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청해진해운 등 다중인명피해기업 처벌법 도입 검토

2016. 4. 25. 22:49이슈 뉴스스크랩

옥시·청해진해운 등 다중인명피해기업 처벌법 도입 검토

현행법 사람·소규모 업장은 처벌 가능…기업은 법이 없어 해당 無

입법까지는 갈길 멀어…법 제정은 20대 국회의 몫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과실 등으로 다중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기업자체를 형사 처벌하는 방안이 우리나라에서도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연구와 논의 초기 단계로 입법·시행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옥시 등의 살인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다중인명피해 발생 등으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도입이 논의되다가 주춤했던 '기업처벌법'에 대한 도입 논의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2015년 7월 국회에 각계인사 800여명의 이름으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입법청원서가 제출됐고, 지난 15일 시민단체들은 '삼성서울병원'을 '시민재해 살인기업'으로 선정하고 기업 형사처벌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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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건관련 전문가 기자회견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 가족이 참석하고 있다. 2016.4.22/뉴스1 © News1 허경 기자


◇ '사람' '소규모 업장'은 처벌하고 '기업'은 해당 無

옥시 레킷 벤키저의 본국인 영국에서는 기업이 다중 인명피해 등을 일으키면 최대 매출액의 10%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는 등 사실상 '사형'을 선고하는 것과 같은 형벌을 부과하고 있다.(4월 19일자 기사 "가습기살균제 옥시레킷벤키저, 영국이라면 어떻게 처벌?" 참조)

옥시가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법인형태를 변경하기 전까지 공시됐던 옥시의 연매출액은 대략 2500억원가량으로 영국에서 살인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했다면 250억원가량의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다중 인명피해를 일으킨 기업 등에 대한 처벌 근거규정이 없어 제대로 된 책임을 묻지 못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만 하고 있다.

불법 증개축과 과적으로 최악의 참사를 발생시킨 청해진 해운은 기름유출에 대한 양벌규정으로 10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146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를 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거짓·과장 광고에 대한 최대한의 책임을 진들 벌금 1억 5000만원을 부과받는 것이 전부다. 피해자들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은 별개지만, 다중 인명피해에 대한 책임치고는 지나치게 가볍다.

이는 현행 우리 법·제도 아래에서는 제조사들인 기업 자체의 잘못에 대한 직접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이 딱히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대형 찜질방이나 PC방 업주가 밤 10시 이후 영업장에서 퇴거하지 않은 청소년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적발되면,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영업이 정지된다. 법인형태가 아니고 '기업'이라 불리지 않는 소규모 영업장의 위법행위에 대해 이렇듯 강한 규제를 하고 있지만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고통 속에 몰아넣은 옥시와 롯데마트 등의 기업은 아직도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

◇ 기업형사처벌법 도입방안 검토…입법까지는 갈길 멀어

세월호 참사 이후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은 2014년 한국 형사소송법학회와 다중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기업 자체에 대한 형사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법규 도입방안을 연구했다.

형사소송법학회가 2014년 12월 대검에 제출한 연구보고서는 "국민의 신체의 안전과 생명, 재산, 미래에 대한 모든 영역에서 기업이 잠재적 위험원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기업에 대한 형사처벌 제도 도입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보고서는 "영미법계와 대륙법계를 막론하고 해외 각국이 법인 형사 처벌을 위해 법을 새로 만들거나 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이를 우리 법제에 도입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같은 해 6월 국회도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해 '기업형사처벌법' 도입 등을 검토한 바 있다. 국회 전문가 간담회에는 김호기 서울시립대 교수 등이 참여해 '기업살인죄'의 우리법제에의 도입가능성과 타당성 등에 대한 검토의견을 냈다.

권순범 대검찰청 검찰미래기획단 단장은 "2014년 시행한 연구결과를 기초자료 삼아 연구와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권 단장은 "연구결과를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한 상황이고 형사정책연구원 등 유관기관에서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 공론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19대 국회는 5월 30일로 임기가 만료된다. '옥시'와 같은 기업을 처벌할 필요성을 인정해 당장 국회에서 입법논의를 한다 해도 19대 임기 내 법안처리를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옥시 처벌법'을 제정하는 것은 20대 국회의 몫이다.

황성기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처벌법이 만들어져도 ‘소급 적용’은 허용되지 않고, 행위시에 존재하는 법률로만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옥시는 법의 엄중한 처벌을 비껴간다"고 설명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19대 국회에서는 '옥시' 등 다중인명피해를 일으킨 기업을 형사 처벌하는 법에 대한 논의가 사실상 어렵겠지만, 기업의 잘못된 행태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국민정서와 사회적 정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20대 국회에서 '옥시 처벌법(기업처벌법)'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uris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