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 21:19ㆍ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전세는 일종의 사금융, 대체상품 못 만드나?"
남편은 노르웨이인이다. 한국인과 일한 경험이 많다. 때문에 한국 상황과 문화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남편이 한국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한국의 ‘전세 제도’다. 남편에게 한국의 전세를 설명해 준 적이 있다. 그때 그의 반응은 “전세금을 낼 돈이 충분히 있는데 왜 집을 사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선 담보 없이도 전세금은 빌릴 수 있는데, 왜 집을 담보로 평생 갚아 나갈 수 있는 집값을 쉽게 빌릴 수 없는지’가 외국인들에게 이상한 부분이다. 특히 최근 한국의 전세 가격이 주택 가격의 70%를 넘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점이다.
미국에서 집을 사거나 소유하는 데는 한국과 다른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우선, 대부분의 미국인은 집을 살 때 비교적 오랜 기간 은행에서 집 구입자금을 빌리는 ‘모기지(mortgage)’를 이용한다. 집값 중 20% 정도만 있으면 사려는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30년 동안 돈을 빌리고 이 돈을 매달 갚아 나간다. 30년이라는 모기지 기간이 길다면 10년이나 20년도 가능하지만 미국에서 30년 모기지의 인기는 10년이나 20년짜리 상품에 비하여 월등하다. 30년짜리 모기지가 나온 이유는 비교적 낮게 정해진 이자율로 집값을 평생 갚아 나갈 수 있도록 해 안정적인 가계 경제를 꾸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 부동산 거래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집을 파는 사람만 부담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거래 비용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도시의 경우 집값의 5~6% 정도로 한국보다 많이 비싸다. 5억원짜리 집을 팔면 2500만원에서 3000만원쯤을 부동산 거래 비용으로 부담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미국은 주택 소유 관련 세금이 아주 높다. 주택 보유세는 지방자치단체가 부과하는 세금이며 상당 부분이 해당 지역 공립학교를 위해 쓰이고 있다. 대도시 인근의 좋은 주거지라면 보통 주택 가격의 2% 정도를 매년 주택 보유세로 부과하고 있다. 즉 5억원짜리 아파트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택 보유세로 매년 1000만원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앞서 말한 모기지와 관련해 이자에 해당하는 돈에선 세금을 공제해 준다는 것이다. 또 주정부에 주택 보유세를 낸 만큼 주택 관련 세금 역시 공제가 된다. 이는 주택 소유자에 대한 혜택이라기보다 자칫 세금에 또 세금을 내게 되는 이중과세를 막기 위한 제도다. 미국에서는 한 사람이 다수의 주택을 소유했다고 해서 이에 대해 징벌적 세금을 부과한다거나 추가로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2007년 이후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 경기 불황의 근본적 원인이 미국 주택 시장에 있다는 건 이미 전 세계가 알고 있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 모기지는 월스트리트가 미국 주택 시장의 버블을 부추기는 데 이용한 주범이기도 하다.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많이 참고하는 주택지수는 ‘Case-Shiller Composite 20 City Home Price Index’다. 이 지수는 최고점을 기록한 2006년 7월 이후 2009년 3월까지 무려 32%나 추락했다. 하락 추세는 2012년 중반까지 이어졌다. 2013년 들어 상황이 조금 나아지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약 10% 성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지수뿐 아니라 미국에서 발표되는 많은 주택 관련 통계가 2013년부터 미국 주택 시장의 호전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주택 시장 불황은 고용문제와 함께 미국의 경기 회복에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혔다. 주택은 중산층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투자다. 때문에 미국에서 주택 시장의 불황을 해결하는 건 경기 회복 문제뿐 아니라 버락 오바마 정권의 정치적 문제와도 바로 연결이 돼 있다.
◇ 주택시장 좋아진다는 근거는 주택 매매와 임대 시의 비용 관계
주택 시장 회복을 위해 오바마 정부는 크게 두 가지 정책을 써왔다. 첫 번째로 ‘HAMP(모기지 조정프로그램)’이라는 정책이 있다. 300만~400만건에 이르는 모기지의 이자율을 기존보다 더 낮게 조정해 주는 것이다. 이 정책은 주택 소유자의 부도를 막아 주택이 압류 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두 번째로 ‘Home Buyer Tax Credit(주택구매자 세액 공제)’란 정책이 있다. 2009년 1월 1일부터 2010년 4월 30일 사이에 연소득 7만5000달러 미만(부부 합산 연소득 15만달러)의 생애 첫 주택 구입자에게 8000달러의 세금을 공제해 줬다.
사실 미국 정부의 주택 정책은 물론이고, 미국 중앙은행이 유지하고 있는 초저금리 정책 역시 미국 경기 회복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 중산층 대부분이 주택 구입 시 모기지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이 정책들은 낮은 모기지 이자율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줬고 이는 주택 시장 호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월스트리트는 돈을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까지 너무 쉽게 모기지를 팔아 2006년 미국 주택 시장의 버블을 만든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2012년 이후 미국 주택 시장을 되살리는 데도 역할을 하고 있다. 2013년 6월 3일자 뉴욕타임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모펀드 중 하나인 블랙스톤그룹이 금융위기가 가장 심각했던 지역의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의 이런 움직임은 주택 버블 문제가 심각했던 지역뿐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같은 다른 미국 대도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금 주택 버블이 극심했던 지역의 부동산을 사고 있는 기관 투자자들은 사들인 부동산을 이용해 임대사업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입증하듯 블랙스톤그룹은 미국의 14개 지역에 새로운 사무소를 설치했다.
지난 8월 27일 워런 버핏은 미국 경제 전문 방송인 CNBC에서 “지금 같은 낮은 이자율에 30년 모기지를 생각하면 집을 사는 게 맞는 일”이라며 할 수만 있다면 여러 채를 사라는 식의 답을 내놓기까지 했다. 투자의 대가로 불리는 워런 버핏까지 미국 부동산에 대해 아주 긍정적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월스트리트 투자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주택 시장이 좋아지고 있다’고 보는 것일까. 첫 번째가 주택 매매와 임대 시의 비용 관계이다. 주택을 임대하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면 당연히 주택을 소유하는 게 경제적이다. 반대로 주택을 소유하는 비용이 임대 비용보다 비싸다면 계속 임대를 해야 한다. 지금 미국 주택 시장에서는 임대 비용보다 주택을 소유할 때의 비용이 더 경제적인 상황까지 왔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주택 시장이 오랫동안 불황에 빠지면서 신규 주택 건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규 주택이 공급되지 못하면서 기존 주택의 재고가 서서히 줄어든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재고가 줄어 공급이 부족해질 때 자연히 주택 가격은 올라갈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주택 재고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많은 지역에서 재고를 완전히 소진할 수 있는 기간이 채 6개월도 안 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전세 제도는 현대화된 금융제도를 가진 사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전세란 건 금융기관이 아닌 개인에게 돈을 맡기는, 일종의 사금융이다. 한국처럼 발전한 사회에서 제도권 금융이 전세를 대체할 만한 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영주 닐슨 퀀타비움캐피탈 대표]
'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IMF, 내년 韓성장률 3.9%→3.7% 하향 조정할듯 (0) | 2013.10.03 |
---|---|
알록달록 컬러풀 '유리 보석 옥수수' 인기 폭발 (0) | 2013.10.03 |
'뉴로 마케팅' 한국에선… (0) | 2013.09.30 |
이마트, 광어회보다 싸게 최상급 참치회 선보인다 (0) | 2013.09.30 |
지구와 닮은 외계행성, 우주에 몇 개나 있을까? (0) | 2013.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