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잘못된 M&A는 '죽음의 키스'

2015. 3. 24. 21:22C.E.O 경영 자료

[Weekly BIZ] 잘못된 M&A는 '죽음의 키스'

  • 장세진KAIST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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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03.21 03:03

    [전략&인사이트]

    장세진KAIST 경영대 교수
    장세진KAIST 경영대 교수

    "나는 지금까지 경영자들의 키스를 수없이 봐왔지만, 기적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이 다른 기업들을 높은 프리미엄을 주면서 공격적으로 사들이는 경영자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무슨 뜻일까?

    아마도 그들은 어렸을 적 동화책에서 나온 두꺼비가 아름다운 공주의 키스로 마법이 풀려 잘생긴 왕자로 변하는 이야기에 너무 감명을 받은 것 같다. 그들은 자기가 인수하면 피인수기업의 수익이 기적처럼 높아지리라 믿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시가의 두 배나 주고 기업을 사는가?

    버핏이 말하는 "경영자의 마법의 키스"는 사실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006년 창립 60주년을 맞은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레저와 물류사업을 주목하며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추구했다. 마침 매물로 나온 대우건설을 두산그룹과의 경쟁에서 이겨 시가의 두 배 이상을 주고 6조4000억원에 인수했고, 2007년에는 대한통운 역시 한진, 현대중공업을 제치고 4조5000억원에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 두 건의 인수로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재계 서열 10위권에 진입했으나, 단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수익성이 악화되자 재무적 투자자에게 약속한 이익을 보전해 주기 위해 두 회사 모두를 다시 매물로 내놓아야 했고, 매수자인 포스코와 CJ로부터 받은 돈은 인수 가격의 절반 수준인 3조3000억원과 1조7000억원에 불과했다. 게다가 모기업인 금호산업도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처지에 놓였다.

    죽음의 키스
    Getty Images/멀티비츠

    '승자의 저주'가 비일비재한 이유는 경영자들이 인수 후 창출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평가하거나, 때로는 인수 성공 그 자체를 위해 인수 가격을 임의로 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객관적인 기업의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의 가치는 기업이 추구하는 전략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똑같은 건설 장비와 직원을 갖고 레저사업에 집중할 수도 있고, 해외 플랜트 사업에 주력할 수도 있다. 이런 전략의 차이에 따라 수익성과 기업가치가 달라진다. 만일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기업의 내재적 가치를 파악하고, 이를 자신의 핵심역량과 결합해서 극대화할 수 있다면 두 배 또는 세 배 이상의 가격을 주고 인수해도 무방하다. 문제는 실현된 시너지가 인수 프리미엄보다 낮으면 그만큼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밴더빌트 대학의 바라클로(Barraclough)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이 1996년과 2008년 사이에 미국에서 일어난 일어난 인수·합병 사례 167건을 분석한 결과, 인수·합병이 시너지를 창출하기는 하지만, 피인수기업의 주주는 확실하게 이득을 보는 반면, 인수기업 주주는 손실을 보거나 잘해야 본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피인수기업의 주주가 인수 프리미엄의 형태로 시너지 효과를 거의 다 가져가 버리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승자의 저주 현상이 일반적인 현상임을 잘 보여준다. 분석 대상 기업들은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권리)이 주식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어서 인수·합병으로 인한 시너지와 그것을 누가 얼마만큼 가져가는지를 추정할 수 있었다.

    승자의 저주를 방지하려면 M&A를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재무 전문가와 변호사 중심으로 구성된 M&A 팀은 인수 가격과 절차에만 집중하기 쉽다. 정작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는, 왜 이 기업을 인수해야 하며 다른 대안은 없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소홀하기 쉽다.

    이상적인 M&A 팀은 CEO를 보좌하면서 성장 전략을 수립하고 부족한 역량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를 상시적으로 검토하는 팀이다. 이 팀의 관점에서 M&A란 새로운 핵심 역량을 획득하고 빠른 시장 진입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대안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 팀은 신설 투자와 전략적 제휴 같은 다른 대안들을 함께 고려하면서 과연 M&A가 최선의 선택인가를 결정하고, 인수 대상 기업과의 실현 가능한 시너지, 그에 따라 지불 가능한 인수 프리미엄을 미리 계산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M&A 팀이 CEO의 의사에 반대할 수 있는 독립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처럼 CEO에 대해 직언을 하기 어려운 기업 문화를 갖고 있을수록 승자의 저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금 M&A의 유혹을 느끼는 경영자가 있다면 마키아벨리의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영토 확장의 욕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토 확장을 하면, 그 영토를 다시 잃게 될 것이며, 영토를 유지하는 동안에도 끝없는 어려움과 분규를 겪게 된다."

    한국 기업은 미국 기업과 달리 과거 여러 실패 사례들 때문에 M&A를 성장 전략의 하나로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M&A 전략이 확고하면 승자의 저주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