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김형태의 '예술과 금융'] 휘어진 공간, 글로벌 경제… 한곳으로 모인다

2014. 9. 26. 19:43C.E.O 경영 자료

조선비즈 입력 : 2014.09.20 03:08

아인슈타인 시공간도 카푸어의 예술 작품도
세계 자본 끌어당기는 美 국채·달러와 닮아

김형태 조지워싱턴대 객원교수

바닥이 평평하면 빗물이 사방으로 흐른다. 하지만 바닥이 움푹 파여 있으면 빗물은 휘어진 아래쪽에 모두 모인다. 휘어진 공간에 모이는 것은 빗물만이 아니다. 중력도, 예술도, 경제도 오목하게 휘어진 곳으로 힘과 에너지가 집중된다. 아인슈타인의 우주 공간도, 카푸어의 작품 공간도, 미 달러 중심의 글로벌 경제 공간도 모두 휘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인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은 휘어진 시공간 때문

왜 야구공을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밑으로 떨어질까. 계속 직선으로 날아가거나 휘어져 위로 올라갈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바로 중력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력은 왜 생기는 것일까?

중력의 원인에 대한 생각의 틀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공중에 평평하게 활짝 펼쳐 놓은 커다란 이불을 생각해 보자. 그 위에 무거운 돌덩어리를 얹어 놓으면 아래로 움푹 휘게 된다. 이 휘어진 이불 위에 탁구공을 굴리면 움푹 휜 공간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휘어진 공간이 탁구공을 끌어당기는 중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뉴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이란 힘이 사과를 밑으로 떨어지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중력이란 힘은 애초부터 없고, 무거운 지구가 휘게 한 공간 속으로 가벼운 사과가 움직이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에게는 휘어진 공간 구조가 곧 중력이다. 태양과 비교하면 지구가 가볍고 태양이 무겁다. 태양이 우주 공간을 움푹 파이게 만들고 지구는 이 휘어진 공간 속에 끌려들어가 태양 주변을 돌게 된다. 공간의 휘어진 정도, 즉 곡률이 물체의 움직이는 방향과 형태를 결정하기 때문에, 중력은 물체의 개별적 특성이 아니라 시공간의 구조적 특성에서 나온다.

카푸어 작품 '비움(void)'


아니쉬 카푸어의 휘어진 공간 구조 작품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작품도 아인슈타인의 우주 공간처럼 오목하게 휘어져 있다. 오목한 공간은 무언가를 담고 채울 수 있는 공간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릇은 모두 오목하게 휘어져 있는 이치다.

카푸어는 1980년대부터 '비움(void)'이란 주제 아래 일련의 작품을 창출해 냈다. '나의 몸, 너의 몸'은 생명의 에너지로 인해 움푹 파이고 휘어진 공간을 보여준다. 진한 적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공간은 휘어진 우주 공간처럼 신비로운 감정을 유발한다. 이 모양새는 생명이 잉태되는 여성의 신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의 우주 공간처럼 무언가 보이지는 않지만 무거운 물체나 에너지에 의해 휘어진 공간이다.

전통적 조각은 '외부로 돌출되는 형태(positive volume)'를 강조한 반면, 카푸어의 작품은 '내부로 휘어 들어가는 형태(negative volume)'를 강조한다.

카푸어 작품 노랑

카푸어의 작품 중에는 규모가 워낙 커서 설치 미술로 간주되는 작품도 많은데, 모두 휘어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휘어진 공간에선 무언가 에너지가 꿈틀거린다. 한번 빠져들면 영원히 나오지 못할 블랙홀 같기도 하다. 블랙홀처럼 어둡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뜨거운 빛을 발한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별을 항성이라고 한다. 태양이 항성이다. 카푸어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응축된 에너지를 녹여내어 스스로 빛을 발하며 솟아나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카푸어의 작품은 아름답다기보다 숭고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노랑'이란 작품을 보자. 노랑은 태양처럼 스스로 에너지를 발산해 빛나는 예술적 항성을 의미한다. 엄청난 에너지로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다시 그것을 에너지원으로 하여 더욱 밝게 빛난다.

글로벌 자본 끌어당기는 美 국채·달러화

세계경제는, 경제 '질량'뿐 아니라 군사·외교 질량이 가장 무거운 미국에 의해 움푹 휘어져 있다. 세계경제의 기축통화는 미 달러화이고, 미 국채는 금융자산 중 가장 안전한 자산이다. 세계 외환보유고의 60% 정도가 달러로 운용되는 이유다. 아무리 한국이나 중국이 경상수지 흑자를 거둔다 해도 흑자를 운용할 안전자산은 미국 국채일 수밖에 없다. 특히 경제위기나 지역 분쟁으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세계의 자본은 미국 국채로 빨려 들어간다. 아인슈타인의 휘어진 우주 공간처럼, 카푸어의 움푹 파인 예술 공간처럼 미 달러화와 미 국채는 글로벌 경제 공간을 휘게 만든다. 휘어진 세계경제 공간은, 안전자산을 찾아 미 국채로 집중되는 자본 때문에 더욱 더 휘게 된다.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듯 글로벌 자본은 미 국채를 향해 떨어지게 되고,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듯 각국의 자본은 미 국채 주변을 맴돌게 된다. 한국도 중국도 미 국채를 쉽게 팔아버릴 수 없고 투자를 계속하지 않을 수도 없다. 미 국채 값이 하락할 때 가장 손해를 보는 나라는 미 국채를 많이 보유한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카푸어의 작품 제목처럼, 미 달러화와 국채로 인해 휘어진 세계경제 구조는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나(한국 또는 중국)의 몸이 곧 너(미국)의 몸'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