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건설사들…구조조정 점화됐나

2012. 9. 28. 09:20건축 정보 자료실

무너지는 건설사들…구조조정 점화됐나
[세계일보] 2012년 09월 27일(목) 오후 04:54   가| 이메일| 프린트
[세계파이낸스]

시공순위 100위 안에 드는 대형 건설사들이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잇따라 허물어지면서 “2012년 건설사 줄부도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주식시장에 파열음이 일어나는 것은 물론 이들에 돈을 빌려준 금융사들마저 심각한 부실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지난 26일 전격적으로 단행된 극동건설과 웅진그룹의 법정관리 신청과 관련, 일각에서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물밑에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란 의견도 제기된다. 

◆금융당국 대기업 평가 중…구조조정 점화?

극동건설과 그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가 동시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주식시장에는 대란이 일어났다. 웅진홀딩스 주가는 26~27일 이틀 연속 하한가를 쳤으며, 웅진그룹에 돈을 빌려준 채권은행들의 주가도 뚝 떨어졌다.

이어 “이는 대대적인 기업 구조조정의 시발점에 불과하다”, “불황에 지친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이 극도로 취약해지면서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등의 소문이 돌면서 시장은 공포감으로 혼란에 빠졌다.

특히 그간 금융당국이 물밑에서 웅진그룹 등 대기업 3곳에 대한 재무상태 평가를 진행해 온 것으로 드러나 소문에 힘을 더했다.  

27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6월말 재무제표를 토대로 재무구조가 급속도로 악화했다고 판단되는 3개 대기업 집단을 대상으로 재무상태 평가작업을 시행 중이다.

재무상태에 이상이 있다는 결론이 나오면 해당 기업은 주거래 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고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은 연간 한차례 실시된다”며 “지금 시점에 금감원이 임시 평가에 나선 것은 의아한 일이다. 일부 대기업의 재무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선제적 수단을 동원한 듯하다”고 평했다.

결국 미처 재무구조개선에 착수하기도 전에 극동건설 부도로 인해 웅진그룹 전체가 무너지나 “다른 대기업 2곳은 어디인지”에 시장의 관심은 쏠리고, 각종 루머가 난무하는 형국이다.

금감원은 시급히 “웅진 외 2개 기업은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나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할 가능성이 크진 않다”며 진화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건설사…올해만 7개사 날아가

무엇보다 건설업계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빨리 구제해야 할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구분하지 않으면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지난해 말 한 대형시중은행 기업금융 관계자는 “2012년 건설업계에 도미노식 줄부도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정황은 최악의 예상이 그대로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올해 들어서만 벽산건설(시공순위 28위), 풍림산업(시공순위 29위), 삼환기업(시공순위 31위), 남광토건(시공순위 35위), 극동건설(시공순위 38위), 우림건설(시공순위 71위), 삼환까뮤(시공순위 99위) 등 7개 대형 건설사가 재정 악화로 법정관리 혹은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현재 100대 건설사 중 워크아웃 혹은 법정관리 상태인 회사가 20개인 점을 감안할 때, 무려 35%가 올해 쓰러진 것이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우리 경제 안정 위해서는 주택시장 연착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듯 부동산 급락에 따른 건설사 부실은 심각한 문젯거리다.

금융권 관계자는 “혼란을 두려워한 정부가 물밑에서 옥석 고르기를 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은행권도 부실 전염…대손충당금 부담에 ‘휘청’

한편 건설사의 줄부도 사태 때문에 금융권, 특히 채권은행들이 부실대출 급증으로 몸살을 앓는 양상이다.

27일 금감원에 따르면, 웅진그룹 한 곳으로 인한 금융권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만 3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은행권 신용공여액이 2조1000억원으로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이 가장 많은 4886억원을 빌려줬다. 그 외 신한은행 3022억원, 하나은행 2898억원, 산업은행 2518억원 등이다.

잇따른 건설사와 조선사의 부실 탓에 대출 연체율이 급등한 각 시중은행들의 은행 수익의 원천인 예대마진은커녕 예대손실까지 일어날 수 있는 위기에 몰렸다.   

금감원에 따르면 8월말 현재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1.98%다. 금감원 관계자는 “9월 들어 연체채권 2조2000억원을 정리했다”고 밝혔으나 이번 웅진 사태로 2조1000억원의 신규 연체가 발생함에 따라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통 분기말에는 연체율을 줄이기 위해 은행들이 많은 노력을 하지만, 웅진 사태의 충격이 워낙 커서 9월에도 기업대출 연체율이 2%에 육박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연체율 2%는 큰 의미를 지닌다. 한은의 발표를 보면, 9월 중 은행 예대마진은 약 2.03%다. 은행이 1조원의 자산을 굴리면 약 200억원의 이익을 올린다는 뜻인데, 200억원어치의 대출이 부실화되면 은행의 수익은 모두 날아가버리게 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점포 임대료, 직원 인건비, 전산 비용 등을 고려할 때 연체율이 2%에 달하면 손해를 면할 수 없다”고 한숨을 토했다.

부실채권 급증으로 인해 막대한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점도 은행에는 큰 부담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의 채권은 모두 연체로 계산되고, 고정이하여신으로 잡힌다”면서 “따라서 부실에 대비한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웅진홀딩스, 극동건설, 웅진폴리실리콘, 웅진에너지에 대한 금융권 신용공여액 2조1000억원과 관련해 금융회사들이 추가로 적립해야 할 대손충당금을 1조2000억원으로 추정했다. 대손충당금이 늘어날수록 은행의 수익성은 급격하게 악화된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은행주가 잇따라 급락하는 추세다. 은행권이 ‘상저하추(上低下墜)’의 혹독한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안재성 세계파이낸스 기자 seilen78@segyef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