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하락의 정치적 득실

2015. 2. 10. 20:54C.E.O 경영 자료

유가 하락의 정치적 득실

 

[한겨레] 석유, 분쟁을 불러오는 자원

‘경제적’ 파장은 일부분일 뿐

유가 하락으로 미국 영향력 확대

러시아 태도는 고분고분해져

미국 주도력 강화에 중국 반발 예상

한국의 선택지 더 좁아져


국제 원유가격이 가파르게 하락함에 따라 많은 연구기관들이 그 영향과 이해득실 계산에 분주하다. 많은 연구들이 유가 하락으로 인한 석유 소비국들의 비용 절감과 석유 생산국들의 재정적 타격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석유가격 하락이 가져올 영향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 현재의 인류 문명 자체가 석유에 기반하고 있고 단 하루만 석유가 없어도 경제가 굴러가지 않기 때문에 석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겨레

석유는 생산과 소비가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지는데도 지역적으로 아주 편중되어 분포하고 있어, 석유 확보를 둘러싸고 끊임없는 분쟁을 불러일으키는 자원이다. 석유가 많이 매장된 지역이 대체로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석유의 가격 변동 역시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데,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분석은 많이 이루어졌는데, 정치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측면을 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유가 하락으로 러시아가 미국이나 서유럽에 좀더 친화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이는 미국의 상대적인 영향력 강화를 가져올 것이다. 러시아는 과거 석유가격의 변동에 따라 대외정책의 강경과 온건 노선을 반복해왔다.

예를 들어 2차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급등한 시점인 1979년에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사례가 있다. 1978년에 유가는 배럴당 14달러 수준이었는데 1979년에 31달러로 급등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해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50달러에서 101달러로 상승한 것이다. 당시 소련은 시베리아 유전 개발과 유가 상승이 맞물려 막대한 재정 수입을 올렸기 때문에 해외 군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한편 1980년대 내내 유가가 하락함에 따라 소련은 석유로부터 얻는 재정수입이 감소했다. 그러자 1985년에 공산당 서기장이 된 고르바초프는 개혁과 개방 정책에 나섰다. 물론 이런 정책의 원인 중에 저유가는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겠지만,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을 앞당긴 요인은 됐을 것이다.

저유가 시대는 2000년대 초까지 이어졌는데, 2000년에 러시아 대통령이 된 푸틴은 처음에는 미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러시아의 코앞인 동유럽 국가들로 확대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가가 다시 100달러를 돌파한 2008년에 러시아가 조지아를 침공했다는 점은 유가가 강세일 때 러시아의 군사활동이 활성화되는 사례가 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유가가 미국 금융위기로 폭락하자 러시아는 다시 미국이 제안한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에 서명하는 등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다가, 유가가 다시 100달러 이상으로 고공행진을 지속하던 2014년 초에 우크라이나에 군사개입을 했다는 점이다.

유가와 러시아의 태도 간의 이런 상관관계는 러시아의 재정능력이 석유 수입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저유가 상황에서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 간의 긴장은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좀더 쉽게 러시아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중동에서도 미국의 입김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석유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에 석유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이는 다시 세계 경제에 일파만파의 파장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중동의 안정은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항공모함을 포함한 함대를 중동에 주둔시키고 있는 이유 중에는 중동의 안정과 석유 수송 통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도 있다. 그런데 이 중동이 지금 엄청나게 시끄러워지고 있다.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들처럼 종교가 다른 국가들은 물론이고, 이들 국가에 협력한 중동 국가들, 같은 이슬람교도여도 이란이나 시리아와 같은 시아파 등을 모두 적대시하는 강력한 무장세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유가의 하락은 이 지역의 맹주 역할을 하면서 다른 동맹국들을 지원하기도 해야 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에게 어려움을 줄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미국에 대한 의존도 확대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은 중동에서 이란의 핵무기 개발 저지, 테러리스트 견제, 이스라엘 보호 등과 같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해관계뿐 아니라도, 중국과 같은 경쟁국을 견제하는 강력한 수단을 보유하고자 할 것이다. 석유 공급 및 수송과 관련한 지역들의 통제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더 강력한 역할을 마다할 리 없을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제조업 투자를 통해 경기 회복을 도모하면서 지금은 가장 경기가 호조를 보이는 지역이 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온건화된 러시아와 미국의 석유시장 통제권 강화 등과 같이 국제정치적으로도 힘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좋든 싫든 미국의 주도력이 더 강해지는 세상을 보게 될 것 같다. 가장 반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는 중국일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맞수가 되겠지만, 중국은 미국이 통제하고 있는 길을 따라 원유를 수입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사시 미국이 석유 수송로를 차단한다면 중국은 에너지 부족으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힘이 더 커진 미국과 그러한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중국 사이에서 우리는 더 힘든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많아질 것이다.

전민규 한국투자금융지주 글로벌리서치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