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실신 … 가짜 산수유 735억어치 판 '방문판매 왕'

2014. 1. 11. 18:50이슈 뉴스스크랩

 

마비·실신 … 가짜 산수유 735억어치 판 '방문판매 왕'

음료 마신 36명 병원 치료 받아

니코틴산 과다 함유 부작용 심해

원가 960원짜리 19만원에 팔아

값 200배 뻥튀기 37만 박스 유통

3명 영장 … 일반 제품과는 무관

 

서울 강남구의 부동산업체에 다니는 박모(65)씨는 지난해 11월 점심시간에 건강음료 시음회에 참여했다. 직장 상사가 “점심시간에 근처 식당에서 건강식품 행사가 있는데, 도시락도 제공하니 모두들 가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식당에는 판매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산수유는 피를 잘 돌게 하는 효과가 있다”며 시음을 권했다. “최고로 치는 이천 백사산수유를 그대로 담았다”고도 했다. 시음한 사람 중 몇 명이 가슴이 심하게 벌렁거린다고 하자 “약효가 워낙 좋아 즉시 반응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이 탓에 혈관질환에 관심이 많은 박씨도 시음했다. 하지만 얼마 후 몸에 반점이 나더니 사지가 마비되기 시작됐다. 결국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갔다. 박씨는 “몸 전체가 마비돼 2~3일간 아들이 대소변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박씨가 마신 음료 한 봉에는 발열·사지마비·호흡곤란을 일으킬 수 있는 니코틴산이 160㎎이나 들어 있었다. 1일 권장량(4.5~25㎎)의 7배 이상이다. 산수유 함유량은 0.8%에 불과했다.

서울시 특별사법경찰이 가짜 산수유 제품을 제조·판매한 혐의로 이천○○산수유영농법인 대표 차모(59)씨 등 3명을 검거했다고 9일 밝혔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 서부지검은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사경에 따르면 이들은 2010년 10월부터 최근까지 ‘이천흑산수유코르닌겔(제품명)’ 37만1247박스, 735억원어치를 팔았다. 이 분야에서 유명한 C식품의 지난해 산수유 매출액(120억원)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다.

박씨처럼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람만 36명이고 이 중 6명은 혼수상태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한 건강식품업체의 산수유 제품이 히트치는 걸 눈여겨본 차씨는 2010년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식품영양학 박사 학위를 가진 A씨를 채용해 제품을 개발했다. A씨는 혈행에 즉각적으로 작용하는 니코틴산을 첨가하는 방법을 썼다.

특사경 최승대 수사팀장은 “니코틴산을 섭취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 ‘비아그라’를 먹었을 때와 비슷하다는 데 착안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산수유 음료의 색깔을 내기 위해 저질 사료용 당밀을 사용했다. 공장 위치는 산수유가 유명한 이천 백사마을로 잡았다. 조합원을 모아 ‘이천○○산수유영농법인’으로 정식 신고까지 했다. 이천시에서 개최하는 산수유 축제에 참가해 제품을 판촉하기도 했다.

이들이 735억원어치를 팔 수 있었던 데는 ‘방문판매의 왕’ 유모(59)씨 역할이 컸다. 그는 전국 대리점 30곳을 열고 영업에 나섰다. 특사경에 따르면 유씨는 20대부터 잡화·화장품·건강식품 등을 팔아왔다.

유씨는 버스회사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앉아있는 시간이 많고, 중장년의 남성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기존 인맥을 이용해 일부 대기업에서 판촉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유씨는 부작용을 약효로 위장했다. 항의하는 소비자에겐 생산업체와 함께 치료비를 물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은 원가 960원(1박스)인 제품을 19만8000원에 팔았다. 서울시 특사경 관계자는 “유씨는 이 제품으로 3년간 34억원의 판매 이익을 남겼다”고 말했다.

이들은 단속에 걸려도 법망을 교묘히 피하며 판매를 이어갔다. 이천시는 지난해 1월 산수유 함량 미표기, 과대 광고 등을 이유로 이들에게 행정처분(품목제조정지 15일)을 내렸다.

그러자 이들은 성분표기를 ‘산수유’에서 ‘산수유혼합물’로 바꿔 표기하며 계속 팔았다. 이천시가 명칭 사용권을 박탈하자 제품명을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관련 법에 니코틴산 함유량에 대한 제재기준이 없어 이천시가 판매를 막을 순 없었다. 차씨는 경찰 조사에서 “제품 생산 후 식약처에서 원료를 수거해 조사를 했지만 별다른 처분을 받지 않아 제품에 별 이상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서울시 최규해 민생사법경찰과장은 “해당 제품(이천흑산수유코르닌겔)을 먹고 있거나 보관 중이면 모두 폐기해달라”고 말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천 백사산수유의 명성을 이용하는 바람에 정직하게 생산하는 이 지역 농민들까지 피해를 볼까 우려된다”며 “해당 지역의 다른 산수유 제품은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니코틴산=비타민B3 또는 니아신(niacin)이라고도 한다. 고콜레스테롤혈증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된다. 과다 섭취할 경우 홍조, 피부 가려움증, 부종, 위장장애 등의 부작용이 있다. 많은 양을 장기간 복용할 경우 간 기능 장애가 발생한다.

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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