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만 기업이 한 건물에…세금 새는 '블랙홀'

2013. 4. 5. 22:52C.E.O 경영 자료

<28만 기업이 한 건물에…세금 새는 '블랙홀'>

연합뉴스 | 입력 2013.04.05 19:28 | 수정 2013.04.05 19:57

 

세계 조세피난처 수십곳에 20조달러 은닉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미국 델라웨어주(州) 윌밍턴의 한 단층건물은 아메리칸항공, 애플, 뱅크오브아메리카, 카길, 코카콜라, 포드, 제너럴모터스, 구글, 월마트 등 28만5천개 기업의 법적 주소지다.

카리브해의 영국령 케이맨제도에 있는 한 5층짜리 빌딩 역시 외국 기업 1만8천곳의 주소지로 등록돼 있다.

이들 지역은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전 세계 기업과 부자들의 돈이 몰려드는 조세피난처(tax haven)의 전형이다.

지난 4일 카리브해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재산을 숨긴 세계 부자들의 명단이 공개되면서 조세피난처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조세피난처는 카리브해와 인도양과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과 유럽 등 세계 곳곳에 있다. 세금 부담과 규제가 거의 없고 비밀을 보장해 외국인을 비롯한 비거주자의 자금을 끌어들이는 곳을 조세피난처로 부른다면 세계에는 이런 지역이 50∼60곳은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세피난처로 분류하는 세 가지 요소도 이와 비슷하다. 세금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은 세율이 높은 나라의 외국인을 유인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

그다음으로 개인 금융정보를 보호하는 비밀 유지가 핵심 열쇠다. 제도의 투명성이 없다는 점도 OECD가 조세피난처로 분류하는 또 다른 요소다.

미국 회계감사원은 이 외에도 조세피난처는 외국 조세 당국과 정보를 교환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금주의 신원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막대한 금액을 번거로운 절차 없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지역은 '좋은' 조세피난처로 꼽힌다.

바하마,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모나코, 버뮤다 등이 잘 알려진 조세피난처다. 최근 유럽연합 등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키프로스 역시 러시아인들이 특히 많은 돈을 넣어둔 피난처였다.

조세피난처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밀 은행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스위스뿐만 아니라 역외금융의 발상지인 영국(런던)을 비롯해 델라웨어주 등 미국의 일부 지역도 조세피난처로 분류된다.

델라웨어주는 인구가 약 90만명이지만 94만개 기업이 있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역시 역외 금융센터가 있어 외국인 예금자를 감시에서 보호해준다. 런던에서는 외국인이 규제를 받지 않게 도와주는데 돈세탁 방지 면에서 런던은 케이맨제도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이 때문에 작은 섬나라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선진국의 금융 센터를 개혁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기업들이 세금을 회피하려고 조세피난처를 이용하는 일은 근래 큰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아마존과 스타벅스는 활발하게 사업하는 국가에서 버는 수입을 줄이고 세율이 매우 낮은 지역에서 얻는 이윤을 높이는 회계 수법 때문에 지난해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됐다.

지난해 미국 기업 60곳을 조사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들이 1천660억 달러를 역외 계좌에 보유하고 있다면서 이는 미국에서 올린 이익의 40%에 이른다고 밝혔었다.

작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케이맨제도에 서류상 회사를 만들어 세금을 회피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조세피난처에는 세계 수백만개의 기업과 은행 수천곳 등이 몰려있다. 이곳에 숨은 자금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컨설팅업체 매킨지의 수석이코노미스트였던 제임스 헨리는 민간단체 세금정의네트워크(TJN)를 위해 지난해 쓴 보고서에서 2010년 말 기준으로 최소 21조 달러의 금융자산이 비밀 조세피난처에 숨어 있다고 추산했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 규모를 합친 것과 비슷한 막대한 규모다.

그는 조세피난처가 세계적으로 세금의 '블랙홀'이라고 비판하면서 연간 3% 이자에 세금을 30%만 물린다고 가정해도 1천900억∼2천800억 달러의 세수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또 조세피난처에 있는 돈이 많게는 32조 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가 자금 규모를 지나치게 부풀려 잡았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OECD는 2007년 역외 피난처에 있는 자금이 5조∼7조 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kimy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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