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1만대군' 숫자에 취했다 망해

2013. 6. 21. 20:08C.E.O 경영 자료

'벤처 1만대군' 숫자에 취했다 망해

 

 

'창조경제'라는 키워드로 새 정부의 중소혁신기업 지원 움직임이 활발하다. 2000년대 초반 한국경제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벤처 열풍이 재연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벤처투자 시장에도 '신(新) 르네상스' 훈풍이 불고 있다. 코스닥지수가 연내 600선을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10년 전 실패'를 거울삼아 모처럼 지펴진 벤처투자 열기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들도 구체화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중소혁신기업의 '창업-성장-회수-재도전'의 선순환 구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책 지원방안을 내놨고, 국회도 벤처생태계 조성 등을 뒷받침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넘어야할 산은 여전히 높다. 정부 주도의 벤처투자는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하는데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경쟁력있는 벤처기업 양산을 위한 자본시장의 역할과 과제를 8회에 걸쳐 집중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벤처투자 新르네상스 ① 과거 실패의 원인
창업 지원 기관 일원화 안돼
자격 안되는 기업에도 지원
시장 신뢰 잃고 거품 양산



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벤처 열풍은 지난 98년 5월 제정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서 비롯됐다. 당시 국민의 정부는 중소기업과 인큐베이팅 단계의 소기업에 이르기까지 특별법 기준에 부합하면 파격적인 정책자금과 세제 혜택을 부여했다.

그 결과, 98년 2000여개 수준이던 벤처기업 수는 2001년 1만1000여개로 급팽창했다. 벤처기업이 빼곡했던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는 "동네 강아지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농담이 회자되기도 했다. 그 만큼 정부의 벤처 육성정책은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채 급속도로 변질됐다. 당연히 허수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기술력 있는 업체 위주로 지원이 집중되지 않은 채 부실기업이 양산됐고, 시장의 신뢰만 잃은 채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양영석 한밭대 창업경영대학원 교수는 "무엇보다 벤처기업 지원 창구가 일원화되지 않으면서 무분별하게 예산이 낭비되는 결과로 이어졌다"며 "코스닥시장 진입 기준도 낮아 실적 기반이 없는 기업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거품이 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구조는 현재에도 큰 변화가 없는 상태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기술보증기금, 한국산업기술평가원, 신용보증기금, 한국발명진흥회, 서울산업통상진흥원 등 현재 창업이나 벤처기업 지원 명목으로 자금을 집행하는 기관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실효성이 거의 없다.

금융권에서는 지원 자격이 안 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돈이 흘러가면서 신용불량자 양산 등 부작용이 잉태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고 지적한다.

정책자금 지원이 단기에 그쳤던 점도 실패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는 단순히 초기 지원대상 숫자만 늘리는데 관심이 있었을 뿐 확고한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뒷받침을 해주지 못했다. 사업화 단계 직전에서 꼬꾸라지는 기업들이 봇물을 이뤘다.

벤처기업연구원 관계자는 "벤처회사는 단계별로 자금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정작 중요한 시기에 돈이 달려 퇴조의 길로 들어선 회사들이 적지 않았다"며 "코스닥시장도 어느정도 실적 기반을 전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디어만으로 무장했던 소기업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고 전했다.

새 정부의 혁신중소기업 지원책이 성공하기 위해 민간자본 유치의 중요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대기업의 실종된 동반자 정신도 한 몫을 차지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유망한 벤처기업 인수에 소극적이었다. 기업 끌어안기는 커녕 쓸만한 인재를 빼내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승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그룹이 2000억원을 투입해 유망 벤처기업 인수 계열사를 만들 경우 50여개 정도의 유망기업이 탄탄한 자금줄을 확보하게 된다"며 "정부가 주장하는 벤처생태계 조성에 대기업이 나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달 대기업에 인수합병(M&A) 된 벤처기업의 경우 향후 3년간 계열사 편입을 유예해 중소기업으로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벤처ㆍ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을 발표, 최소한의 촉진 장치를 마련했다.

조태진 기자 tj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