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숨통’과 ‘편법’ 사이…대출모집인 아슬아슬 줄타기

2012. 7. 5. 09:02이슈 뉴스스크랩

[한겨레]가계빚 1000조원 시대

대출모집인이란

은행·저축은행·할부금융(캐피털·신용카드)·보험사와 계약을 맺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대출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상담 업무를 맡는다. '**금융, 고객님 한도 1000만원까지(무담보·무보증·무방문·무서류). 당일대출 바로. 신청 1번' 따위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당사자다. 지난해 말 현재 전국은행연합회·여신금융협회·저축은행중앙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 등 각 금융회사 협회에 등록된 대출모집인은 모두 2만2055명이다.

대출모집인 통한 대출 53조원
금융권 신규 가계대출의 27%


모집인들 최대 8~9% 수수료 수익
대출이자 상승 요인으로 작용


'감시 사각지대' 노린 불법업자들
명의 도용에 별도 수수료 '꿀꺽'


지난달 29일 금요일 오전 서울 도심의 시중은행 건물에 위치한 ㄱ업체의 사무실. 고객과 통화하는 직원 50여명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이 업체엔 은행 자회사 출신의 6~7년 이상 경력자부터 인터넷을 통한 수시모집으로 들어온 신입까지 100여명의 직원이 있다. 이들은 저축은행의 위탁을 받아 대출 고객을 모아 연결해주는 일을 하는 '대출모집인'이다. 가계부채 1000조 시대의 한 단면이다.

대출모집인을 통한 가계대출이 늘면서 이들의 영업 양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관련 법규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이 커지고, 불법 업자들까지 늘고 있어 고객과 현장의 모집인들은 저마다 혼란을 호소한다. 이들이 지난해 중개한 대출액수는 53조원으로, 이 제도를 이용하는 금융회사 전체 가계대출의 27%에 이른다.

이들을 둘러싼 대표적 난맥상으로 '1인1사 전속'이 있다. 현재 대출모집인에 대한 모범 규준에서는 한 모집인이 한 금융사의 상품만 연결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하지만 고객의 상황에 따라 다른 회사 상품을 소개해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업체 사장은 "3000만원이 필요한 고객이 왔는데, 우리 회사와 계약한 저축은행은 30%가 넘는 이자에 3000만원까지를, 다른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에서는 더 낮은 이자에 2500만원까지 가능할 경우, 그쪽에 고객을 소개해주고 별도 알선비를 받는 경우가 있다"며 "규준대로 하면 뻔히 다른 데 가면 몇%에 얼마를 뽑을 수 있는지 서로 잘 알면서도 소개해주면 안 되고, 내 수당을 생각하면 알면서도 모른 척해야 하는 게 지금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사무실을 쓰지만 법인을 5~6개로 쪼개 여러 금융회사의 상품을 안내해주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이들의 임금 체계가 전적으로 수수료에 의지하는 데 기인한다. 대개 기본급 없이 1년 계약직으로 활동한다. 저축은행 대출모집인은 평균 7%, 할부금융은 5%, 은행은 0.5%, 보험은 0.4%대의 수수료를 계약 금융회사로부터 받는다. 이에 따라 이들의 분포가 변하기도 한다. 한때 보험설계사가 자격증 개념으로 대출모집인으로 등록하는 게 유행이었으나, 수수료가 저축은행 등에 비해 낮자 요즘엔 관심이 주춤하고 있다는 게 업계 평가다. 반면 저축은행으로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한 저축은행의 대출모집인 관리자는 "5%대 수수료에서, 저축은행 신규 시장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 후발주자인 저축은행이 들어오면서 수수료를 많게는 8~9%까지 주는 곳들이 생겼다"며 "그만큼 고객의 이자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들의 영업 행태는 편법을 넘나들기도 한다. 요즘 저신용 다중채무 고객에게 유행인 '통대환'(통째로 대출 갈아타기)이 그 예다. 저축은행과 캐피털 여러 곳에서 대출받은 뒤 이자를 제때 내지 못한 고객은 추가대출을 받기 힘들고, 연봉 4000만원 이상인 경우 바꿔드림론 등으로 갈아타기도 어렵다. 대부업체나 사채업자를 찾아가려던 이 고객에게 대출모집인은 기존 대출을 대신 먼저 갚아주고 제1, 제2 금융권에서 대출받을 수 있게 안내한다. 고객으로부터 수수료를 직접 받는 것은 불건전 행위다. 업계에서는 "상환 수수료와 추가 대출 수수료, 이자를 모두 계산해도 기존 이자 때보다 이득이다"며 "수요가 있을 때 어떻게 하냐"고 되묻는다.

법인에서는 대외 홍보를 잘 하지 않는다. 금융당국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다. 100명 이상 소속된 4~5개 대형 업체 중 하나인 ㄱ업체엔 인터넷 누리집이 없다. 사무실 건물 밖에 눈에 띄는 간판도 달지 않았다. 이들은 "걸면 다 걸린다"고 말한다. 고객의 정보를 축적하는 것도 안 된다. 사전 동의 없이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거는 것도 금지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케이블 티브이 광고를 하던 대형 저축은행들도 최근 영업정지 위기 사태를 겪으며 광고비 집행을 많게는 70% 이상 줄였다.

게다가 미등록 '불법' 업자들까지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대출모집인의 명의와 협회 등록번호를 도용해 수만건씩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안 되는 걸 되게 만드는 것'이라는 식의 감언이설로 고객으로부터 별도의 수수료를 챙기기도 한다. 불법 업자들의 모집 접점이 넓다 보니 일부 등록 모집인들 사이에선 불법 업자들로부터 고객을 소개받고 수수료를 주는 '재위탁' 행위마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담보대출을 안내하고 있는 대출모집인은 "그나마 2~3년 전만 해도 전화 영업이 잘 됐는데 요즘 불법이 판을 치다 보니 영업이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또다른 모집인은 "영업을 뛰며 하나의 시장을 만든 측면도 있는데 불법 위주로 비치면서 '서민금융 악화의 주범'으로만 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송경화 기자freehw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