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년]법이 법노릇 못하니…民도 법을 우습게 알지
2015. 1. 10. 18:41ㆍ이슈 뉴스스크랩
[광복70년]법이 법노릇 못하니…民도 법을 우습게 알지
‘법의 지배’ 독립성을 지켜라…법관 스스로 官아래 있는지 民 아래 있는지 자성해야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법치주의(法治主義)'. 이 말은 원래 권력자의 독단이나 자의(恣意)를 배격하고 법률에 근거해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는 의미다. "왕이라 하더라도 신(神)과 법 밑에 있다." 17세기 영국 판사인 에드워드 코크가 남긴 이 말은 입헌주의 국가의 원칙인 '법의 지배(rule of law)' 중요성을 되새겨 준다. 한국도 1945년 광복 이후 다양한 정부가 등장했지만, 법치는 공통된 화두였다. 하지만 다짐과 현실은 달랐다. '법치'의 본뜻은 흔들리고 왜곡된 이미지만 남은 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있다. -편집자주
원세훈 전 국정원장 |
"현재의 나는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죽어가는 상황을 보고 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 부장판사가 지난해 9월 법원 내부게시판인 '코트넷'에 글을 올리자 법조계 안팎은 술렁였다.
사법부가 권력의 눈치를 살피면서 법치의 원칙이 흔들린다는 비판이었다. 현직 부장판사가 한국사회 법치 현실을 정면으로 꼬집은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실제로 법치 실현의 보루가 돼야 할 대법원, 헌법재판소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
사법부의 최고권위를 자처하는 이들 기관의 판단이 나와도 결과를 수용하기보다는 '정치적 의도'를 들여다보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등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일수록 판결 이후 극심한 대립과 갈등이 이어졌다.
사법부 판단은 논란의 종결이 아닌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법부의 다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새해 신년사를 통해 "법의 지배 실현을 위한 흔들림 없는 자세로 사회 안정과 평화를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법기관 수장이 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모습은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문제는 법치의 위기가 점점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무부는 문제의 원인을 법을 경시하는 풍조에서 찾고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올해 신년사에서 "법을 어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면서 "낮은 법질서 의식은 사회 통합과 국가 경쟁력 제고에 장애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여론의 시선은 다르다. 검찰 법집행의 공정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 SBS가 TNS에 의뢰한 신년 여론조사 결과, '청와대 문건' 유출 관련 검찰 수사를 신뢰한다는 의견은 26.3%에 머물렀고,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65.0%에 달했다.
수도권, 영남, 호남, 충청 등 전 지역에서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더 높았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은 만인의 공평에 지향점을 둬야 한다. 권력형 비리 수사에서 검찰이 떳떳했는지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과 관련한 사안에서 판단의 잣대가 흔들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법부도 신뢰 위기의 시대를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본 수사결과를 내놓아도법원이 이를 묵인ㆍ방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법부를 향한 의혹의 시선은 역사적으로 축적된 결과물이다. 사법부는 과거 시국사건에서 '권력편향'의 모습을 보였다는 오명(汚名)에 시달려야 했다.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 됐던 '부림사건',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건 등은 사법부가 공정한 판단을 한 결과인지 의문이 제기된 사건들이다. 이들 사건은 뒤늦게 재심이 이뤄졌고,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인 오영중 변호사는 "법치의 현실은 국가 철학의 수준을 보여준다"면서 "잘못된 판결로 드러나도 과거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게 사법부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사법부와 정부가 신뢰의 위기라는 공통된 고민 속에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명분의 정당성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법률'에서 "법이 정부의 주인이고 정부가 법의 노예라면 그 상황은 전도유망하고, 인간은 신이 국가에 퍼붓는 축복을 만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세계를 꿈꿨던 플라톤도 법치국가의 중요성에 공감한 셈이다.
법치의 기본은 권력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법을 존중하고 지켜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법치는 권력을 위한 통치수단으로 인식되는 '의미 왜곡'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법치를 강조할 때마다 "정부부터 제대로 지키라"는 냉소적 반응을 부르고 있다.
냉소적인 시선을 해소하기 위한 해법을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에 정부도 최소한 인식은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장관은 2013년 3월11일 취임사에서 "모든 정책과 법집행은 항상 국민의 눈으로 보아 공평하고 균형감이 있는지를 살펴서 국민이 믿을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릴 때까지 부단히 고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 장관의 취임 일성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국민 3명 중 2명이 검찰 수사결과를 믿지 않는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그렇다고 법치의 현실을 개탄만 할 것인가. 냉소적 반응으로 일관할 경우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1945년 광복 이후 70년간 눈부신 경제성장을 경험한 한국사회가 새로운 도약의 30년을 준비하려면 법치의 정착이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남북분단과 이념대립을 겪는 한국 사회 현실에서 갈등의 조정 역할은 결국 법치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갈등을 방치하면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이 들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사회적 동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치는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법률에 의해 통치가 이뤄져야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국가권력 행사가 법률 보다는 정치논리나 상황논리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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