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괴로운 한국病' 결혼예단 없애자

2012. 7. 2. 08:37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모두가 괴로운 한국病' 결혼예단 없애자

[TV조선 공동기획·제4부] [1]
혼부부 24% "예물·예단 때문에 심각한 위기 겪어"… 35% "결혼비용 중 가장 아깝다"
조선일보 | 김수혜 기자 | 입력 2012.07.02 03:16

 

회사원 박승준(가명·37)·이혜미(가명·35)씨는 작년 6월 예식장 예약하고 청첩장까지 다 찍어놓은 상태에서 결혼식 한 달 전에 파혼했다.

처음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친구 소개로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을 약속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준비하는 단계가 되자 사사건건 충돌했다.

당장 신혼집 문제에서 엇나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 저축으론 모자라 예비 신랑 부모가 1억원을 줬다. 애써 마련한 돈이지만 예비 신부 부모는 성에 차지 않았다. "아는 사람 딸은 집 사오는 남자와 결혼했는데…."

↑ [조선일보]

다음은 예단(禮緞) 차례였다. 예비 신부 부모가 비용을 대서 양가 어머니와 예비부부가 270만원어치 한복을 맞췄다. 190만원짜리 예비 신랑 양복도 샀다. 이와 별도로 현금 500만원에 이불·반상기·은수저를 곁들여 예비 신랑댁에 보냈다. 여기서 갈등이 커졌다.

예비 신랑 부모가 화를 냈다. 예비 시어머니가 예비 며느리를 불러 "현금의 절반을 (신부 옷·화장품 값으로) 되돌려 주는 게 관행이라던데, 너희 집에서 보낸 액수(500만원)가 워낙 적어 한 푼도 못 돌려주겠다"고 했다. 양가는 예식장 대신 법정에서 만났다. 예비 신부가 "결혼이 깨져 상처받았으니 5000만원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냈다. 법원은 "둘 다 잘못해서 깨진 결혼이니 그럴 필요 없다"고 기각했다.

예물과 예단은 서로 잘 살아보자고 주고받는 일종의 선물이다. 하지만 이걸 주고받다 오히려 결혼에 금이 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조선일보 와 여성가족부 가 월드리서치에 의뢰해 최근 3년 내에 결혼한 전국 신혼부부 300명을 조사한 결과 예비 사돈끼리 벌이는 '예단 전쟁'은 이미 위험수위에 찰랑거리고 있었다. 조사 결과 신혼부부들이 전체 결혼비용 중 가장 아깝다고 답한 항목 1위가 예물·예단이었다(35.3%). 결혼을 준비하면서 예물·예단 때문에 심각한 순간을 겪었다는 사람이 네 쌍 중 한 쌍(23.9%)에 달했다. 전체 열 쌍 중 한 쌍(9.9%)은 "예물·예단 갈등 때문에 이혼·파혼·결혼 연기 등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려한 적이 있다"고 했다. 예물·예단을 둘러싼 갈등은 서민 가정(22.1%)보다 중산층 가정(24.8%)에서, 중산층 가정보다 유복한 가정(28.6%)에서 더욱 많았다. 정말 돈이 없어서 생기는 갈등이 아니라 잘못된 결혼문화 때문에 불거지는 '한국 병(病)'이라는 얘기다.

강학중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은 "요즘 결혼이 거의 '돈 놓고 돈 먹기' 수준으로 전락했다"면서 "잘못된 혼례문화를 고치려면 예단을 아예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