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도 반한 40대男, 무슨말 했길래

2012. 11. 3. 09:08분야별 성공 스토리

이건희 회장도 반한 40대男, 무슨말 했길래
서진영 교수, 13년 전 삼성그룹서 제안한 서평으로 인기 반열
기사입력 2012.11.02 07:38:17 | 최종수정 2012.11.02 13:25:58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원론만 13년째 강의를 해온 이가 있다. 시간 강사지만 부끄럽지 않다. 강사라는 타이틀은 그가 가진 여러 직업명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방송을 진행하는가 하면 책을 직접 쓰기도 한다. 경영 노하우가 필요한 기업에 컨설팅까지 하니 사실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무엇보다 그를 분주하게 하는 것은 매주 책 한 권씩을 읽은 후 서평을 작성하는 일이다. 수백명의 독자들이 그의 서평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어 결코 게을리 할 수 없다. 전자우편(이메일)으로 서평을 받기 위해 독자들이 지불한 연회비가 100만원이나 돼 심리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매주 금요일을 데드라인 삼아 밤샘 작업을 일삼은 지 올해로 13년째다.

다음 주면 600권째 서평을 탈고한다는 서진영 자의누리 경제경영연구소 원장(43·사진)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SK본사 아트센터 나비를 찾았다.

13년 전 대기업에서 먼저 제안한 서평 사업 =

서 원장이 쓰는 `서평(徐評)`의 한자는 흔히 생각하는 서평(書評)과 다르다. 서 원장의 성에서 따온 `서(徐)`자에 `평(評)`자를 더한 것으로, 서 원장의 평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책의 내용을 집약하되 100% 목차를 뒤집습니다. 제 관점에서 내용을 재해석하는 것이죠. 여기에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필요한 내용을 다시 채워 저만의 평이 되도록 한다고 자부합니다"

실제로 서원장의 서평에는 CEO들이 해당 책을 통해 조직에 던져야 할 질문이나 회의 자리에서 쉽게 인용할 수 있는 사례와 통계가 풍부하게 담겨있다. 바쁜 시간을 쪼개 보는 CEO인 만큼 하나의 자료에서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서 원장은 60개 출판사와 `서평을 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계약을 따로 맺었다. 보다 자유롭게 책에 대한 해석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서 원장만의 글로벌 경영·인문·트렌드 보고서는 그렇게 완성도를 높여갔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를 땄다. 경영학에서 내공을 쌓은 후 그가 새롭게 도전한 분야는 유교학. 한 번 공부할 분야를 정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어서 성균관대학교에서 유교학 박사도 수료했다.

이후 성균관대학교와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등에서 전임교수로 활동하던 그가 서평 작업에 몰두하게 된 이유는 재미가 있어서다.

서 원장은 "어느 날 문득 `보다 재밌게 지식을 탐구할 순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생의 앞만 보고 달려온 제가 주변을 돌아봤고 그 날로 과감히 교수직을 관뒀다"고 말했다.

대신 유료 서평 서비스인 `CWPC(CenterWorld Prestige Club)`를 운영해 기업의 최고 경영자(CEO) 수백명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의 일이다.

"돈을 벌자고 시작한 일은 아니에요. 책 읽는 것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죠. 그러면서 지식도 쌓고 명예로운 일을 하고 싶던 찰라 대기업의 러브콜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올린 제 서평을 회사 임원들에게 이메일로 공유하자는 제안이었죠."

당시 서 원장의 서평을 가장 먼저 눈여겨 본 것은 삼성그룹이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해 세계적 기업의 임원들이 읽는다고 하니 서평에 대한 입소문은 더욱 빠르게 퍼졌다. 비싼 구독료에도 회원 수는 계속 늘었고, 유료 서평 사업으로 자리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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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가 책 읽어야 조직이 변해…회원 심사는 철저히 =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서평을 작성해오며 서 원장이 단 한번도 깨뜨린 적이 없는 원칙이 있다. 서평을 받아 볼 수 있는 회원의 조건을 기업의 CEO나 임원급 이상으로만 한 것이다.

서 원장은 "죄송하지만 부장급도 가입이 어렵다"면서 "최고의 지식 경영 공동체로 명예를 중시하기 때문에 해당 원칙을 변경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이 책을 읽어야 조직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은 확고해 보였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CEO들이 어떤 책을 봤다고 하면 임원들은 실제로 책을 읽고, 직원들은 책을 사보게 됩니다. CEO의 독서가 그 자체로 기업에 엄청난 변화를 줄 수 있는 이유죠."

공정한 회원 심사를 위해 현재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을 비롯해 조창현 한양대학교 석좌교수 등 5명의 심사위원이 활약하고 있다. 서평이 입소문이 나면서 기업 뿐 아니라 경영지식과 인문학의 중요성을 인지한 대학총장과 지방자치단체장, 각종 공공기관의 장들도 서 원장의 서평을 매주 구독하고 있다.

까다로운 회원 심사를 거친 이들이 읽을 책인 만큼 필독서를 고르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을 터. 이를 위해 서 원장은 매년 필독서 선정위원 5명은 위촉해 치열한 토론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서 원장은 "사실 CEO들은 일반 직원들이 읽은 책은 또 보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면서 "그러다보니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유용한 정보로 가득한 서적을 찾기 위해 선정위원들이 다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인다"고 전했다. 올해 CWPC의 필독서 선정위원에는 이기동 성균관대학교 유학과 교수와 이유재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렇듯 까다로운 회원 가입과 또 더욱 까다로운 책 선정 덕택에 CEO들은 나만의 독서 과외 선생을 따로 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 청춘은 아프다? 지식으로 무장하면 걱정없어 =

매주 서평을 쓰던 서 원장이 최근 매일 하는 일이 생겼다.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에서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서평 어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업데이트 하는 것이다. 앱 상에서 그는 서평을 보여주는가 하면 직접 특강을 하는 동안 촬영한 영상과 오디오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이 모든 것이 다 무료다. 책을 읽고 지식을 쌓는 기쁨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특히 미래의 CEO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서 원장은 말했다.

"요즘 취직이 어려운 젊은이들에게 힐링이 필요하다거나 힘을 북돋아주는 메시지가 참 많습니다. 필요한 부분이죠. 하지만 저는 책이란 외장매체에 지식을 전달하며 세대 간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세대간의 가르침을 통해 희망을 주는 것이죠. 남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지혜와 인품을 갖추는 길, 바로 책 속에 있습니다."

서 원장은 지하철로 이동하는 단 5분이나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 10분이라도 자신이 그 책에 몰입할 수는 있는 `꺼리`만 있다면 장소나 시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가 청년들을 위해 하는 일은 또 있다. 한 달에 한번 `서평 콘서트`를 여는 일이다. 그 동안 서평으로 작성했던 책의 저자나 유명 인사들을 초청해 직접 강연을 하는 것이다. 본래는 CWPC 회원들만을 위한 자리였으나 청년을 비롯한 일반 직장인들에게도 문을 개방했다. 단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참가비 3000원을 받고 있다.

서 원장은 "밤늦게까지 책에 대해 얘기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CEO들의 모습을 청년들이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서평 콘서트를 연 것"이라며 "책을 통해 체득한 지식으로 무장한다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CEO들에게도 서평 콘서트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로부터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기회의 제공처로 자리 잡았다. 책을 통한 세대 간의 소통이 이뤄지는 셈이다.

"일주일 동안 책 한권을 다 읽고 관련 지식을 온몸으로 체득한 기쁨은 말로 다 표현을 할 수 없어요. 이를 글로 표현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기쁨 역시 제가 놓칠 수 없는 부분이죠. 그런 기쁨이 있는 한 계속 서평을 쓰며 세대 간 소통을 할 것입니다."

■ He is…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영실무에서는 1997년부터 자의누리 경영연구원을 창립해 수석 부사장으로 활동하며 대통령자문 새천년준비위원회 전략기획자문, 현대자동차, 삼성그룹, 마이크로소프트 코리아, 보령제약그룹 등 국내외 기업에 전략 인사평가 컨설팅을 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전임교수를 역임했고, 서울대학교, KAIST MBA 등에서 경영학원론과 마케팅, 벤처 기업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방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