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10. 09:11ㆍC.E.O 경영 자료
[저성장시대, 한국경제 길을 묻다] 평수 줄여 부채 줄이기… 하우스푸어들 ‘빚 다이어트’
국민일보 입력 2012.12.09 16:43
집 담보 대출에 허덕이는 서울의 한 가정
현관을 나서는 중학교 1학년 아들의 등이 쓸쓸해 보인다. 아들은 지난달 사준 'N' 브랜드의 검정색 패딩 점퍼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입는다. "엄마 고맙습니다, 공부 열심히 할게요!" 아들은 새로 이사 온 동네 백화점에서 천진하게 웃었다. 저 녀석이 뭘 알고 짐짓 의연한 표정을 짓나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106㎡에서 84㎡로 집을 줄여 이사하면서 김효은(가명·44·여)씨는 아들의 패딩 점퍼부터 새로 장만했다. 이사도 패딩 점퍼도, 김씨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요즘에는 초등학생들도 친구가 몇동 사는지 물어보고 아파트가 큰지 작은지 다 안다더라."
서울 강남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한 김씨의 언니는 아들에게 옷이라도 잘 입히라고 충고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중학생들이 특정 브랜드 패딩 점퍼를 입지 않으면 왕따를 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한 때 김씨도 강남 학군의 학부모를 꿈꿨다. 아들이 중학교에 진학할 즈음 이사를 갈 수 있을 거라 여겼다. 2007년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로 2억원을 빌리고 전 재산 2억원을 더해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했다. 곧 재개발이 된다는 소식이 들리고, 한강도 살짝 보이는 서울 성수동의 한 아파트였다. 강남에서 멀지 않았다. 열심히 벌면 언니를 따라 강을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이 은행 이자보다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강남은 점점 멀어 보였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으로 391만원씩을 상환해야 하는 매달 마지막 주는 거짓말처럼 빨리 다가왔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높아지고 지출은 점점 늘어났다. 김씨는 이게 내 집이 아니라 은행의 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집을 줄이자는 말은 남편이 먼저 했다. "부채도 자산이라고 광고하는 시절은 지났어. 우리가 바로 '하우스푸어'야."
남편은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 담배부터 끊겠다고 했다. 빚 다이어트에 나서면서 이만한 각오가 없어서야 되겠냐며 웃었다. 한 달에 5만원 남짓한 담뱃값을 줄이는 것은 가계의 소득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아이가 자라는데도 집의 크기를 오히려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이 품는 독기처럼 보였다.
조간신문에는 하우스푸어 이야기가 매일같이 나왔다. 저성장·저금리,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감축), 부동산 위기 등의 단어는 하도 많이 듣다보니 친숙하게 느껴졌다. 김씨는 "안 되면 집 평수라도 줄이는 것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구나"라고 혼잣말했다.
대한민국이 '빚 다이어트'에 빠져들고 있다. 길고 긴 경기침체와 저성장이 예고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고통스런 부채 감축에 들어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富)의 척도였던 집의 크기마저 과감히 포기하고 있다.
9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의 '주택거래소비자인식조사'에 따르면 올해 3분기(7∼9월)에 99㎡ 이하 주택으로 이사한 비율은 전체 이사 중 89.4%를 차지했다. 2분기에는 이 비율이 38.1%였다. 무리한 빚으로 주거면적을 넓히기보다 애초부터 대출을 적게 끼고 작은 집에서 살겠다는 게 요즘 부동산 소비자들의 인식이다. 집값의 30% 미만으로 대출을 이용하겠다는 응답비율은 올해 2분기 59.4%였지만 3분기에는 68.3%로 올랐다.
빚 다이어트의 필수 코스인 고금리 전환대출의 실적도 나날이 상승세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바꿔드림론' 실적은 2010년 1685억원, 지난해 4752억원, 올해 10월 말까지 5625억원에 이른다.
부동산을 내던지는 빚 다이어트로 현금을 확보하는 데에는 서민층, 부유층이 따로 없다. 현금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유층만 관리하는 각 증권사 VIP센터의 PB(Private Banker·프라이빗뱅커)들마저도 "부동산 매도를 의뢰하는 고객만 많고, 사려는 이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양재진 미래에셋증권 WM강남파이낸스센터 부장은 "예전에는 부동산을 사겠다며 투자자금을 빼는 고객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말없이 그냥 가져가시는 분이 많다"며 "주식에서 은행 쪽으로 돈을 보내 달라는 비율이 높아졌는데, 그럴 때에는 은행 쪽 부채 정리를 하는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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