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의 고단한 한끼 '노량진 컵밥' 위태위태

2012. 9. 12. 12:30이슈 뉴스스크랩

고시생의 고단한 한끼 '노량진 컵밥' 위태위태

내년 명품거리 조성 앞두고 컵밥 노점상 철거 불가피
주변 식당들은 좋겠지만 주 고객인 고시생은 씁쓸
반대여론에 난감한 동작구 "원만한 해법 찾기 고심"
한국일보 | 조원일기자 | 입력 2012.09.11 02:33 | 수정 2012.09.11 19:23

 

서울 동작구 노량진학원가의 명물이 된 컵밥은 노점상에서 컵라면 그릇처럼 생긴 용기에 담아 파는 2,500원 안팎의 볶음밥이나 덮밥. 김치 볶음밥은 물론 아주 맵다는 이유로 이름 붙여진 폭탄밥 오므라이스 날치알비빔밥 김치찌개덮밥 함박스테이크덮밥 등 메뉴만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밥 때가 되면 노량진역 앞 대로변과 인근 골목 안에 있는 30여 군데 포장마차 앞은 고시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 서울 동작구 노량진학원가에 늘어선 컵밥 노점이 빠른 시간 내에 값싼 식사를 하려는 고시생들로 북적이고 있다.

컵밥이 이렇게 번성한 이유는 혼자서, 빨리, 값싸게 먹어야만 하는 고시생의 팍팍한 푸드스타일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줄이고 혼자 다니는 데 익숙해지면 4인용이 기본인 식당 테이블은 부담스럽다. 빡빡한 학원 수업시간을 맞추려면 쉬는 시간에 잠시 나와 먹는 게 편하다. 고시원비에다 학원비, 교재비, 독서실비 등으로 빠듯한 주머니 사정에 매 끼니 입맛대로 식당밥을 먹는 건 사치스럽고 고시전문식당에서 수십 장의 식권을 끊는 것도 부담스럽다.

노량진 명물로 확고히 자리를 잡은 컵밥 거리에 지난 4월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가게 코 앞에 있는 컵밥 노점으로 발길을 돌리는 고시생들의 행렬을 보다 못한 인근 식당주인이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구청의 노점상 단속으로 빚어진 1차 컵밥전쟁은 단속을 반대하는 고시생들의 여론에 힘입어 노점상의 승리로 끝났다. 영업을 계속하는 대신 노점들은 구청 측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컵밥 값을 500원 올렸다.

하지만 고단한 고시생들의 컵밥 거리는 여전히 위태롭다. 10일 동작구청에 따르면 노량진 학원가 일대 '명품거리'조성 사업에 따라 노량진로16길 등의 지역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거리정비 사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상당수 컵밥 노점이 철퇴를 맞을 처지에 놓인 것이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민감한 문제라 아직 논의 중이긴 하지만 일단 보도 정비 사업이 진행되는 만큼 해당 구역에 노점상 철거는 불가피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단골 고시생들은 자칫 컵밥이 모습을 완전히 감추지는 않을까 걱정이 크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강모(26)씨는 "온 사회가 명품, 명품하더니 명품거리 만든답시고 고시생들 밥그릇 마저 뺏겠다는 소리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임용고시를 준비한다는 한 고시생도 "식당에 1,000원 2,000원 더 내고 먹는 게 작아 보여도 우리 입장에선 크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미 관련 예산을 책정하고 준비작업을 진행중인 동작구청은 지난 1차단속도 흐지부지 된데다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아 난감한 표정이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이미 계획이 다 된 사업이라 중단할 수는 없다"며 "원만한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