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옥시는 안돼"…집단·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될까

2016. 5. 7. 21:22이슈 뉴스스크랩

"제2의 옥시는 안돼"…집단·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될까

[[서초동살롱 <114>]기업의 도덕적 해이 막고 소비자 피해 구제 위해 논의 재점화]


'안방의 세월호'로 불리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는 15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됩니다. 민간 센터를 통해 신고된 숫자인데요, 이 중 사망자는 239명입니다.

제품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은 검찰 수사 본격화를 계기로 이제서야 집중 조명되는 듯 합니다. 첫 사망자가 발생한 건 지금으로부터 무려 14년 전인 2002년인데 말입니다.

형사처벌 대상자를 가리는 검찰 수사는 업체 관계자 줄소환으로 정점을 맞았습니다. 결과에 따라 관련자들은 형사와 민사상의 책임을 모두 질 수 있는데요, 피해자들은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본격 임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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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서울 이마트 용산점 옥시레킷벤키저 제품 매대 앞에서 환경운동연합회원들이 불매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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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집단적·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2의 옥시레킷벤키저'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논의선상에 오른 것입니다.

집단소송=다수 당사자 소송?…옥시 사태가 미국서 벌어졌다면 '징벌적 손배'



우선 두 제도의 개념부터 알아보겠습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도 집단소송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는 '다수 당사자 소송'을 뜻하는 것일 뿐입니다. 판결의 효력이 소송 당사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전체에게 미치는, 진정한 의미의 집단소송이 아닌 편의상 쓰는 명칭인 것이죠.

집단소송은 증권범죄 외의 분야에선 보장되지 않습니다. 소송 원고로 이름을 올리지 않으면 피해자로 분류되더라도 배상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실제 민사소송까지 제기하는 피해자는 일부입니다. 방법을 모르거나 비용이 아까워 소송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수 당사자 소송만으로는 피해 구제가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카드사 고객정보 대량 유출 사건, 네이트 개인정보 유출 사건,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 등이 터질 때마다 집단소송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힘을 얻어 왔습니다.

이번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책임을 물어야하는 쪽의 불법행위가 중대할 경우 실제로 입증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처벌적 손해배상 제도라고도 합니다.

최근 미국 법원이 존슨앤존슨에 대해 수백억원대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한 여성은 베이비파우더로 알려진 탤컴파우더 사용으로 난소암이 발병했다며 존슨앤존슨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회사 측이 징벅절 손해배상금 5000만달러와 피해액이 입증된 손해배상금 500만달러, 총 5500만달러(620억여원)를 물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두 제도 모두 영미권 국가에서 주로 행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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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8일의 일정으로 옥시레킷벤키저 영국 본사 항의 방문에 나선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왼쪽부터)과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피해 유족 김덕종, 안성우 씨가 4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옥시를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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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커녕 법정 뒤에서 어물쩍 '조정' 나선 옥시, 보상안도 불충분



다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혐의가 가장 중한 업체로 지목된 옥시를 포함해 책임 업체와 관련된 소송은 서울중앙지법에서 모두 7건 계류돼있습니다. 앞선 1건의 소송은 조정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1건도 있었지만 원고들은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조정으로 마무리된 소송의 피고는 옥시입니다. 사과도 늦었고 사건 은폐 의혹도 제기된 상황에서 '책임 회피'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옥시는 민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과 물밑 합의를 시도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렇다보니 법정 뒤에서 기업과 피해자가 합의로 어물쩍 넘어가는 일은 이제 반복돼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민사재판은 잠시 중단된 상태입니다. 수사 결과를 판단 자료로 삼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사이 옥시에 대해선 소비자 불매 운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전국 대형마트 앞에서 옥시 상품 판매 금지를 촉구하는 릴레이 기자회견을 열 계획입니다. 롯데마트는 옥시 제품에 대한 신규 발주를 중단한 상황입니다. 홈플러스와 이마트는 제품 판촉행사로 물의를 빚자 이를 멈췄습니다.

옥시는 오는 7월까지 피해자 의견을 반영해 최종적인 보상안을 마련하고 100억원의 인도적 기금을 조성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일 등 떠밀리듯 사과문을 발표하며 이 같은 방안을 내놓았는데요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결국 제도가 바뀌어야"…불법행위 지속하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 이제 그만



불매운동과 회사 측 보상안 마련만으로 피해자들의 한이 씻길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사과 한마디 없던 옥시를 보며 "글로벌 기업이 우리나라 소비자들을 너무 우습게 본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민사소송으로 인한 배상도 한계가 있습니다. 회사로선 해결 가능한 수준의 돈을 원고로 참여한 피해자들에게만 지급하면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는 상황입니다. 이전에도 집단적·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과 관련한 논의는 있었으나 기업 활동 위축을 우려한 재계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4년 2월 대표발의한 '소비자집단소송법안'은 민사소송법에 특례를 정해 집단소송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아직 본격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당의 우윤근 의원이 2013년 8월 대표발의한 '집단소송법안' 역시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사 중입니다. 두 법안은 소비자의 피해 구제와 기업의 책임경영 강화를 위해 집단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관련한 법안 역시 국회에서 잠 자고 있습니다. 같은 당 백재현 의원이 2013년 10월 대표 발의한 '제조물 책임법 일부 개정안'은 논의가 멈춘 상태로 소관 상임위에 계류 중입니다. 이 개정안은 불법행위를 한 기업이 손해액의 12배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피해자에게 배상책임을 지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들에 대한 논의가 국회 진상 규명 청문회와 '피해보상특별법' 제정 추진을 통해 재점화할 지 주목됩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최근 사법제도 개혁 TF를 통해 징벌적 손배제도 도입을 논의한다고 밝혔습니다.

안타까운 사건이 터진 후 가장 중요한 것은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법 제정 및 개정을 기반으로 한 제도 정비가 요구됩니다. 다수의 소비자 피해를 발생시키는 기업의 불법행위는 근절돼야 합니다. 소비자 피해는 좀 더 현실적으로, 또한 효율적으로 구제돼야 합니다. 제2의 옥시 같은 기업이 등장하지 않도록 제도 정비에 목소리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김만배 기자 mbkim@mt.co.kr, 이태성 기자 lts320@mt.co.kr, 양성희 기자 yang@mt.co.kr, 한정수 기자 jeongsuhan@,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이경은 기자 kelee@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