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흘러도 녹슬지 않은 통찰

2012. 12. 8. 09:29C.E.O 경영 자료

500년 흘러도 녹슬지 않은 통찰

세계일보 | 입력 2012.12.07 17:37

 

[세계일보]

비판자/발타사르 그라시안 지음/남영우 옮김/지식을만드는지식/1만2000원

"미덕은 박해를 받고, 악덕은 박수를 받소. 진실은 침묵하고, 거짓은 활개를 치오. 박식한 자는 책이 없고 무식한 자는 서점들을 통째로 가지고 있소. 책 속에는 현자가 없고, 현자는 책을 내지 않소. 가난한 자의 신중함은 어리석음이 되고 힘 있는 자의 어리석음은 떠받들어지오. 생명을 살려야 할 사람들은 죽음을 주오. 젊은이들은 시들어 가고 늙은이들은 욕정을 되살리오. 법률은 한쪽 눈이 먼 애꾸요."





발타사르 그라시안 지음/남영우 옮김/지식을만드는지식/1만2000원

스페인 바로크 문학을 대표하는 17세기의 위대한 작가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대표작이다. 쇼펜하우어가 "이 세상에 나온 가장 훌륭한 책 중 하나"라고 극찬한 작품이다. 일종의 철학 소설인데 500여년 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살아 숨쉬는 날카로운 통찰이 가득하다.

몇 백년 앞을 내다보는 저자의 차원 높은 시각을 접할 수 있다. 그라시안은 탄생에서 죽음까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건 질서라기보다는 혼돈, 정의라기보다는 불의, 기쁨이라기보다는 슬픔과 비탄임을 설파한다. 비록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가 이 땅을 조화로운 곳으로 만들고자 했어도, 이곳에 사는 인간들은 세상을 부조리가 넘치는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그라시안이 훗날 '염세주의' 철학의 대가 쇼펜하우어나 '생(生)철학'의 거장 니체 같은 사상가들에게 존경을 받은 건 자연스러운 귀결로 보인다. 그라시안의 외침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꿈틀거린다.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