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엔 하루 5억 걷었는데, 지금은 1억도 안돼요”

2012. 7. 11. 08:46분야별 성공 스토리

내수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국민은행 동대문 신평화 지점 은행원들이 9일 오전 시장 점포를 돌며 파출수납 서비스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파출수납’ 따라가 본 동대문시장 경기

새벽 장사 끝낸 상인들
입금 돕는 ‘이동 은행원’
해마다 기우는 체감경기 절감
돈뭉치 건네는 손보다
“갈수록 힘들다” 하소연 늘어
수납조도 2조에서 1조로 줄어

 

“사장님, 저 왔습니다. 오늘은 장사 좀 되셨어요?”

“우리집 패스(통과)! 딴 데는 좀 어때?”

9일 새벽 6시, 은행 문을 나선 서울 동대문 국민은행 신평화지점 임민웅(27) 계장은 밤샘 장사를 마치고 정리 중인 동대문시장 도매상 센터 ‘아트 프라자’를 찾았다. 자기 상체만 한 크로스백을 들쳐 메고 있는 임 계장의 바로 옆엔 청원경찰이 항상 붙어 있다. 가방엔 교환용 5000원짜리 잔돈 50장과 1000원짜리 잔돈 100장, 정리를 마친 통장 100여개가 들어있다. 왼쪽 손가락 세 개엔 돈을 묶을 노란 고무줄 10여개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가게를 비우기 어려운 동대문시장 사장들의 입금을 돕는 걸어다니는 은행원, 파출 수납원이다.

임 계장이 매일 새벽 출근하자마자 찾는 뉴존, 유어스, 아트 프라자는 전날 저녁 8시에 문을 열어 전국 각지에서 온 소매상에 옷을 팔고 아침에 문을 닫는다. 그때 찾아가는 점포들에는 적막함과 북적댐이 공존한다. 장사를 일찍 마친 가게 사장은 흰 천으로 가게 입구를 가리고 옷더미 사이에서 잠들어 있고, 그 옆 한창 정리 중인 점포의 사장은 영수증을 분류하고 돈을 세느라 바쁘다. 늦은 발걸음을 한 소매상과 눈을 맞추고, ‘밀당’(고객과 밀고 당기며 흥정하는) 중인 점포는 그냥 조용히 지나가는 게 예의다. 건물 계단 중간에 있는 수납대에는 퇴근 전 이른 아침을 배달시켜 비운 이들의 빈 그릇이 쌓인다.

옷가지를 포개느라 바쁜 사장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한 임 계장은 익숙한 듯 가게 한구석의 사각 휴지상자에서 돈을 꺼내 세기 시작한다. “이공팔, 맞지요? 잔돈 바꾸실 거 있으세요?”, “응, 7장, 천원짜리로.” 옆 점포에 금액이 들리지 않게 말하는 것은 이곳 현장 업무의 불문율이다. ‘돈 세는 소리도 조심해달라’는 사장도 있다. 서로 금액을 확인해 고객 보관용 ‘무통장입금증’ 수첩과 수거용 통장에 적는다. 대개 5~6년 이상 신뢰관계를 쌓은 단골집이라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30여 점포의 돈을 걷어 은행으로 돌아오기까지 한 시간 동안 그의 등은 땀에 흠뻑 젖는다. 은행의 돈 세는 기계에 넣어 다시 확인한 뒤 통장에 입금하면 그의 업무는 끝이다. 오전 10시쯤 정리하는 상가들엔 오전 8시반쯤, 전날 밤 12시에 열어 낮에 닫는 상가들엔 오전 11시쯤 들른다.

파출 수납 3년차인 임 계장의 현장 체감 경기는 신문 기사 속 그것보다 빠르다. “3년 전에는 요즘 같은 여름 비수기에도 한 바퀴 돌면 1억5000만원이 넘고, 하루에 많으면 최고 5억원도 걷혔죠. 요즘은 하루 돌아도 1억원이 안 되는 날이 많아요.” 내수 경기 침체, 인터넷 쇼핑몰의 활성화, 중국 저가 상품들의 공략…. 각자 보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도매상들의 공통된 목소리는 “갈수록 힘들다”이다. 특히 인터넷에 익숙지 않은 40∼50대 사장들의 체감 정도가 더 크다. “오늘은 밤새 사람이 별로 없었어, 조용했어.”, “어제 잔돈 바꿔준 거 아직 남았어. 손님이 많아야 잔돈도 나가는데.” 손을 타 테두리가 하얗게 드러난, 노란 국민은행 통장을 만지작거리며 사장들의 하소연을 듣는 것도 그의 일과 중 하나이다.

2007년 이 지점에 온 차상훈 팀장의 눈에 비친 동대문 경기는 “금융위기 이후 매해 10%정도씩 하락세”다. “처음 왔을 땐 새벽 6시에 문닫는 곳이 많았는데, 최근엔 (두 시간 이른) 4시에 마감하는 데도 많습니다.” 장사가 잘 되면 직원들이 있고, 잘 안 되면 사장이 아침까지 지키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후자가 다수다. 새벽 6시 시작하는 이 은행 파출 수납도 원래 2명씩 2개조가 돌았지만, 지난해부턴 1개조로 줄였다. 하루 250여개 점포를 도는데, 낮 시간대 지점에 직접 오는 고객은 50∼100명 사이다. 주로 방문 점포에서 펀드 권유 등 ‘영업’을 해야 하는데, 밤새 장사를 마치고 들어가려는 사장들을 상대로 하기가 녹록지 않다. 요즘은 신규·확장 점포가 늘지 않으니 대출 고객도 많지 않다.

1991년 5월 출장소 형태로 문을 연 신평화지점은 1993년께부터 이 ‘찾아가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민은행 안에서는 ‘전국 1177개 지점 중 가장 먼저 문을 여는 곳’으로 불린다. 파출 수납이 당장 눈에 띄는 이익으로 이어지진 않지만, 기존 고객들과 형성된 관계를 생각하면 쉽게 없앨 수도 없다는 게 이 지점의 고민이다. 1997년 외환위기때 잠시 없앴는데 반발이 컸다. 현재 동대문시장에서는 신한은행, 우리은행, 신협, 새마을금고, 수협 등이 이 같은 파출 수납 업무를 하고 있다.

한계례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