 1997년 관광비자로 입국한 이씨는 체류기간이 만료돼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됐다. 하지만 나이 53세였던 지난 2001년 그는 구청에 1948년생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그의 손엔 한국 국민을 입증하는 주민등록증까지 쥐어졌다. 이름은 중국 이름을 한국 발음 그대로 사용했다. 불법체류자에서 한국인으로 변신한 이씨는 병원에 갈 때마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것은 물론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매달 30만원의 생활보조금까지 받았다.

    이민특수조사대에 덜미가 잡혀 강제 출국당하기 전까지 이씨가 10년 동안 한국인으로 행세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현행 제도의 허점 때문이다. 현행법은 태어난 직후든, 태어난 지 수십년이 흐른 뒤든 주변 사람 2명만 보증을 서면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사망신고도 마찬가지다. 보증인이 직접 갈 필요도 없이 보증인의 주민등록증과 도장만 빌리면 가능하다. 이른바 '인우(隣友)보증 제도'다.

    일제시대부터 존재했던 이 제도는 병원이 없는 지역의 주민들이 집에서 출산하거나 사망했을 때 신고를 쉽게 하도록 만들어졌다. 문제는 주민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국적 세탁과 살인 은폐 등에 악용되고 있다는 것. 최근 경찰청, 법무부 등이 이 제도의 허점을 노리는 이들을 잇달아 적발했다.

    지난 3일 인천공항출입국관리소에 덜미가 잡힌 중국인 진모(57)씨는 19년 동안 1인 2역을 해왔다. 진씨는 37세였던 지난 1993년 아는 사람 2명을 보증인으로 내세워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한국 이름은 김○한으로 만들었다. 중국에 처자식이 있었지만 한국인 신분으로 다른 중국인 2명과 두 번 더 결혼했다. 진씨와 결혼한 중국인은 모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진씨를 포함해 '유령 한국인'이 3명이나 생긴 것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중국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중국 공안에 수배된 뒤 한국에 입국해 호적을 취득한 중국인 백모(35)씨가 적발되기도 했다. 백씨는 국내에서 태어난 고아(孤兒)인 것처럼 행세하며 인우보증을 통해 국적을 얻었다.

    법무부 이민특수조사대 이동권 대장은 "이렇게 허술한 출생, 사망신고 제도가 존속된다면 한국은 중국이나 동남아의 범죄자들에게 신분 세탁처로 불릴 수 있다"면서 "특히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쉽게 한국 국적을 취득해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각종 복지혜택까지 누리게 되면 '외국인 혐오증' 등 각종 사회문제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망신고는 더욱 심각하다.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것으로 위장하는 보험사기에 이용되거나, 타살(他殺)이 자연사(自然死)로 위장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해 전체 사망자의 약 7%(1만7000여명)가 사망진단서나 시체검안서 없이 인우보증으로만 사망 처리되고 있다. 2009년 충남 보령의 시골마을에서 이모(당시 71세)씨가 사망하자, 가족들은 병원 대신 마을 이장의 확인을 받아 장례절차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결과 남편이 부인을 청산가리로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제도로 인해 '완전범죄'가 될 뻔한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중석 법의학부장은 "시신이 없는 살인 사건 등 억울한 죽음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인우보증제도를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했다. 서 부장은 또 "OECD 국가 중 인우보증제도가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법의학회에서 국회에 제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인우(隣友)보증 제도

    병원의 출생·사망증명서 대신 지인의 보증만을 통해 사망이나 출생신고를 처리할 수 있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