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불평등 비판은 일면적"…FT "자본주의 양면성 봐야"

2013. 12. 25. 21:20지구촌 소식

"교황의 불평등 비판은 일면적"…FT "자본주의 양면성 봐야"

  • 남민우 기자
  • 조선비즈 입력 : 2013.12.25 17:41 | 수정 : 2013.12.25 17:57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조선일보 Db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조선일보 Db

    “교황의 주장은 틀렸다.”

    크리스마스 아침,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홈페이지 첫머리에 이런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근 강론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24일 직접 저술한 84쪽 분량의 권고문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서 “경제 불평등은 살인자와 같다”며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를 거침없이 비판했다. 또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가난과 경제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FT의 존 그래퍼 기자는 이날 ‘균형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일부 선진국에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자본주의는 양극화를 줄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선진국에서 국내 불평등이 심해지는 것과 세계 차원에서 불평등이 좁혀지고 중산층이 성장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며 이에 대한 진단과 해법에도 균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래퍼는 교황의 진단이 일면적이라는 근거로 “자본주의 덕분에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의 수백만 노동자가 가난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유럽 등 서방 세계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이들 국가의 중산층이 몰락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내 불평등의 심화 문제는 미국 등 선진국 국내 차원의 양극화 문제와 세계 차원의 성장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법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래퍼는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유럽의 기업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중국, 인도 등으로 공장을 옮긴 사실을 들었다. 이 경우 비용을 아낀 기업은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지만, 그 나라 국민은 일자리를 잃어 양극화는 더 심해진다는 것. 반면, 선진국 기업의 공장을 유치한 신흥국으로서는 일자리가 늘어나 국내 경제 사정이 예전보다는 더 나아질 수 있게 된다.

    그래퍼는 1970년대부터 줄곧 진행된 무역 자유화와 규제 완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앞서 언급된 두 종류의 양극화 현상도 더 빨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서방 세계에서 진행되는 양극화 진행은 멈추기도 되돌리기도 어렵다”면서 “다만 이러한 현상은 중국, 인도, 브라질의 중산층이 부상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썼다.

    주요 근거로는 대표적인 소득 분배 지표인 지니계수를 들었다. 그래퍼는 “2002년과 2008년 사이 전 세계의 지니 계수가 하락했다”며 “이는 아마도 산업 혁명 이후 처음 보는 현상일 것”이라고 했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 사이 양극화 진행이 가장 빠른 나라는 아일랜드였고, 다음은 스페인, 그리스, 프랑스, 영국, 스웨덴, 이탈리아 순이었다.

    그래퍼는 이 밖에 학계의 의견을 소개하면서, 자본주의 비판론자들이 흔히 지적하듯이 미국의 부유층 상당수가 불로소득자는 아니라는 점도 소개했다. 대다수가 뱅커(금융업계 종사자)나 변호사 같이 근로소득을 통해 높은 수입을 올리기 때문에 과거의 양극화와는 다른 모습이라는 주장이다.

    FT 칼럼이 이날 교황의 강론을 문제 삼은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본주의 비판이 그 뒤로 세계 곳곳에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유럽 등지에서는 때아닌 ‘색깔론’도 등장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지난 11일자에서 ‘교황은 사회주의자인가(Is the Pope a Socialist)?’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는 가하면, 폭스뉴스 같은 미국의 일부 극우 매체는 교황을 ‘마르크스주의자’로 깎아내렸다.

    교황은 이에 대해 지난달 15일 “마르크스주의는 잘못된 이데올로기”라면서 선을 긋는 한편, “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마르크스주의자라 불러도 화를 내지는 않겠다”고 했다. 불평등에 대한 자신의 문제 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