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자들의 회사 운영 제1원칙은 '공무원 관리'

2014. 5. 5. 20:01C.E.O 경영 자료

업자들의 회사 운영 제1원칙은 '공무원 관리'

[연속기획 - 썩어가는 공직사회, 이제 칼을 들어라①] 노컷뉴스 | 입력 2014.05.05 03:

 

[CBS노컷뉴스 임진수 윤지나 박종관 기자]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공직사회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다. 공무원과 산하단체, 이익단체, 사기업 사이에 얽히고설킨 유착 관계가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사고의 발단이 됐고 촉각을 다투는 구조 현장에서조차 공직사회의 부처이기주의와 제 밥그릇 챙기기, 복지부동이 여실히 드러났다. 썩어가는 공직사회의 민낯을 지켜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공직사회를 이대로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CBS 노컷뉴스는 6차례에 걸쳐 공직사회 개혁의 필요성과 그 방향을 살펴보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아흐레째인 24일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항에서 지지부진한 구조작업에 한 실종자 가족이 이주영 해수부 장관의 얼굴을 잡고 항의하고 있다. 윤성호기자

# 장면 1

수도권의 한 지자체에서 30년 동안 근무한 A(65) 씨는 정년퇴직 이후 산하 기관장을 거쳐 요즘은 건설업체 상무로 일하고 있다. 건설 관련 인허가 업무를 하며 5급으로 퇴직한 덕분이다. A씨는 업체에 후배 공무원들을 소개시키는 일을 한다. 밤마다 사장이나 다른 직원들을 데리고 나가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이다. 시쳇말로 '술 상무'다.

# 장면 2

건설자재 납품업을 하는 B(45) 씨가 회사를 운영하는 제1 원칙은 공무원 관리다. 아버지는 사업을 물려주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접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향인 경상북도 인맥은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런 인맥이 없으면 지자체가 발주하는 사업에 납품이 어렵기 때문에 평소에 골프 접대와 술자리 등으로 인맥을 관리한다. 이제는 공무원들이 자기들끼리 술을 마시다가도 B씨에게 연락을 해온다고 한다. 와서 술값을 계산하라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로 인한 파도가 공직사회를 집어삼킬 기세다. 아니, 세월호 참극을 낳은 '관료사회의 적폐'가 이제야 제대로 부메랑을 맞았다. A씨와 B씨처럼 공무원과 산하기관, 이익단체, 그리고 사기업까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오랜 유착관계가 주요 타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이번 만큼은 소위 '관피아'나 공직 '철밥통'이라는 부끄러운 용어를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추방하겠다는 심정으로 관료사회의 적폐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확실히 드러내고 해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대 정권마다 되풀이된, 그러나 대부분 실패에 그친 공직사회 개혁을 위해 박 대통령도 칼을 빼들고 나선 것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1차적 원인은 승객 구조를 외면한 선장과 선원, 그리고 '돈'에 눈이 먼 선사의 무책임한 태도에 있다. 하지만 선박 도입과 개조에서부터 안전 점검, 운항 허가 등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관리ㆍ감독을 게을리 한 관료조직에 근본적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앞장서 선박 연령을 최대 30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도록 했다. 세월호가 무게를 239톤이나 늘리고 정원도 116명이나 늘린 무리한 구조 변경을 했는데도 한국선급의 안전검사에서 걸러지지 않았다. 선박 안전운행에 필수적인 평형수 대신 수백톤의 화물이 더 실렸는데도 해운조합은 세월호를 출항시켰다.

해운업계의 이런 잘못된 관행은 결국 정부가 유도한 것이나 다름없다. 해양수산부 등 정부의 퇴직 공직자들은 자리에만 관심을 보였다. 한국선급은 역대 회장과 이사장 12명 중에서 8명이 관련 기관의 관료 출신이었다. 해운조합도 고위 관료 출신들이 역대 이사장 12명 가운데 10명을 차지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감독은 '뒷전'으로 밀리고, 서로 '뒷배'를 챙기는 유착관계만 더 깊어졌다.



↑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의 운항사인 청해진 해운과 실 소유주 등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23일 오전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청해진 해운 인천 사무소를 검찰이 추가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윤창원기자

검찰은 이번 사고 이후 한국선급이 해수부 공무원들에게 금품 로비를 한 정황을 잡고 수사에 나섰다. 한국선급 직원들도 선박 검사와 관련된 뒷돈이나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해운조합 역시 명절 때마다 해수부와 해양경찰청 간부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부처와 산하기관, 또 이익단체 간의 이런 '밀회'는 비단 '해피아(해수부+마피아)'에 그치지 않는다. 원조 격인 '모피아', 즉 옛 재무부 출신 인사들의 산하기관 장악을 넘어 이제는 관료에 '마피아'를 결합한 '관피아'가 한국 사회를 포위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산피아(산업통상자원부+마피아)', '국피아(국토교통부+마피아)', '교피아(교육부+마피아)'에 원전마피아, 철도마피아까지 그야말로 '관피아 전성시대'다.

앞서 살펴본 A씨와 B씨의 사례처럼 비단 공무원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상황의 심각성을 키운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감시가 상대적으로 소홀한 지방자치단체의 관피아는 그 규모와 실태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중앙의 관피아가 덩치를 키워 생명을 위협하는 '암덩어리'라면 지방의 관피아는 '기생충'에 비유할 수 있다. 이미 우리 몸을 파고들어 건강을 해치고 있는데도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앓기 때문이다. 쳐부술 것은 '암덩어리'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해피아 등 공직사회의 폐단이 드러난 만큼 이번 기회에 중앙 부처나 지자체를 가리지 않고 개혁의 칼날을 휘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외양간을 고쳐야 될 최적의 시기는 바로 소를 잃고 난 직후"라며 "선후배 관계나 전임자-후임자 관계가 아주 공고하게 짜여 있어서 선배가 먼저 유관기관에 가면 후배가 안 챙겨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또 자기도 그 길을 따라가면 자기 후배가 자기를 봐주도록 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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