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 떠나 세종시로 … 공무원 5498명 대이동

2012. 12. 16. 10:55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현장 속으로] 세종로 떠나 세종시로 … 공무원 5498명 대이동

연내 아파트 입주 955명뿐
상사와 동거하는 ‘내무반파’도 등장
중앙일보 | 조현숙 | 입력 2012.12.15 00:10 | 수정 2012.12.15 07:25

 

세종시의 야경. 왼쪽에 활짝 불을 밝힌 정부 세종청사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은 미완성인 도시라 어둑한 곳이 많다. 올해 말까지 서울과 과천에서 일하던 6개 부처 공무원 5498명이 이곳으로 일터를 옮기며 내년에도 교육과학기술부 6개 부처가 세종시로 이사를 간다. 16개 정부부처의 대이동은 2014년까지 계속된다. 세종시가 2030년 완공되면 인구가 현재 11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국무총리실 직원 이모(40)씨는 퇴근할 때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주변을 이리저리 걸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청사 안팎의 사진도 두루두루 찍어뒀다. 지난 10월 부인과 함께 야간 개장한 경복궁에 일부러 가보기도 했다. "광화문은 늘 일하던 곳이다 보니 무심코 지나칠 때가 많았죠. 그런데 막상 떠나려니 왜 이리 아쉽고 여기가 좋아보이는지…. 전 그래도 나은 편이에요. 아내가 전업주부라 벌써 가족은 세종시에 마련한 아파트에 가 있는데, 그래도 꼭 귀양 가는 기분입니다. 제가 이런데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싶어요." 이씨는 세종로 청사에서 12년을 근무했다. 그는 이달 21일 서울을 떠나 '세종자치시 다솜로 261번지'에 새로 지은 총리실로 간다.

 총리실 임모(54)씨는 얼마 전 친구와 나눈 통화를 생각하면 울적해진다고 했다. "지금 서울에 있다고 했더니 '아직 세종시 안 갔느냐'고 그러더라고요. 어찌나 서운하던지…. 서울 사는 친구들과 관계가 멀어질까 고민입니다."

 이들처럼 올 연말까지 세종시로 일터를 옮기는 공무원은 5498명. 16개 부처 공무원의 대이동은 2014년까지 계속된다.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거창한 명제도 부질없다. 이들에겐 현실일 뿐이다. '세종로'를 떠나 '세종시'로 가는 이들의 얘기다.

구내식당 좁아 1·2부 나눠서 식사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 1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세종특별자치시로 이사하고 있다. ② 세종시 새 사무실에 짐을 푸는 국토해양부 직원들. ③ 국토부와 농식품부 공무원들이 3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 세종청사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지난달까지 7656명의 공무원이 세종시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 전체 이전 대상 공무원의 68%다. 하지만 올해 안에 아파트로 입주하는 공무원은 955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아파트의 준공 시기가 내년 이후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첫마을 단지와 대전 지역 임대주택을 공무원 숙소로 확보해 부처별로 배정했다. 공주 한옥마을, 농협 연수원, 통계교육원 등을 단기 숙소로 운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택난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세종시가 자리 잡기까지 일정 부분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공무원들의 대처 방법은 제각각이다. 출퇴근하면서 세종시 이사를 결정하겠다는 '관망파'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해외 파견·육아 휴직·교육 등을 선택한 '철새파', 다음 정부 때의 운명을 장담할 수 없다며 한두 달 출퇴근하거나 원룸·관사살이하면 그만이라는 '석양파'도 있다. 1급 이상 고위직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전이나 충청 지역에 연고가 있어 고향·친척집에 더부살이하는 '귀향파'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관사나 부처별 임대주택에 상사와 더불어 3~4명씩 모여 살아야 하는 '내무반파'는 가장 안타까운 유형으로 꼽힌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간부(48)는 첫마을에 있는 방 4개짜리 아파트에서 직원 3명과 함께 살기로 했다. 그는 "엄동설한에 집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여서 방 하나씩 나눠 쓰기로 했는데, 나나 직원들이나 아무래도 서로 불편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먹는 것도 고민이다. 그는 "가서 보니까 정말 주변에 아무것도 없더라"며 "구내식당도 좁아서 1부, 2부로 나눠 먹어야 한다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형이 어떻든 마음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아이들도 다 컸고 해서 혼자 내려갑니다. 1000에 50(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 원룸을 겨우 구했어요. 집은 차관급부터 나오니까…. 막상 어떻게 살지 갑갑하네요." 총리실 한 1급 공무원의 토로다. 총리실 직원 이모(54)씨도 마음은 비슷하다. "아이들이 커서 혼자 내려왔습니다. 먼저 내려간 한 '기러기' 직원은 5~6㎏ 빠졌다고 해요. 살기가 힘든지 얼굴도 갑자기 까매졌고. 이젠 제 차례죠."

 과천청사에 있던 부처 중 지난달 26일 가장 먼저 이삿짐을 싼 국토해양부의 권도엽 장관은 홈페이지에 서운한 마음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과천에서의 마지막 가을을 함께 아쉬워하듯 단풍도 올해 유난히 짙고 아름다웠다"며 "30여 년 정들었던 사무실과 관악산, 과천 거리를 떠나려 하니 애틋한 마음이 솟는다"고 적었다.

주말에 나들이 하려면 자기차 몰고 가야

 주택·교통·교육. 이 세 가지 문제는 늘 얽혀 있다. 세종시도 마찬가지다. 주택과 함께 대중교통 부족 사태는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오송역과 세종청사를 오가는 광역버스(BRT) 운행 편수를 이달부터 하루 6번에서 12번으로 늘리기로 했다. 대전과 세종시·세종청사를 연결하는 시내버스 운행 횟수도 16회에서 63회로 확대한다. 내년부터는 무료 환승제도 도입할 계획이다.

 정부는 또한 출퇴근족을 위해 KTX와 시외·고속버스 편수도 늘릴 방침이다. 이전 4편에 불과했던 출근시간대 KTX 운행 편수는 지난달 6편으로 늘었다.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과 세종청사를 오가는 고속버스도 이달 말부터 하루 네 번 운행된다. 동서울·인천·성남·고양 등 다른 수도권의 8개 터미널에도 세종청사로 가는 시외버스 노선이 보강된다. 이에 맞춰 세종청사 안에 시외버스 간이터미널도 만들어진다.

 하지만 상황은 간단찮다. 지난 주말 오후 충북 청원의 오송역 앞. 당황한 표정의 한 할머니가 택시기사 윤완영(47)씨에게 다가와 물었다. "역에 가면 세종시 첫마을까지 공짜버스가 있다고 분명히 그랬는데, 없나." 윤씨는 안타까운 듯 답했다. "BRT 버스 말씀하시는 거구나. 오늘은 일요일이라 없어요. 첫마을까지 2만5000원은 나오는데."

 첫마을로 이사 간 친척집에 찾아가는 길이라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더 다급해졌다. "아이고. 아산에서 여기까지 KTX 요금이 8000원이었는데, 택시비가 더 들게 생겼네." 오송읍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윤씨는 최근 이런 손님을 많이 본다고 했다. "그냥 미터 요금대로 받아도 2만원 넘게 나와요. 바가지가 아니에요. 공무원도 많이 타는데 택시비 가지고 흥정했다간 큰일나죠."

 서울역에서 오송역까지 KTX로 30분이면 간다. 하지만 집에서 출발해 KTX 역사로, 다시 오송역에서 세종청사까지 가는 게 만만찮다. 세종청사와 오송·조치원은 물론 대전·청주·공주 등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버스도 부족하다. 택시도 상황은 마찬가지. 물량도 적고 지역 간 할증 요금 때문에 비용 부담도 만만찮다.

 세종청사에서 만난 총리실 직원 김모(55)씨는 교통 문제가 가장 부담이라고 했다. "어차피 출근은 통근버스나 BRT 버스를 이용하면 되니까 그나마 괜찮아요. 하지만 주말에 이동하거나 가족들이 생활하려고 움직일 때는 꽤 불편합니다. 결국 자기 차를 몰고 다니는 수밖에 없죠."

 국토부 김모(44) 과장은 "출퇴근족의 경우 새벽 5~6시부터 부산하게 움직여야 한다"며 "저녁에도 3시간 이상 차에서 부대끼면 녹초가 되고 말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10일부터 세종시에서 일하고 있는 농림수산식품부 이모(47·여) 주무관도 1주일도 안 돼 고민에 빠졌다. 왕복 4시간 출퇴근이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아서다. 그는 "남편 직장 때문에 가족 모두 여기 내려올 수도 없어 막막하기만 할 뿐"이라며 난감해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예 카니발로 차를 바꾸는 걸 검토 중이다. 서울과 세종시를 오갈 때 고속도로 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박 장관 측은 "장관을 수행해야 할 공무원들이 한 차로 이동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첫마을 40대 주부 "변해가는 모습 좋다"

 세종시 한솔동 첫마을. 세종시에 가장 먼저 들어선 아파트 단지다. 상가 1층에 줄지어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마다 상담이 한창이다. 세종명품 공인중개사사무소 유지원 사장은 "휴일인데도 손님이 꾸준히 찾는다"고 했다. "두세 달 전만 해도 33평(109㎡) 전세 아파트를 1억원 초반대에 구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5000만원 넘게 올랐죠. 세종청사와 가까운 첫마을 아파트는 전세 가격이 2억원 가까이 해요. 그래도 부동산 경기가 워낙 안 좋다 보니 매매가가 많이 오른 건 아니고요."

 찾아오는 손님은 공무원보다 대전·청주·공주 등 인근 지역 주민이 더 많다고 했다. 교육 환경이 좋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유 사장은 설명했다. 이 때문에 서울에서 출퇴근할 생각에, 아파트 분양이 늦어지는 바람에 느지막이 집을 구했던 공무원들은 비상이 걸렸다. 막상 이전 날짜가 다가오다 보니 출퇴근이 어렵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집을 구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세종시 첫마을의 명동부동산 이우재 사장은 "워낙 아파트가 부족하다 보니 공무원들이 원룸을 많이 찾는다"며 "세종시 공사 하는 직원들도 많아 아파트나 원룸이나 모두 품귀"라고 전했다. "그래도 올 초 '떴다방'이 몰려들었을 때 말고는 여기 부동산 매매 경기도 그저 그래요. 정부에서 부동산 투기 단속도 세게 나왔었고." 같은 부동산 직원 길다희씨는 "워낙 지어질 아파트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 미분양이 많이 나올까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사장은 "그나마 부동산 거래가 되는 지역이다 보니 여기 들어오려고 하는 업자들이 꽤 있다. 첫마을 단지 내 부동산 시권비(시설비와 권리금을 합한 말·가게 권리금과 같은 뜻)도 꽤 올랐다"고 귀띔했다.

 첫마을 1~3단지 1층에 줄지어 선 상가에도 50여 개 부동산 중개업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식당은 10여 개 정도로 아직 많지 않다. 한창 배추를 절이고 있던 이가네 식당 이상선(61) 사장은 "백반 한 가지만 하는데 공무원들이 오니까 한 그릇이라도 더 많이 팔리긴 한다"며 "그런데 이곳 17평(56㎡)짜리가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250만~300만원씩이나 해서 어렵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트럭에서 과일을 팔고 있던 박문수(46)씨는 "하루에 20만~30만원어치 팔리는데 여긴 그나마 손님이 있는 편"이라고 했다. 그나마 일찍 지어진 첫마을 단지는 사정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식당·은행·병원 등 편의시설은 여전히 부족하다. 학교 부족 사태도 심각한 수준이다. 세종시 주변 학부모들이 교육 여건을 보고 대거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서둘러 대책을 마련했다. 초등학교·중학교 학급당 인원을 25명에서 30명으로 늘리고, 2014년까지 유치원과 초등학교·중학교를 1개씩 더 짓기로 했다.

 그래도 첫마을 3단지에 사는 주부 김용란(49)씨는 나름대로 만족스럽다고 했다. 대전에서 이사왔다는 김씨는 "하루하루 변해가는 모습이 좋고, 기대도 크다. 도시계획도 잘돼 있고. '내가 왜 여기 왔나, 무엇을 보고 왔나'를 잘 생각하면 불만도 적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민 총리실 세종시지원단장은 "여기 오래 사셨던 주민들은 서울에서 온 공무원들이 불만을 토로하면 '우린 지금까지 편하게 잘 살았는데 왜 그러느냐'며 오해할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공무원이 7500명 넘게 이곳에 아파트를 분양 받았습니다. 여기에 정착하려는 의지가 확인된 거죠. 중앙정부도 노력하겠지만 지방정부와 지역 주민들의 도움 또한 필요합니다. 세종시가 보다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으려면요." 김 단장의 당부다.

조현숙·한애란 기자 < newearjoongang.co.kr >

조현숙.한애란 기자aeyan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