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호떡장사` 방송 출연 몇 번 하더니 결국

2012. 5. 15. 09:19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입력: 2012-05-14 16:58 / 수정: 2012-05-15 04:55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C로그로 보내기

동원F&B 식품사업부 인턴을 거쳐 정식 채용된 박규인 씨가 서울 양재동 동원그룹 본사에서 참치캔 제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호떡 사세요, 호떡. 맛있는 호떡이요….”

2005년 12월 겨울 서강대 정문 앞. 포장마차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손을 호호 불면서도 마음만은 뿌듯했다. 내가 만든 호떡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그 희열이란…. 경영학과 친구랑 단 둘이서 시작한 호떡장사는 생각보다 잘 됐다. 초기 자본은 200만원. 시작은 미미했으나 갈수록 손님이 늘었다. MBC, SBS 방송까지 나가는 영광도 얻었다. 일명 ‘맨발로 뛰는 청년들’ 코너에. 방송 출연 후 밀려드는 손님에 날은 추워도 신이 났다. 심지어 호떡을 배달해 달라는 전화까지 올 정도였다. ‘잘 나가던’ 호떡장사는 이듬해 4월 군입대까지 5개월간 했다. 난생 처음 부모님 도움 없이 시작한 사업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호떡장사를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땀의 가치’였다. ‘열심히 하면 뭘 해도 굶어죽진 않겠구나!’ 

동원F&B에서 건강식품 마케팅을 맡고 있는 박규인 씨(28)의 대학시절 이야기다. 입사한 지 1년반이 지났지만 7년 전 호떡장사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에선 빛이 났다. 183㎝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 커다란 지구본을 들고 1시간 넘게 이어진 사진촬영에도 그저 싱글벙글 거릴 뿐이었다. 지난 주말 이뤄진 인터뷰에는 동원그룹 입사를 희망하는 취업준비생 정혁화·정하연 씨와 캠퍼스 리크루팅으로 바쁜 이 회사 HR팀의 전진호 과장이 함께했다.

▷도대체 어떤 호떡이기에….

“부산호떡을 벤치마킹했어요. 땅콩·호두·잣 등의 견과류를 호떡 표면에 발랐지요. 원가가 더 들어가 마진은 줄었지만 ‘박리다매’ 전략이었죠.”

▷호떡장사로 배운 경영철학도 생겼을 것 같은데.

“옆에서 장사하는 떡볶이, 소시지, 꼬치 포장마차를 보면서 오히려 배웠어요. 재료 구입부터 판매까지 작지만 나름의 원칙과 상도가 있더라고요.”

▷돈도 좀 벌었겠어요.

“그때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 경험이었어요. 그래도 방세 내고 밥값은 벌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술 한잔 살 정도였죠.”

박씨는 호떡장사를 하기 전까지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모범생이었다. 공부도 곧잘 해 대구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다. 그는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제가 주도적으로 해본 첫 경험이었다”며 “이게 이후의 삶에 자신감과 에너지를 줬다”고 말했다.

▷동원그룹은 어떻게 지원하게 됐죠.

“사실 저는 ‘무(無)스펙’입니다. 내세울 게 하나도 없었어요. 부끄럽지만 면접보러 오라는 곳은 동원이 유일했지요.”(박씨의 학점은 4.3 만점에 3.1, 그리고 토익은 845점. 스펙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럼 여기저기 원서를 많이 냈나요.

“아니요. 기업마다 인재상이 다 다른데, 그 기업에 맞춰 꾸며서 자기소개서 쓰는 게 싫었어요. 하지만, 제가 원서를 낸 곳엔 소신을 갖고 썼어요.”

▷어떤 자소서에 눈길이 갑니까.(인사과장에게 물었다.)

“다른 기업엔 안 맞아도 우리 기업엔 맞는 사람이 있어요. 카피하지 말고 자신만의 작은 에피소드라도 진심을 담으면 불러보고 싶어져요. 왜 그 일을 했는지 묻고 싶어서….”

전진호 과장은 채용 과정에서 본 특이한 경력의 합격자를 소개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2년간 명절 때마다 동원 제품 알바를 한 친구가 기억납니다. 하도 자주 하고 열심이어서 판매팀장도 알 정도였죠. 면접 때 그가 ‘동원에서 안 뽑아주면 경쟁사에 갈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데 면접관들이 그를 안뽑고 배기겠어요. 또 한 친구는 시골에 살면서도 동원 유제품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 후기를 써냈더라고요. 시간과 물질적 투자를 한 게 제겐 관심과 열정으로 보였어요. 결국 당락은 큰 것보다 사소한 것에서 갈립니다.”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 동원그룹에서 인턴을 한 뒤 채용됐는데.

“농땡이는 안피웠어요. 매장 오픈 땐 물품 진열과 잡무를 했지만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그런 모습을 선배들이 좋게 봐주셨어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분을 만난 덕을 본 것 같아요.”

▷인턴의 정규 채용 비율은 어느 정도죠.

“전체 인턴 중 80%가 최종 면접 제의를 받고 그중 80%를 채용합니다. 회사는 인턴들의 의지를 봅니다. 딴생각 하는 친구는 다 보여요. 그리고 인턴들도 스스로 ‘과연 이 일이 나와 맞는지’를 자문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인턴 입사자의 조기 퇴사율이 일반 공채보다 훨씬 낮아요.”(전 과장)

▷인턴의 하루 일과는 어땠어요.

“오전 8시30분 출근, 오후 6시30분 퇴근입니다. 건강식품사업부에서 GNC비타민 영업을 했지요. 앞으로 성장성이 큰 분야라는 것을 느꼈고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입사 후 박씨는 GNC파트의 영업·기획을 거쳐 지금은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다.)

▷영업 지원에 전공은 어느 정도 중요한가요.

“영업은 전공을 안 봅니다. 대신 ‘내가 사장이다’ 생각하고 오너십을 갖고 일해야 원가 개념도 생기고 품질에 대한 관심도 생깁니다. 자기주도적인 사람이 중요합니다. 영업은 어려워요. 그만큼 자기 목표가 확실해야 합니다. 롤모델을 가지면 안 지치죠.”(이번에 뽑는 인턴도 대부분 영업파트에 근무하게 된다.)

함께 자리한 취업준비생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박씨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학시절 놀기만 한 것 같아 후회스럽다”며 “수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라”고 말했다. 전진호 과장도 “회사 명함에 현혹돼서는 안 됩니다. 명함 줄 때 창피하지 않으면 된다는 게 기준이면 안 됩니다. 창피하고 우쭐한 것은 한순간입니다.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기억나는 선생님에 대해 물어보자 박씨는 대학 4학년 마지막 수업을 떠올렸다. “교수님이 무술을 배울 때 사부님께 물어봤대요. ‘어떻게 해야 무술을 잘 할 수 있나요’라고 묻자 사부님 말씀이 ‘정권을 하루에 1000번씩 하라’고 했대요. 결국 기본을 충실히 하라는 말씀이었던 거죠. 사회 진출을 앞둔 우리에게 기본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지금도 일이 안 풀릴 때 그 말씀이 제 마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