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신세' 재형저축펀드 왜 안팔리나 했더니...

2013. 3. 11. 20:34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찬밥신세' 재형저축펀드 왜 안팔리나 했더니...

53개 펀드 출시이후 설정액 20억 그쳐..은행권 금리경쟁·금융당국 무관심에 천덕꾸러기 전락머니투데이|임상연 기자|입력2013.03.11 15:06|수정2013.03.11 18:

 

[머니투데이 임상연기자][53개 펀드 출시이후 설정액 20억 그쳐..은행권 금리경쟁·금융당국 무관심에 천덕꾸러기 전락]

#"재형펀드는 찾는 문의전화조차 별로 없어요. 실적배당 상품이라 마케팅이 힘든 데다 솔직히 마진도 적어 적극 나서는 분위기도 아닙니다." -대형증권사 리데일영업 본부장

#"할당받은 재형저축 판매하기도 버거운데 재형펀드 판매할 정신이 있나요. 그리고 재형펀드에서 손실이라도 나보세요.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해요."-시중은행 한 판매직원.

18년 만에 부활한 재형저축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자산운용업계는 '초상집' 분위기다. 시중자금이 은행권의 재형저축에만 쏠리면서 운용업계의 재형펀드는 그야말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서다.

운용업계는 지난 6일부터 53개의 재형펀드를 내놓으며 대대적인 판매에 나섰지만 최근까지 20억원을 모으는데 그쳤다. 16개 은행의 재형저축이 출시 하루 만에 30만 계좌, 300억원 가량을 모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찬밥신세' 재형펀드, 정부당국과 은행의 합작품?=재형펀드 판매가 죽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시중은행의 고금리 판매경쟁 탓이다. 고객잡기에 혈안이 된 시중은행들이 재형저축 금리를 경쟁적으로 올리면서 재형펀드는 시장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당초 최고 4%대 초반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재형저축 금리는 최근 4.6%까지 치솟았다. 시중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자제 경고에도 불구하고 경쟁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것은 물론 직원 할당량까지 줘가면서 판매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저금리 기조에 목말라 있던 고객 입장에선 재형저축 금리경쟁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7년간 가입해야 하는 조건이 있지만 시중금리보다 1%포인트 이상 높은 재형저축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정부당국의 무관심도 재형펀드를 천덕꾸러기로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재형펀드 도입 초기 운용업계는 연금펀드처럼 시장상황에 따라 펀드를 갈아탈 수 있는 전환형으로 취급할 수 있도록 정부당국에 요청했다. 보다 효과적인 개인 자산관리와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상품 경쟁력을 보강하기 위해서였다.

마케팅측면에서 펀드는 저축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품이다. 확정금리에 예금자보호까지 되는 저축과 달리 펀드는 시장상황에 따라 손실을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보수적 성향이 짙은 국내 고객들에게 어필하기 힘들다. 최근처럼 증시 불확실성이 높거나 고금리 경쟁상품이 출현하면 더욱 그렇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들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한 펀드에 7년간 가입해야 한다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며 "시장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환형만 가능했어도 지금처럼 마케팅이 힘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금융당국의 인위적인 재형펀드 보수인하도 판매 위축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가이드라인을 통해 재형펀드의 판매보수를 일반펀드 평균의 절반이상 낮은 50bp이하로 운용보수도 최대 30% 이상 낮추도록 했다. 재형펀드가 중산층과 서민의 재산형성 지원을 위한 장기저축상품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판매보수 인하로 마진이 떨어지자 은행은 물론 증권사들까지 적극적으로 판매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 운용사 마케팅담당자는 "은행들이 임직원 할당량 부여 등으로 재형저축 판매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재형펀드는 이미 뒷전으로 밀렸다"며 "증권사들도 보수가 크게 떨어지자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재형저축發 시중자금 쏠림현상 부작용 우려=전문가들은 재형저축발 쏠림현상이 계속될 경우 은행의 역마진은 물론 개인 자산관리의 비효율성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중금리가 2%대 후반이라는 점은 감안하면 시중은행의 재형저축은 역마진이 불가피하다. 팔면 팔수록 손해인 것이다. 교차판매 등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하지만 금리가 추가로 인하될 경우 손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더 큰 문제는 개인 자산관리측면에서의 부작용이다. 2저1고(저금리저성장 고령화) 고착화로 보다 효과적이고 능동적인 개인 자산관리가 절실한 상황에서 시중은행들이 영업적인 측면만 강조해 재형저축을 취급하는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시장 전체적으로 기회비용을 낭비하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단순 저축보다는 자산관리측면에서 재형저축 제도를 손질하고, 금융회사와 개인들도 보다 긴 안목에서 재형저축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들이 고금리 판촉활동을 지속할 경우 쏠림현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고금리 보장기간이 끝나는 3년 후부터는 변동금리로 이자율이 낮아지는 등 혼란스러워질 수 있는 만큼 상품간 비교를 통해 보다 현명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머니투데이 임상연기자 sy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