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동남아, 호주와 더불어 중국ㆍ미국 쟁탈전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지역이다.”

2015. 2. 8. 19:54C.E.O 경영 자료

 

구글지도한국 

구글지도캡처

 

“한국은 동남아, 호주와 더불어 중국ㆍ미국 쟁탈전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지역이다.”

 

수정: 2015.02.08 13:11
한국일보 등록: 2015.02.08 11:00

 

옌쉐퉁(閻學通ㆍ63) 중국 칭화(淸華)대 당대(當代)국제관계연구원장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세와 한국이 처한 환경을 이렇게 한마디로 압축했다. 한국은 세계 최강인 미국과 이를 추월하려는 중국이 첨예하게 맞서는 세계 3대 지역 중 하나라는 것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옌 원장은 특히 한국이 중국과 경제ㆍ안보 협력을 강화하면서 미국 일변도에서 탈피해 균형을 추구하는 데 주목했다. 중국은 미국보다 주변국 지지를 얻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한다며 한중 동맹론을 주창해온 그는 앞으로 한미가 갈등할 때 중국은 한국을 지지할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옌 원장의 시각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10월 주변외교공작좌담회, 지난해 11월 중앙외사공작회의에서 잇따라 주변국 외교를 강조한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지난달 말 베이징 칭화대 회의실에서 그를 만나 중국이 한국과 미국 또 일본을 보는 시각은 어떤 것인지, 북한과 중국 관계는 어떤 변화를 맞고 있는지를 들었다.

-중국에게 미국보다 주변국 전체가 중요해졌다고 말해왔는데 어떤 의미인가.

“중국 외교에선 ‘대국은 관건이고 주변은 아주 중요하다’란 말이 통용돼 왔다. 그러나 순서에서 알 수 있듯 대국, 즉 미국과의 관계를 주변국보다 더 중시해 온 게 사실이다. 이는 1989년 이후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큰 압력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일 때 이런 접근법은 유효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이 떨쳐 일어서며 국력이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국의 굴기란 먼저 지역 강국이 된 뒤 세계적 강국이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게 필연이다. 미국도 이런 과정을 겪었다. 지역 강국이 되려면 주변국 지지를 얻어야 한다. 중국은 이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강국이 되려 한다. 미국의 압력을 줄여나가는 것도 계속 중요하나 이젠 주변국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힘을 더 기울여야 한다. 이전과는 상황이 바뀌었다.”

-시 주석은 ‘신흥 강대국과 기존 강대국은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상호존중과 공동번영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며 미국과 ‘신형대국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그 같은 논리는 중국 정부의 공식 견해와는 다른데.

“나는 일개 학자다. 국가나 정부에 소속돼 있지도 않다. 당이나 정부를 대변하지도 않는다. 내 의견은 당이나 정부와 아무 관계도 없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 떨쳐 일어서고 있다. 한 나라의 굴기란 결국 세계 최강국을 추월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 최강국은 굴기하는 나라를 저지하려 들 수 밖에 없다. 세계 최강국은 굴기하는 나라의 장애가 될 뿐 결코 지지자가 될 수 없다. 중국과 미국의 양극 구도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중국은 10년 내 초강대국이 될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이제 대항이 핵심이다.”

-중국에게 주변국이 미국보다 더 중요하다면 주변국과 미국 사이에 충돌이 생겼을 때 중국은 주변국을 지지해야 한다는 얘긴가.

“그렇다. 중국은 이제 주변국을 지지해야 한다. 중국이 미국과 주변국 사이에 중립을 유지할 경우엔 주변국의 불만이 높아질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중국이 주변국 지지를 얻어낼 수 없고 지역의 강국도 될 수 없다.”

-북한과 미국이 충돌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더라도 중국은 주변국인 북한을 지지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중국 주변국과 미국의 모순이 중국과 관련된 사안일 경우 중국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판단하게 된다. 현재 미국은 북한에게 핵무기 포기를 압박하고 있고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중국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고, 중국으로서도 용인할 수 없는 사안이다. 중국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이 경우는 주변국이라도 중국은 북한을 결코 지지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과 관련된 사안이 아닐 경우 주변국과 미국이 충돌할 때 중국은 주변국을 지지할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만약 한국과 미국이 모순을 겪고 그 모순이 중국과 관련이 없을 땐 당연히 주변국인 한국을 지지할 것이다.”

-주변국과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중국은 주변국과 관계가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북한 일본 베트남 필리핀과 모두 마찰을 빚고 있다.

“중국은 14개 국가와 육지로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해양까지 포함하면 중국의 주변국은 30여개나 된다. 이중 단 4개국과 사이가 안 좋을 뿐이다. 비율로 따지면 매우 적다. 이에 비해 한국은 주변국인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중 2개국과 관계가 안 좋다. 비율로 따지면 50%나 된다. 일본은 주변국인 한국 북한 러시아 대만 등 4개국과 모두 안 좋다. 100%다. 중국이 주변국과 특별히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한 시각은 과장된 서방 매체의 영향이다. 어느 나라든 모든 나라와 관계가 좋을 수는 없다.”

-중국에게 제일 중요한 주변국은 어느 나라인가.

“세계 제3대 경제 대국인 일본이다. 만약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마치 현재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처럼 좋다면 아시아의 국제환경이 얼마나 달라질지 상상해 보라. 그러나 중일 관계는 단기간 내 개선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중국과 충돌을 강조하며 중국 위협론을 설파하고 있다.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구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우익세력들은 주변국과 관계가 악화해야 평화헌법 개정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일본과 주변국 관계가 좋아지면 평화헌법을 고칠 명분이 없어진다. 한국이 아무리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도 결국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은 현재 주변국과 관계 개선을 원하지 않는다. 심지어 미국도 일본에게 주변국들과 관계를 개선하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아베 총리는 이를 듣지 않고 있다.”

-중국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한국은 동북아 지역에 국한돼 있다. 영향력이 비교적 작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현재 매우 좋다. 그러나 관계가 좋다고 중요도가 더 높아지는 건 아니다. 한중 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한국이 일본보다 중국에게 더 중요한 국가가 될 수는 없다.”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경우 한국의 처지가 곤란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호주, 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미중간 실력 차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각자 국익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미국도 중국도 한국에게 어느 한 나라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등거리 외교를 펴면서 균형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올해 방중할 것이란 예상이 있다.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본다. 이미 북중 관계는 한중 관계만 못하다는 게 명백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집권 후 벌써 6번 만났다. 그러나 김 위원장과는 일면식도 없다. 북중 지도자가 만나려면 양국이 먼저 관계 개선에 관한 공동 인식에 도달해야 한다. 공동 인식의 핵심은 북한 비핵화 문제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기를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중요한 주변국 아닌가. 김 위원장이 5월에 제2차 대전 전승 7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러시아를 먼저 방문할 경우 중국의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중국의 주변국은 없다. 북한은 중국의 30여개 주변국 중 하나다. 김 위원장이 먼저 러시아를 간다 해도 그것이 중국에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역사의 관성-미래 10년의 중국과 세계’라는 저서에서 2023년 중국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치 사회 문화 분야에서도 중국이 초강대국이 될 것으로 보는가.

“문화나 창조 혁신 분야의 발전은 교육 제도와 관련이 있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부패 투쟁 등 중국의 정치 개혁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적어도 경제와 국방 부문에서는 분명 초강대국이 될 것이다.”

베이징=글ㆍ사진 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