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가는 CEO를 구경하자?

2012. 6. 17. 09:52C.E.O 경영 자료

[Weekly BIZ] 회사에서 나가는 CEO를 구경하자?

조선비즈

  • 스위스 IMD교수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조직에 대한 불만 쌓일 때 항의하거나 떠나게 돼 충성심이 변수로 작용
교체 빈번한 CEO
불확실한 시대 외로운 리더 개인의 평판·가치관 따라 퇴사 후 미래를 대비

로사 전 교수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한 가정의 가장, 학교의 학생, 회사의 직원 또는 고객, 나라의 시민, 정당의 당원 등 어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불만족이 쌓여갈 때 그 구성원은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여 불만을 표출하거나(항의·voice) 또는 관계를 청산하고자 하여 떠나게 되는데(이탈·exit), 여기에 충성심(loyalty)이라는 변수가 있다. 1970년대 경제학자인 앨버트 허쉬만(Hirschman)의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voice, exit, loyalty)' 이론이 오늘날 리더십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하루에도 수많은 CEO가 떠나고 있다. 올해 4월 미국에서 가장 큰 전자제품 소매 회사인 베스트 바이(Best Buy)의 브라이언 던(Dunn)이 취임 2년을 겨우 넘기고 사임을 했고, 5월엔 야후(Yahoo)의 스콧 톰슨(Thompson)이 취임한 지 4개월도 안 되어 떠났으며, 6월엔 의류 브랜드 에스프리(Esprit)의 로널드 밴 더 비스(Vis) 가 사임 예고를 했고, 호주럭비리그연맹(ARLC)의 데이비드 갤롭(Gallop)도 넉 달 만에 사임했다. 스포츠 감독들이 시즌 중에 해임되는 경우처럼 최고경영자들이 임기 중에 떠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재 미국 CEO들의 평균 재임 기간이 4년을 밑도는 가운데 합병이나 위기, 재정 문제의 표면상 이유로 또는 이사회 임원들과 갈등 등 비공개된 이유로 1년 안에 떠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이때 공식화된 이별법은 대부분 황금 낙하산(golden parachute·경영진이 임기 전에 회사를 떠나야 할 경우를 대비해 막대한 보상을 받도록 한 시스템) 을 챙기고 미리 동의한 내용의 인터뷰를 하며 조용히 회사를 떠나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벌써 6번째 CEO를 맞이한 HP는 컴팩 합병에 책임지고 해임된 칼리 피오리나(Fiorina)에 4200만달러, 후임자 마크 허드(Hurd)는 스캔들로 떠나는 데에 1220만달러, 이후에 온 레오 아포테커(Apotheker)를 11개월 만에 해임하는 데 또 2520만달러, 즉 2005년 이후 CEO들을 해임하는 데 든 보상금만 합이 8000만달러이다.

최근에는 사랑하지만 기치관이 안 맞아서 떠나는 경우의 특별한 이별법도 보인다. 지난 3월에 골드만삭스의 파생상품 부문 부사장인 그렉 스미스(Smith)는 뉴욕 타임스지에 '나는 왜 골드만삭스를 떠나는가'(Why I am leaving Goldman Sachs)라는 글을 실음으로써 가장 공개적인 방법으로 사임했다. 스탠퍼드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33세의 남아프리카 태생인 그는 12년 동안 중견 이사직까지 올라간 회사생활을 청산하고 '오늘이 골드만삭스에서 나의 마지막 날이다'고 시작하는 글에서 골드만삭스가 '도덕적'으로 파산했음을 알렸다.

"나는 고객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해서는 단 1분도 소비하지 않고 그 고객들의 돈을 뜯어낼 궁리만 한다"고 양심선언을 하면서 회사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승진의 지름길이 된 문화가 슬펐고 회사의 개선책을 알리려 했지만 지도부에서 듣지 않아서 사임과 동시에 그 기고문을 쓰는 것이 마지막으로 회사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골드만삭스는 바로 사실과 다르다는 답신을 냈지만 스미스의 기사 이후 골드만의 주가는 3.4 % 내려갔으며 이미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던 평판에 더욱 손상을 입게 되었다.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기업 임원들은 장기 전략가일까, 총알받이일까? 임원들을 단기 수익 창출이나 위기 모면의 도구로 쓰는 기업은 사회가 요구하는 지속 경영과 동반 성장을 전략적으로 해나갈 수 없다. 특히 공기업 또는 공기업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국내 대기업은 2년마다 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경영진이 바뀌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기업 임원들은 매년이 아닌 분기별 평가를 받고 언제든지 나갈 준비를 하도록 요구받는다. 한편 출구 보상은 미국보다 낮다. 이 불확실성 시대의 외로운 리더들은 개인의 평판과 가치관의 일치를 이탈(exit)법에 반영해 퇴사 후의 미래를 대비하고자 할 것이다.

동반 성장의 핵심 요소는 갑(甲)과 을(乙) 사이의 보텀업(bottom up·하의 상달)식 의사소통이다. 정부의 주도와 대기업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틀이 아니라 대기업과 협력업체들이 함께 정의를 내리고, 정부는 조정의 역할을 하고, 기업 내 동반 성장 전담 부서는 순위 관리에 급급하기보다 협력회사들의 목소리(voice)를 듣고 윈·윈(win·win)전략을 창출해내는 방향으로 동반 성장 방법론을 재고해야 한다.

가치관의 공유와 애정이 줄어든 갑에 대한 의무적인 헌신(normative commitment)은 결국 갑과 을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단오를 맞이하여 기원전 3세기에 중국 초나라의 굴원(屈原)이 부패한 세상을 한탄하며 강에 몸을 던지기 전 어부와 읊은 시(詩) 가운데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 하는 말을 되새겨 본다. '내 발을 씻는다'는 것을 이탈(exit)에 비유한다면 잘 떠나는 것도 사랑하는 한 방법이다.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