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상품권의 세계, '상품권 깡'도 늘고 있다?

2015. 2. 1. 19:34C.E.O 경영 자료

[TF탐사] '천문학적' 상품권의 세계, '상품권 깡'도 늘고 있다?

 

명절 인기 선물 1순위는 바로 ‘상품권’이다. 물건으로 하자니 까다롭고, 현금으로 하자니 성의 없어 보일 때 가장 적합한 것이 상품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만족스러운 이 상품권은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종류도 천차만별, 쓰임새도 여러 가지다. 백화점 상품권에서 전통시장 상품권까지 상품권의 세계를 집중 조명하고, 시장에서 현금처럼 유통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본다. <편집자 주>

상품권, 어디까지 만나봤니?


네모반듯한 종이 위에 적힌 숫자, 그 숫자만큼 물건이나 서비스로 교환할 수 있는 것까지는 일반 지폐와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지정된 장소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상품과 서비스로만 교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품권의 지폐와 비교된다.

더팩트

대한민국은 상품권 공화국? 국내에서 거래되는 상품권의 종류는 200여종, 음성적으로 거래되는 규모까지 파악하면 10조 원이 시장에서 오갈 것으로 추산된다./더팩트DB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가히 ‘상품권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각종 상품권들이 유통시장에 범람하고 있다. 백화점·주유·외식·구두·문화 등 상품권의 종류는 200여종, 음성적으로 거래되는 규모까지 파악하면 10조 원이 시장에서 오갈 것으로 추산된다.

상품권이란 상품과 교환할 수 있는 금액이 정해진 일종의 채권이다. 이 증서를 발행점이 취급하는 모든 상품을 구입할 수 있어 선물용으로 많이 쓰인다. 주로 백화점·유명 제화점에서 발행되고 최근에는 주유·도서·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상품권 등 다양하게 발행되고 있다.

그러나 상품권 시장이 팽창하면서 음성화된 거래도 늘고 있다. 상품권에 명시된 사용처에서 사용하지 않고, 매매업체를 찾아 이를 현금화하는 이른바 '상품권 깡'도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설 명절을 앞두고 상품권 유통이 크게 늘면 상품권 깡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명동의 한 상품권 매매업체 관계자는 "상품권 시장은 최근들어 커지고 있다. 때문에 상품권을 현금으로 교환하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면서 상품권 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 200여종 상품권, 연간 10조 원 발행

국내 상품권 연간 발행금액은 1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2013년 롯데·현대·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 3사와 홈플러스가 5조1000억 원어치, SK·GS·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정유 4사가 8000억 원 가량을 발행했다. 또 문화상품권 6000억 원, 전통시장에서 쓰는 온누리상품권은 3200억 원어치가 발행됐다. 이 밖에 구두상품권, 의류상품권 각종 음식점과 제과점이 발행하는 상품권, 지방자치단체 상품권 등이 3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상품권은 발행량에서도 지폐의 뒤를 쫒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실이 최근 한국조폐공사에 의뢰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종이 상품권 발행량은 2억7000만 장으로 신규 지폐 제조량(5억8000만 장)의 절반에 육박했다. 발행액으로 따지면 8조2797억 원어치다.

상품권 시장의 주도권은 백화점이 쥐고 있다. 조폐공사가 만든 백화점 상품권의 발행액은 2009년 1조9332억 원에서 2013년 6조4056억 원으로 4년 새 3.3배로 증가했다. 특히 50만 원권 고액권은 2009년 33만 장에서 지난해 364만5000장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최근 3년 동안 해마다 30%씩 급성장하고 있는 상품권 시장에서도 요즘에는 모바일 상품권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재 국내 상품권 시장은 올해 10조 원 규모로 추정된다. 올해는 종이 상품권이 약 9조 원, 모바일 상품권이 5000억 원 규모일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5000억 원은 각종 선불카드가 차지한다.

롯데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모바일 상품권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명절 선물로는 백화점 상품권이 가장 인기가 많다"면서 "상품권 판매량은 지난해 명절 시즌에는 2013년 대비 11% 신장했다. 이에 올해 설 상품권 패키지 총금액을 전년 설 대비 13% 늘렸다"고 말했다.



더팩트

'상품권 깡' 성행? 상품권 시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음성화된 상품권 시장도 덩달아 확대되고 있다./ 명동=박준영 인턴기자


◆ 상품권 어디에 쓰이나?

소비자들은 선물로 받은 상품권을 어디에 쓸까. 백화점 상품권의 경우 주로 수입의류나 명품을 살 때 쓰인다. 2013년 추석 전후인 9~10월 롯데백화점 서울 본점에서 사용된 상품권 중에서는 해외패션에 26.0%, 생활가전에 23.0%가 쓰였다. 소비자들은 평소 갖고 싶었던 제품의 가격대가 높을 경우 선물 받은 상품권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성향이 두드러졌다.

백화점 상품권은 주로 부모님 등 어르신들의 선물로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2013년 9~10월 롯데백화점 본점의 상품권 회수량에서 젊은 고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영플라자의 비중은 3.6%에 불과했다.

하지만 상품권은 직접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현금으로 교환하는 이른바 '상품권 깡'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수원역 인근 상품권 매매업체 관계자는 "하루에도 수십명이 상품권을 들고 와 현금으로 교환해간다"면서 "설 명절이 지나고 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상품권 매매소를 찾은 시민은 "백화점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꾸려고 왔다. 사실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려면 신용카드 무이자할부를 이용하면 된다. 때문에 선물받은 백화점 상품권은 현금으로 바꾸려고 한다"면서 "수수료를 떼더라도 현금으로 활용하는 게 더 편리하고 좋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주요 고객인 기업들도 상품권 깡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50만 원권 고액상품권을 ‘인사 또는 뇌물용’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1억 원을 전달한다고 할 때, 50만 원짜리 상품권을 사용하면 단 200장이면 된다. 이는 5㎝ 두께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금 5만 원권을 사용하면 2000장을 모아야 1억 원이 되는데, 두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요즘 뇌물사건에 심심치 않게 상품권이 등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광태 전 광주시장은 재임 시절인 2005∼2009년 법인카드로 145차례에 걸쳐 20억 원어치의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한 후 10%를 환전 수수료로 지급하는 상품권 깡을 통해 시 재정에 손실을 끼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때문에 백화점 상품권은 인지세만 내면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는 만큼 통화량 증가(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때문에 경제 전문가들은 상품권 발행 규모가 커지면 통화량과 물가를 걱정한다. 상품권의 경우 액면가 그대로 현금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화폐 규모인 통화량 부문에는 제외돼 있다.

특히 구입자가 돈을 먼저 내 상품권을 사고 그 상품권으로 물건은 나중에 구매하는 특징 때문에 상품권 발행자가 부도가 나거나 잔액 환불 거부, 세일 기간 중 사용 거부 등의 소비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결국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실제 화폐처럼 거래되면서도 정작 실상을 파악할 수는 없는 ‘유령통화’가 된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상품권은 사용이나 발행 측면에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음성화된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는 부정적 측면도 강하다”면서 “최근에는 상품권을 현금으로 교환하는 이른바 ‘깡’이 성행하고 있어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상품권법이 16년 만에 부활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상품권 시장이 10조 원 규모로 커진 가운데, 고액 상품권 등이 비자금·돈세탁용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야당에서 법 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상품권법 부활을 바라보는 당국의 시선은 신중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고액상품권이 불법 리베이트나 법인의 공금횡령 비자금 확보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더팩트 │ 황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