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권 하루에 1장만 사"…고물가가 불러온 '구내식당 식권전쟁'

2012. 5. 16. 08:48이슈 뉴스스크랩

"식권 하루에 1장만 사"…고물가가 불러온 '구내식당 식권전쟁'

뉴시스 | 이재우 | 입력 2012.05.16 05:01

 

【서울=뉴시스】이재우 기자 = 서울대병원 직원 A씨는 지난달부터 출근 시간을 앞당겼다. 매일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직원식당에 들려 식권을 사야하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식권을 대량구매할 수 있어 이런 번거로움이 없었지만 서울대병원이 지난달부터 이를 금지하고 직원증을 소지한 직원에게만 1인당 하루 1매만 판매하면서 생활이 바뀐 것이다.

대량구매 금지 사유는 지난 1월1일 급식 질 향상을 이유로 식대를 인상한 이후 용역업체에 보전해주는 비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달 8000만원이 급식업체에 지급됐다고 서울대병원 노조는 전했다.

노조에 따르면 병원은 식사시간마다 총무과 직원들을 동원해 직원만 식권을 사용하는지 관리감독도 하고 있다.

A씨는 "직원증 확인하랴 접수하랴 식당 줄이 줄어들지를 않는다"며 "직원이 싸게 사서 외부인한테 팔까봐 한 장만 사게 하는 것 같은데 직원을 믿지 못하는 병원이 한심할 뿐이다"고 꼬집었다.

물가는 매년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실질임금은 제자리걸음을 걸으면서 주머니가 얄팍해진 시민들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구내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

때문에 저렴하게 식사를 하려는 시민들과 비용을 낮추려는 구내식당 운영단체 간에 일종의 '식권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견기업 B사 경리사원 C씨는 최근 구내식당 식권을 사려는 직원들이 증가하면서 업무량이 부쩍 늘었다.

B사는 매달 초 식권구매희망자를 조사해 식권을 일괄 판매한다. C씨 업무 중 하나가 구매희망자 조사다.

B사는 1식당 5000원인 구내식당 식대를 사원 복지 차원에서 3000원을 지원한다. 구매희망자는 2000원만 내면 된다.

그러나 경기가 좋을 때는 비싸더라도 상대적으로 맛있는 외부 식당을 찾는 직원들이 많아 식권 구매희망자가 적었다.

하지만 최근 고물가가 계속되면서 맛 대신 가격을 택하는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식권 판매량이 급증했다.

C씨는 "예년에 비해 식권 판매량이 20~30% 늘었다"면서 "회사가 근접식카드(RFID)를 이용한 식수관리시스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입 명분은 식권 신청 과정의 번거로움과 분실 위험 방지 등이지만 식권을 외부인에게 양도하는 것을 막고 실제 사용 여부를 파악해 식비 보조금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것이 실제 목적이라고 C씨는 귀띔했다.

구내식당이나 지원제도가 없는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나 일반 시민들은 더 비싼 가격을 내야만 식권을 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와 서울시립대, 한국외대 등 대학들은 외부인에게 구내식당 식권을 500~1000원 높여 받는다. 서울시청과 중구청, 용산구청, 종로경찰서, 마포경찰서 등 관공서도 1000~1500원을 더 받는다.

서울시청처럼 점심시간 직원이 식사를 끝낸 이후에야 일반인 출입을 허용하고 아침과 저녁 식사시간에는 출입 자체를 금지하는 공공기관도 많다.

한 구청 관계자는 "직원 복지 개념이라 인건비와 재료비 등을 제하면 구내식당은 항상 적자"라면서 "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외부인에게 가격 차별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시민들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직원들과 차별가격제를 시행하는데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불만이 고조되다 보니 식권 가격을 차별한 공공기관이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내 식당에서 식권 3장을 구매한 60대 남성 D씨는 민원인 식권값(지난해 기준 5000원)이 법원 직원들보다 2배나 비싼 것을 알자 격분했다.

D씨는 '민원인의 식권값을 직원보다 고액으로 책정한 것은 불공평하다'며 서울중앙지법에 법원후생시설운영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2월 1심에서 패소했다.

ironn108@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