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세계12위가 아니고 '삶의질' 12위?

2013. 3. 23. 23:09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수출 세계12위가 아니고 '삶의질' 12위?

[컬처톡톡]봄에게 보내는 낮은 욕망의 편지

 

봄이 왔습니다. 경칩도 지나고 춘분도 지났으니 님의 헤르메스 꽃 목련, 라일락도 곧 피겠죠.

그런데 2013년 한국은 님을 맞을 여유가 없는 듯합니다. 웅혼한 국가였던 고구려의 후손일 북한은 한국의 봄 옴을 폭력으로 막고 정치권엔 리더의 포효는 안 들리고 잡새들의 ‘소통-불통-깡통’ 통통 데시벨만 높습니다.

청문회 공직자 후보들의 여전한 '노블리스 오블리제' 부재는 정직한 성공을 가르친 서민 부모들이 자식들 볼 낯을 없게만 합니다. 10년 뒤를 생각하면 4-50대 남자들은 봄 식탁에 앉기가 불안하고 사회 병목에 몰린 자영업자들의 한숨 데시벨은 점점 높아만 갑니다.

페이스북에 ‘떠나자, 뭘 해야 할까...최소한 믿을 무엇은 무엇일까? 잘 될까, 10년 후엔...’ 글들을 보면 그들 가슴에 님이 아직 오지 않았고 겨울은 미련스럽게 남았습니다. 대기업들의 글로벌 성과, 싸이 열풍, K-POP 낭보, 김연아의 여왕 귀환, 개콘의 웃음... 반갑기는 한데 그들만의 봄 같이 느껴지는 건 뭘까요?

'춘래불사춘'. 전한시대 미인 왕소군이 흉노에 볼모로 시집감을 한탄한 한 풍류 일사의 시 구절이 생각납니다. ‘이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은 왔어도 봄 같지가 않구나(春來不似春).’

이 땅에 꽃과 풀이 있는 봄 같은 봄(春似春), 님은 어디서 올까요? 세상 일 상당수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님을 맞음도 우리 마음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그러니 님은 벌써 와 있지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함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멀리 떠난 신랑이 밤으로 오는데 등불을 꺼놓고 잠든 신부처럼.

한국은 삶의 질이 세계 189개국 중 세계 12위라고 하고 그렇게 빨리 삶의 질이 오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답니다. 수출 12위가 아니고 삶의 질 12위라면 봄의 파랑새는 사실 우리 곁에 와 있어야 맞을 겁니다.

그럼에도 봄이 봄 같지 않다면 욕망과 거짓을 좇아 우리 스스로 이 땅의 꽃과 풀을 유기한 때문일까요? 더 높게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만이 추앙받고 낮은 데로 임하고 덜 가진 것을 못났다고 하고, 과시와 허위와 깊이 없음의 엷은 소통(薄通)이 더 스마트한 삶이라고 은연중 믿게 만든 사회 그리고 그를 믿어버린 개인들이 담합해서 말이죠.

님은 벌써 우리 곁에 온 것 맞겠죠? 땅과 공기에 생기를 불어 넣어 목련은 하얗게, 개나리는 노랗게, 라일락엔 벌을 부르는 향기를 붓고 있는 것 맞겠죠? 우리가 다만 육신의 편안함과 덧없는 욕망을 좇느라 그 업사이클링의 기적을 모르는 것이겠죠.

욕망을 내려놓고 낮음의 세계를 믿고 뒤와 옆의 세상을 돌아본다면 그때 봄! 님은 이미 있었던 친구처럼 훈풍과 온기로 우리를 감싸 안아주겠죠. 그러면 잔인한 4월 대신 우리 마음에 우리 사회에 꽃과 풀의 미인 소군이 다시 귀환하겠죠.

그럼 30년간 기다리다가 결국 한국 밑바닥 예술의 봄을 더 못 믿고 베를린으로 떠난 K 대표, 욕망을 낮추고 제주로 혼자 이민 간 L 그녀, 국수리 마을에서 들과 햇빛과 놀다가 멀리 히말라야 산 네팔 국제학교로 간 H 후배의 아들도 한국의 봄으로 귀환하겠죠. 얼마 전 대법관 출신에 선거관리위원장이던 K 분이 퇴직 후 그냥 평범한 아저씨로 채소가게 편의점주 아내를 돕는 기사에선 못 보던 빛이 나더군요.

비록 떠났지만 목련 꽃망울보다 새하얀 그 분들에게서 님의 기운을 봤으니 봄! 님, 내 스스로에게 ‘ 낮은 욕망으로 살라’ 다시 명령하겠습니다. 편지를 쓰다 보니 그래도 편지를 받을 님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아, 이 편지는 바람의 우체통에 넣겠습니다. 언젠가 우리 얼굴에 낮은 욕망으로 만족한 웃음이 번진다면 이 편지를 님이 받아본 것이라고 그 때 믿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