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원자력협정 타결] '核주권' 진일보.. 저농축 우라늄 생산 길 열렸다

2015. 4. 23. 20:10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한·미원자력협정 타결] '核주권' 진일보.. 저농축 우라늄 생산 길 열렸다

42년 前 의무만 담았던 협정 원전수출국 위상에 맞게 반영… 韓 원전기술 발전 가능성

 

국민일보 | 조성은 기자 | 입력 2015.04.23 02:

 

이번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서 핵심 쟁점은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 분야였다. 기존 협정은 한국이 미국의 동의나 허락 없이 핵연료의 농축과 재처리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 조항이 포함돼 있어 불평등 논란이 빚어졌다. 새 협정이 마련됨에 따라 우리나라는 '핵 주권 침해' 논란을 불식하는 한편 향후 원전 관련 국제 경쟁력도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사용후 핵연료 농축·재처리 가능해져=새 협정은 고농축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등 핵무기 원료를 산출하지 않는 단계까지 사용후 핵연료를 농축 및 재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주로 경수로 연료로 쓰이는 저농축 우라늄(U-235 20% 미만)을 미국산 우라늄을 사용해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플루토늄 추출이 비교적 어려운 재처리 방식인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핵연료 건식 재처리 기술)과 관련해서도 한·미 간 공동 연구를 바탕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경로가 마련됐다.

↑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2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협력대사와 새 한·미 원자력협정에 가서명한 뒤 기자들에게 협정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파이로프로세싱의 전 단계인 전해환원 및 원자력 분야 기초실험인 조사후시험은 미국의 승인 없이도 국내 시설에서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다. 기존 시설뿐만 아니라 향후 건립될 신규 연구시설에서도 안전조치 등 기준을 충족하면 역시 이러한 연구 활동이 가능토록 했다. 매번 사전 동의를 받아야 했던 기존 협정보다 자율성이 크게 확대된 것이다. 사용후 핵연료를 영국·프랑스 등 제삼국에 위탁해 재처리할 수 있는 길도 열어뒀다.

파이로프로세싱과 핵연료 재처리 등 한·미 협의를 거치도록 규정된 사안은 차관급 협의체인 '고위급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위원회 산하에 4대 실무그룹을 구성해 사용후 핵연료 관리,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 원전수출 증진, 핵안보 등 원자력 분야 전반을 다루기로 했다.

◇원전 수출에도 '청신호'=기존 협정은 한국이 미국산 핵물질과 원자력 장비, 부품 등을 제삼국으로 수출할 때 미국의 동의가 필요했다. 새 협정은 국내 원자력 수출 업체가 원전을 해외로 수출할 때 해당 국가가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은 경우 사전 동의 없이도 수출할 수 있도록 개정됐다. 한국의 원전 수출 대상국 대부분이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은 국가여서 향후 원전 수출이 보다 원활해질 것으로 보인다.

양국 간 수출입 및 기술이전 관련 인허가 절차를 신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한·미 양국 간 핵물질·장비·부품 및 과학기술에 관련된 정보 교류를 촉진할 근거를 마련했다.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암 진단용 방사성 동위원소(몰리브덴-99) 또한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할 수 있게 됐다.

◇'불평등' '핵 주권 침해' 논란 불식=우리 정부는 새 협정과 관련해 원자력 분야에서 한·미 양국이 이전보다 대등한 관계인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기존 협정이 '골드 스탠더드' 등 각종 불평등 조항을 담고 있어 '핵 주권 침해'라는 비판이 많았었다.

새 협정은 서문에서 한·미 양국이 NPT(핵확산금지조약) 당사국으로서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 이용에 대해서는 '불가양의 권리(inalienable right)'를 갖는다고 확인했다. 동시에 양국 간 원자력 협력에서 주권 침해가 없어야 한다는 점도 명시했다. 농축 및 재처리 활동에서도 상대국의 원자력 프로그램을 존중하는 한편 부당한 방해나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 규정도 추가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통제권만 행사하는 기존 협정에서 벗어나 상호적으로 권한 행사가 가능토록 했다. 이에 따라 한국이 수출한 장비가 포함된 미국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에 대해 우리 정부가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새 협정은 유효기간을 기존 협정의 절반 수준인 20년으로 크게 단축했다. 한국 원전 기술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 신규 조항 추가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다. 협정은 만료 2년 전 한쪽이 연장 거부를 통보하지 않으면 1회에 한해 5년간 연장 가능하며, 발효 17년째에 협정의 유효성과 연장 필요성을 검토하도록 의무화했다. 특히 유효기간 중에라도 일방이 1년 전 사전 통보만 하면 어느 때든 협정을 종료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협정 가서명 이후 법제처에서 검토한 뒤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받을 예정이다. 미국 측은 국무부와 에너지부 장관의 검토서한 및 핵확산 평가보고서를 작성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가를 받게 된다. 협정문은 각각 우리 국회와 미 의회에서 비준 절차를 거친 뒤 기존 협정의 유효기간인 내년 3월 이전에 발효될 전망이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