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비틀… 쌩쌩… 쾅'… 산책길 무법자 酒전거

2012. 6. 21. 08:46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비틀비틀… 쌩쌩… 쾅'… 산책길 무법자 酒전거

자전거족 4명 중 1명 음주…산책객들에 ‘공포의 대상’
술 파는 노점상마저 생겨…사고 나도 처벌 규정 없어
세계일보 | 입력 2012.06.20 19:21 | 수정 2012.06.21 08:14

 

[세계일보]

19일 오후 9시쯤 서울 한강공원 내 잠실선착장 앞 쉼터. 자전거 동호회 회원으로 보이는 서너 명이 자전거를 옆에 세워두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맥주캔과 페트, 소주병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이날 오후 9시부터 11시까지 선착장 앞 편의점 등을 취재진이 살펴본 결과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 가운데 4명 중 1명꼴로 술을 구입해 마시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데 술 마시면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술을 마셔도 (자전거로) 달리면서 찬바람을 쐬면 금세 깨기 때문에 괜찮다"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술을 마시던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자전거를 탈 채비를 했다. 그중 한 명은 취기가 오르는 듯 비틀거리며 출발한 뒤 이내 산책나온 시민과 자전거 속으로 섞여들어갔다.

이 같은 음주 자전거가 여름철 산책로를 위협하고 있다. '가볍게 마신 술은 금방 깬다'며 음주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자전거 운전자들과 달리 시민들은 불안하다.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공원뿐 아니라 중랑천, 홍제천, 불광천, 안양천 등 지천 부근에서도 자전거를 타는 도중 술을 마시는 운전자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다리 밑이나 쉼터 등에는 아이스박스 등에 술을 갖고 와 판매하는 노점상마저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주부 박모(36·중랑구)씨는 "며칠 전에는 여섯 살 딸과 함께 산책을 나왔다가 술을 마신 사람이 모는 자전거가 비틀거리며 달려와 사고를 당할 뻔했다"며 "주말에 자전거도로변을 걷다 보면 술냄새가 진동한다"고 말했다.

음주 자전거 운전은 사고로 이어진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 집에서 강남구에 있는 회사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하던 A씨는 지난 5월 오후 큰 사고를 당했다.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남성이 비틀비틀하더니 순식간에 A씨를 덮쳤기 때문이다. A씨는 이 사고로 왼쪽 팔꿈치뼈가 산산조각 나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사고를 일으킨 남성은 음주상태였지만 경찰에서는 '어떤 처벌도 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차'에 해당하지만, 음주에 관한 규정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A씨는 병원 치료비 등을 모두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17일 경기도 일산 호수공원 내에서 한 시민이 자전거에 막걸리를 꽂아둔 채 잠들어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서울에서 일어난 자전거 관련 교통사고는 2007년 2956건에서 2011년 4121건으로 늘어났다. 최근 자전거 열풍과 함께 동호회 회원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음주 라이딩으로 인한 안전사고도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음주로 인한 자전거 사고는 통계조차 잡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음주 자전거 운전에 대한 단속기준 마련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008년에는 경찰이 자전거 음주처벌 규정을 만든다는 발표를 했다가 '음주 보행자도 처벌할 거냐'는 등의 비판여론에 부닥쳐 곧바로 백지화하기도 했다.

임동국 서울시 보행자전거과장은 "자전거는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시민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기 어렵다"며 "음주 자전거를 포함한 자전거 안전사고 사례집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