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25. 22:02ㆍC.E.O 경영 자료
포퓰리즘 결별 고통의 4년, 그리스 번화가엔 손님 북적
◆ 부활하는 남유럽 4國을 가다 (上) ◆
이달 초 그리스 아테네의 명동으로 불리는 신타그마 광장 '에르무' 거리는 활기로 가득 찼다. 이곳에서 만난 대학 신입생 마리우스와 디미트리스는 "용돈이 늘어나 외출과 쇼핑을 자주 할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신타그마 광장에서 만난 택시기사 코르기우스 씨도 "손님이 늘어 요즘 운전하는 데 신바람이 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밀라노로 이동했더니 밀라노 대표 백화점인 라리나센테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2개월 전 분위기와는 달라도 아주 달랐다. 밀라노 시민 풀비오 씨는 "이탈리아 경기가 지난해에 비해 회복세로 접어들었다"고 전했다.
2010년 유럽 경제위기 진앙이었던 남유럽이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25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올해 그리스와 이탈리아 경제성장률은 모두 0.6%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3년 가까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바닥은 찍은 셈이다.
그리스는 특히 지난달 초 4년 만에 30억달러 규모 국채 발행에 성공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에 화려하게 복귀한 데 이어 23일엔 국가신용등급도 상향 조정됐다. 스페인도 지난해 말 구제금융을 졸업한 데 이어 그리스와 함께 국가신용등급이 올라 남유럽 국가 부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포르투갈도 지난 4일 구제금융 졸업을 공식 선언하면서 홀로 서기 준비를 하고 있다. 남유럽 4개국 경기가 바닥을 치고 어둠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셈이다.
23일 국가신용등급이 -B에서 B로 한 단계 올라선 그리스는 요즘 한껏 고조된 분위기다.
그리스 아테네 국회의사당 앞 건널목에서 시민과 관광객이 번화가인 에르무로 향하고 있다. [아테네 = 이경진 기자] |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보고서에서 "지난해 그리스 정부의 기초 재정수지가 흑자로 돌아섰고 예산 운용에도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며 "위기가 끝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 '부활'의 전조가 느껴졌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그렉시트(Grexit)' 여론이 들끓었지만 그리스 정부는 지난 4년간 연금 삭감, 무상복지 축소 등 포퓰리즘 정책을 손봤다.
그리스는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에서 구제금융 2510억유로를 지원받으며 힘든 세월을 견뎠다.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을 구제금융 지원 요건으로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정리해고는 물론 연금 삭감, 증세가 이어졌고 공항마저 팔아치웠다. 간난신고의 고통 속에서도 그리스는 수출을 늘려 무역적자를 대폭 감축했다. 여기에 구조조정과 긴축 정책으로 재정적자도 줄였다. 소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90% 이상을 점유하고 투자가 저조한 국가인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환골탈태'다. 그리스는 트로이카 채권단 측 요구사항을 충실히 이행한 결과 올해 경제성장률이 2008년 이후 처음으로 플러스로 반등할 전망이다.
아테네 집무실에서 만난 스테파노스 이사이아스 투자청장은 "채권 발행은 그리스 부활을 위한 첫 단추"라며 "시장 컨센서스 금리였던 5.0~5.25%를 밑돌면서 그리스 경제에 대한 신뢰가 회복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리스 정부는 그동안 화장품, 침구류, 유제품 등 그리스 대표 상품 수출을 확대해 경제 펀더멘털을 키워왔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 수출 정책을 펼치면서 2010~2012년 그리스 총수출은 159% 증가했다. 올해 초 KOTRA '투자옴부즈맨제도'를 벤치마킹해 정부 산하기관으로 삼은 일도 달라진 태도를 보여주는 일례다.
이탈리아도 과거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찾는 중이다. 이탈리아 통계청과 EU 집행위원회,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 등에 따르면 지난해 -3%까지 떨어진 산업생산은 올해 1월 1% 성장세를 보였다. 올 한 해 1%를 기록할 전망이다. 민간소비도 작년 -2.2%에서 올해 0.4%로 돌아설 전망이고, 설비투자 역시 2013년 -5.5%에서 올해 2.2%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이탈리아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는 원인 중 하나는 현 정부가 각종 개혁 정책에 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역대 최연소 총리인 마테오 렌치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세금 감면, 정치ㆍ행정 구조 개편과 불합리한 규제 혁파, 외국인 투자 유치, 불필요한 정부 지출 삭감 등 전방위적이고 과감한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 대부분 국가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EU 의존도가 높은 이탈리아 경제가 긍정적 영향을 받은 이유도 크다.
남유럽 국가 부활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 덕분이다.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한 손쉬운 방법은 아베노믹스처럼 국가별 화폐 평가절하를 통해 재화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지만 남유럽 국가들은 유로화를 쓰는 유로존 회원국이기에 환율 정책을 펼칠 수가 없었다. 이에 따라 이들 국가는 노동비용 등 생산비를 줄이고 재화와 서비스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통해 수출 경쟁력을 개선했다.
스페인의 제조업 수출 증가세가 가장 두드러졌다. 스페인 총수출에서 15%를 차지하는 정유제품 수출은 2년 동안 64% 증가했다. 포르투갈 역시 정유, 철강, 기계류, 자동차 수출이 같은 기간 48%에서 많게는 150%까지 뛰었다.
임금 삭감 노력과 금융시장 개선도 현재 진행형이다. 오태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유럽 연구원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그리스와 스페인의 단위 노동비용은 최고점 대비 7~14% 하락을 기록했고 포르투갈도 최근 임금 하락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스페인 정부는 2012년 노동시장 개혁을 단행해 임금을 낮췄고 자본건전성이 떨어지는 은행에 대해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스페인 1위 은행 산탄데르는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보다 2배 증가했다.
[밀라노 = 이호승 기자 / 아테네 = 이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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