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기업 현금 보유량 역대 최고…역외 보관으로 조세도피

2016. 5. 22. 21:09지구촌 소식

미 기업 현금 보유량 역대 최고…역외 보관으로 조세도피

【서울=뉴시스】강덕우 기자 = 국내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금 문제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도 기업의 '현금 곳간'이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분석을 인용해 수익 대부분을 해외에서 창출하는 다국적 기업들 중심으로 미국 비(非)금융 기업의 2015년 말 기준 사내유보금이 역대 최고치인 1조7000억 달러(약 2025조550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무디스에 따르면 미국 기업 중 가장 많은 양의 현금을 쌓아둔 기업은 세계 최대 시가총액 기업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구글의 모회사), 시스코, 오라클 순으로 이들 5개 기업의 사내유보금만 5040억 달러(약 600조5160억원)로 집계됐다.

뉴시스


사내유보금 기준 탑 5기업이 모두 정보기술(IT) 기업으로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T기업은 사업 구조상 해외 영업 비중이 더 크다 보니 수익금을 미국으로 회수하지 않고 현지에 쌓아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수익금을 미국으로 회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일종의 조세도피 편법이다.

실제로 미국 기업이 복잡한 세법을 피하기 위해 역외에 보관하고 있는 수익금은 약 1조2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럽연합(EU)으로부터 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애플의 경우 2160억 달러(약 257조3640억원)의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있어 미국 기업 전체 합계의 10% 이상을 차지했다. 또 이 가운데 약 95%나 역외에 보관되고 있다.

사내유보금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그만큼 기업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무디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기업의 신규시설 투자 등 지출비용이 3% 줄어들었다. 기업지출의 감소는 금융위기로부터 회복한 이후로 처음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애플은 2015회계연도 매출액인 2330억달러(약 269조8140억원) 가운데 고작 3.8%(약 81억달러·9조3898억원)를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한다. 이는 지난해 189조5403억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둔 삼성전자(6.5%·14조7804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미국의 기업 투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중국과 미국, 유럽 등의 경제 성장성에 대한 불확실성과 석유·에너지기업의 경영부진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애플과 같은 기업들이 투자를 축소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하고 있다.

BMO프라이빗뱅크의 잭 알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기업들이 현금을 비축하고 있다"며 "국내총생산(GDP) 증가를 감안한다면 기업의 투자금액은 5% 이상 급감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투자자들은 기업의 자금이 순환되고 수익이 성장과 기본가치에 다시 활용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미국 기업들은 투자자들의 불만을 완화하기 위해 배당금을 늘리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그만큼 아직 세계 경제회복세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애플의 경우 지난 1분기 충격적인 판매 감소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당 분기 배당금을 10% 높인 0.57달러로 올린다고 밝힌 바 있다.

badcomma@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