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일 걸린 늑장재판… 議員임기 거의 다 채워

2015. 8. 21. 18:26이슈 뉴스스크랩

1857일 걸린 늑장재판… 議員임기 거의 다 채워

 

[한명숙 유죄 확정] 차일피일 결론 미룬 법원

서울고법 공판 1년 연기, 항소심 판결까지 3년 2개월

"정치인 재판 신속 처리" 공언한 大法도 2년 끌어

"상고법원 관철하기 위해 野 눈치 본다" 소문 돌기도

 

20일 한명숙(71) 전 국무총리의 '9억원 불법 자금 수수 사건'에 대한 재판이 5년 1개월 만에 결론이 났다. 한 전 총리가 2010년 7월 21일 기소된 지 정확히 1857일 만이다. 이런 '늑장 재판'으로 한 전 총리가 3년 넘게 의원직을 유지하면서 '비리 국회의원'의 임기를 연장해 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전 총리는 2012년 4월 19대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돼 임기 4년 중 81%인 3년 3개월을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 판결로 한 전 총리는 즉각 의원직이 상실됐고, 의원직을 이어받은 사람이 19대 국회에서 의정 활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은 8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이 사건 재판이 길어진 이유는 우선 1심과 2심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이 이 사건을 너무 오래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항소심 선고까지 3년 2개월이 걸렸다. 서울고법의 경우 한 전 총리가 연루된 또 다른 사건인 '5만달러 뇌물 사건'의 대법원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이유로 재판을 1년간 연기하기도 했다.

대법원에서도 곡절을 겪으며 지체됐다. 대법원은 애초 대법관 4명이 소속된 소부인 대법원 2부에 사건을 배당했다. 하지만 20개월이 흐른 뒤인 지난 6월 대법원은 "대법관들 사이에 유죄와 무죄 의견이 엇갈린다"는 이유를 들어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이런 식으로 사건은 대법원에서 2년간 머물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느라 판결이 지연됐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판 기록만 2만2500페이지에 달하고, 증거 기록을 합치면 3만5000페이지를 웃돌아 판결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연구관들이 기록을 빠짐없이 검토하고 법리를 분석하여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만도 수개월이 소요됐고, 소부와 전원합의체에서도 의견이 나뉘어 대법관들이 세밀한 부분까지 증거 관계를 검토해 합의를 마치는 데 또다시 수개월이 소요됐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법조계에선 "전형적인 늑장 재판"이라는 지적이 많다. 다른 거물급 정치인 사건과 비교해도 너무 오래 시간을 끌었다는 것이다.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돼 구속 재판을 받은 이상득 전 의원은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기까지 11개월 걸렸고,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상고 7개월 만에 유죄가 확정돼 지사직에서 물러났다. 2005년 뇌물 사건으로 기소된 정대철 의원 사건도 대법원에서 머문 시간은 고작 4개월이었다.

법원 내부에서도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해선 "왜 늦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지금까지 대법원은 틈만 나면 "정치인 재판은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약속해왔지만, 한 전 총리 사건에선 공염불(空念佛)에 불과했다.

그러는 사이 법조계 주변에선 각종 소문이 나돌았다.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은 "법리적 쟁점이 별로 없는 사건인데 대법원이 질질 끌었다. 말이 안 될 정도로 대법원이 정치적인 사건에서 정치권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서초동에 개업한 한 변호사는 "법원이 사활을 걸고 있는 상고법원을 관철하기 위해 야당 눈치를 본다는 말이 많다"고 꼬집었다.



[석남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