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 3조원 돈벼락… 단내나는 영업전쟁

2012. 10. 16. 08:56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파주에 3조원 돈벼락… 단내나는 영업전쟁

조선비즈

입력 : 2012.10.15 03:15

[20일부터 돈 풀리는 운정3지구 가보니…]
2800명 1인당 평균 11억원, 천막 은행들 전화·선물 공세
주변 토지시장도 기대감… 미리 대출받아 산 경우 많아… "큰 영향 없을 것" 분석도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파주시민회관. 20여개 은행·증권사·보험사 직원 200여명이 회관 앞에 일제히 도열했다. 회사 로고가 박힌 어깨띠를 몸에 두른 직원들은 주민들이 삼삼오오 회관으로 들어올 때마다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회관 안팎은 주민들과 금융회사 직원들이 뒤섞여 북새통을 이뤘다.

회관에 몰려든 주민들은 파주시 운정3지구 택지개발사업(695만㎡에 3만9291가구 건설)에 따라 보상금을 받게 될 사람들이다. LH공사는 오는 20일부터 이곳에 토지·건물 등 재산을 갖고 있는 2800여명에게 모두 3조2000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이날 보상금을 받을 주민들이 총회를 개최하자, 보상금을 유치하기 위해 금융회사들이 몰려와 열띤 홍보전을 벌인 것이다.

3조2000억원 보상금 유치전쟁

한동안 대규모 개발 소식이 잠잠했던 수도권에 3조원대의 거액이 풀려나오게 됨에 따라 파주 일대가 술렁거리고 있다. 1인당 평균 11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이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두고 금융권과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파주에서는 "수십억원대 자산가가 다수 탄생할 것으로 보이며, 개인 최고로는 200억원을 수령할 주민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에 따라 그동안 돈이 들어올 곳이 없었던 금융회사들이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다. 올 초부터 회사마다 집중 공략할 고객의 명단을 만들어 '맨투맨'식으로 접촉하고 있다. 전화 공세는 기본이고 때론 선물을 들고 찾아가 얼굴을 익히는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파주의 한 은행 지점장은 "얼마를 유치하는지를 두고 은행장부터 관심을 쏟고 있어 죽기 살기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토지보상금은 현지 주민들은 현금으로, 외지에 살고 있는 지주(地主)들은 채권(5년 만기)으로 보상을 받게 된다. 채권을 받으려면 증권 계좌를 열어야 한다. 한화투자증권의 한 직원은 "채권이 일단 증권계좌로 들어오기만 해도 회사에서는 수입으로 잡히기 때문에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채권 보상을 받을 예정인 김모(60)씨는 "나중에 조건 보고 판단해도 되니 일단 계좌만 만들어달라고 읍소하는 증권사 직원들의 전화·문자 메시지가 하루 5~6통씩 쏟아진다"고 했다.

LH공사가 경기도 파주시 운정3지구 택지개발사업에 따른 3조2000억원의 토지보상금을 오는 20일부터 지급하기로 결정하면서 토지보상금을 유치하려는 금융회사들이 파주로 몰려들고 있다. 사진은 운정3지구 수용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 주변에 은행·증권사들이 주민들과 상담하기 위한 천막을 만들어 놓은 모습이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보험사들은 '절판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내년부터 즉시연금(일시에 목돈을 맡기고 매달 연금식으로 받는 상품)에 대한 세제 혜택이 사라진다는 것을 강조하며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 주민 중에 고령자가 많기 때문에 즉시연금 판매를 늘릴 기회로 보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 살아날지는 미지수

정부가 혁신도시를 건설하면서 거액의 보상금을 풀어놓을 때마다 인근 부동산 경기가 활황세를 보였던 전례에서 보듯이, 3조원대의 보상금이 경기 북부의 부동산 경기를 되살리는 촉매제가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보상금으로 다른 토지를 사는 '대토(代土)'를 하면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매수세를 끌어들이는 발판은 마련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지역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는 등 부동산 경기가 심각하게 가라앉아 있어 대토 수요가 살아날지는 미지수다. 인근 은행의 한 PB는 "주민들이 토지·아파트는 더 이상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상가나 금융상품에 관심을 더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이 예정보다 지연된 것도 경기를 부양시키는 데 큰 도움이 안 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운정3지구는 2008년 개발 승인이 나오면서 보상금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미리 대출을 받아 각종 부동산에 투자했던 주민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LH공사의 사정으로 보상이 미뤄지는 가운데 부동산 경기가 하락해 주민들이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려 왔다. 보상금을 받게 된다는 50대 주부는 "대출금을 갚고 나면 쓸 돈이 없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