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이동제 시행 10년.. 보조금만 19조 남발

2014. 1. 15. 21:06이슈 뉴스스크랩

번호이동제 시행 10년.. 보조금만 19조 남발

파이낸셜뉴스 | 입력 2014.01.15 17:25

 

전체가입자 5000만명대,시장구도 변화 안나타나
스피드011·파워017 등 번호브랜드는 역사속으로

지난 2004년 1월 1일 오전 7시께 서울 반포동 고속터미널. 남용 LG텔레콤(현 LG U)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어깨에 띠를 두른 채 모였다. 남 사장의 선창으로 "번호이동 가입자 대폭발"이란 구호를 외쳤다. 남 사장과 경영진은 결연한 표정으로 행인들에게 번호이동을 독려하는 전단지를 나눠주었다.





같은 날 남중수 KTF(현 KT) 사장은 오전 11시께 서울 선릉역 부근에서 경영진과 함께 행인들에게 찹쌀떡을 나눠주면서 번호이동을 독려했다. 남 사장 일행은 "이제 새로운 KTF 011로 오십시오"라면서 가두홍보에 열을 올렸다. 같은 날 표문수 SK텔레콤 사장도 서울 용산전자상가를 방문해 번호이동 홍보활동에 구슬땀을 흘렸다.

10년 전 '번호이동성' 첫날의 풍경이다. 번호이동성은 고객이 번호를 그대로 둔 채 사업자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당시, 후발사업자인 KTF와 LG텔레콤은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을 추월할 수 있는 시장재편의 기회로 여겨 공격적인 번호이동 마케팅을 벌였다. 당시 SK텔레콤은 '스피드 011'이란 브랜드를 앞세워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현재 번호이동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연간 790만명 이상 이통사 갈아타

15일 이통사 집계에 따르면 2004년부터 1월 현재까지 이통3사 간 번호이동자는 총 7900만명 정도다. 연간 790만명가량이 번호이동을 했다는 얘기다. 번호이동 첫해인 2004년에는 293만8061명이 이동을 했다. 첫해는 이통3사가 번호이동을 6개월 단위로 시차를 두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이동자가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그후 2005년 557만2690명, 2007년 880만2235명, 2009년 757만2288명, 2011년 975만9456명, 2013년 913만9025명 등이 이동통신사를 갈아탔다.

이 과정에서 이통시장의 전체 가입자 규모는 3000만명대에서 5000만명대로 높아졌다. SK텔레콤은 지난 2004년 1878만3338명이던 가입자가 2013년 2728만515명으로 증가했다. KT는 지난 2004년 1172만8932명이던 가입자가 2013년 1641만4618명으로 늘었다. LG U는 지난 2004년 607만3782명이던 가입자가 2013년 1081만9264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번호이동이 시행된 지 10년이 흘렀지만 이통3사의 '5대 3대 2' 시장구도는 크게 변한 게 없다. 여전히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은 50%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고, 후발 사업자는 30%와 20%를 각각 점유하며 경쟁하고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스피드 011'

번호이동 10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변화는 번호 브랜드의 퇴출이다. 2004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통시장에서는 스피드011(SK텔레콤), 파워017(신세기통신), 원샷018(한솔텔레콤), 인터넷019(LG텔레콤), n016(KTF) 등이 고객들의 머릿속에 브랜드처럼 각인돼 이통사 선택의 가늠자 역할을 했다. 고객들은 단연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스피드011을 선호했다. 후발사업자 입장에서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심지어 011 골드번호는 고가에 거래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번호이동이 시행되면서 번호는 그대로 둔 채 사업자만을 바꿀 수 있어 번호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게다가 번호이동성과 동시에 010 번호통합제도까지 병행되면서 번호만으론 해당 이통사를 구별하기 어렵게 됐다. 이는 번호 브랜드의 퇴출을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10년간 보조금만 19조원 뿌려

번호이동 10년 속에는 '그늘'도 있다. 이통 가입자가 번호이동을 자유롭게 하게 되면서 이통사 간 가입자 출혈경쟁이 가열되는 부작용을 낳은 것. 이통사는 정부의 단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보조금을 과도하게 지급하면서 시장이 혼탁해졌다.

지난 10년간 번호이동 가입자 7900만명을 기준으로 최소 보조금 24만원으로 계산하면 18조9600억원가량이다. 그간 이통사가 19조원 가까운 보조금을 번호이동을 위해 뿌렸다는 얘기다.

한편으론 내수 경기 활성화로 볼 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비용 낭비란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런 비용으로 통화품질 향상이나 소비자 편익 제고에 사용하는 게 더욱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통사의 출혈경쟁은 번호이동 시행 10년 만에 정부가 '이통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란 특단의 카드를 꺼내게 만들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