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 부가 20% 넘으면 대재앙 닥쳐"
2016. 8. 10. 18:31ㆍ이슈 뉴스스크랩
"상위 1% 부가 20% 넘으면 대재앙 닥쳐"
입력시간 | 2016.08.10 06:17 | 오현주 부장 euanoh@
위기의 자본주의 해법 찾기
기업·은행, 정치·경제계 장악
'부의 상향 재분배'만 일어나
美 중산층 키운 반독점법처럼
상위1% 정치권력 제한, 독주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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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구하라
로버트 라이시|328쪽|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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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을 좇아 되돌린 시절은 1950년대. 미국 소도시의 도로변에서 상점을 운영하며 근처 공장근로자의 아내들에게 여성복을 팔던 아버지의 생활이 그랬단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편안하게 살았고, 가난하다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다고 했다. 1960년대로 시간이 흘러도 생활수준은 꾸준히 나아졌으니.
결정적인 건 이 장면이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일반적인 미국인 모습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당시 대기업 CEO의 소득은 일반 근로자의 20배쯤. 그렇다면 지금은? 200배를 훌쩍 넘긴다. 또 그때 인구의 1%에 해당하는 최상위 부유층의 소득은 전체 미국인 소득에서 9~10%가량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20% 이상을 수시로 넘본다. 무엇보다 그때는 희망이 있던 때였다고 했다. 그리 대단한 희망은 아니다. 그냥 일한 만큼 대가가 따라줄 거란 확신.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그럴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희망이 가고 냉소가 들이닥친 것이다.
‘부유한 노예’(2001), ‘슈퍼자본주의’(2008),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2011), ‘1대 99를 넘어’(2015) 등의 전작으로 이미 국내서 여러 차례 소개된 경제사상가 로버트 라이시(70)가 신작을 냈다. 내용은 바뀌었지만 축은 그대로다. 고속경제성장이란 포장으로 감춰둔 부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해법을 찾아보자는 거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을 때도, 대학교수로 돌아와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자문으로 활동하는 지금도 한결같은 기조다.
어그러진 자본주의에 관심이 많다. 한마디로 50~60년 전엔 착실했던 자본주의가 왜 여기저기서 ‘갑질’을 시작하게 됐는가가 관심거리인 거다.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향한 비딱한 시선만 씌운 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애정이 넘쳐서 ‘자본주의를 구해내야’(Saving Capitalism) 한다며 책까지 쓰게 됐다.
사실 이는 저자의 논리전개에서 적잖은 의미를 품는다.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존재가 예전의 공산주의나 파시즘이 아니란 것이다. 현대사회가 성장과 안정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저자가 그렇게 철석같이 믿는, ‘신뢰’가 사라져 가는 것이다. ‘희망을 날려버린 냉소’가 괜히 나온 얘기가 아니란 뜻이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정치’란 변수가 슬금슬금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이란다. 예전과는 달리 경제운용규칙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기업이나 금융계의 엘리트에게 정치적 힘이 집중되는 걸 본 거다.
책은 경제와 정치의 신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으로 시장과 국가를 둘러싼 그릇된 통념을 부수는 일을 해낸다. 의도는 하나. 무너진 자본주의를 살려보자는 거다.
▲‘경제내셔널리즘’이 부상하는 이유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기로 했다. 여타 유럽 국가들은 다른 방식으로 돌아섰다. 국제무역과 이민정책을 더욱 엄격하게 통제하는 식이다.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의 대통령 후보들도 국제무역협정에 부정적 발언 일색이다.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자국만을 싸고도는 국가주의 정당의 입김이 세졌다. 지구촌에 이른바 ‘경제내셔널리즘’이 부상 중인 것이다. 그런데 세계경제가 글로벌 기류서 빠져나가는 이유가 뭔가.
저자는 그 원인이 부와 소득을 독점한 상위 1%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봤다. 경제는 물론 정부 장악력까지 키우고 있는 기업·거대은행·부자들이 1%의 정수를 차지한 반면 그 외곽 99%에선 소득이 줄고 직업안정성이 흔들리는, 불평등이 확장한 탓이라고 주장한다. 부가 소수에 집중될 뿐만 아니라 재분배를 둘러싼 정치적 합의마저 소수가 좌우하기 때문이란 거다.
▲정부, 크기 아닌 누구를 위한 건지가 관건
사실 부의 불균형은 요즘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과거에는 해결의 여지가 있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극소수 부자의 ‘정치적 힘’을 제한할 수 있었다는 소리다. 반독점법을 제정하고, 거대 트러스트를 와해하고, 독점기업을 통제하고, 기업의 정치후원금을 금지하고, 소기업·소액투자자의 대항력을 확대한 일련의 조치. 이는 곧 1930~70년대 미국 중산층을 튼실하게 키워낸 비결이 됐다고도 했다.
핵심은 정부의 크기가 그 일을 한 게 아니란 것이다. 다시 말해 크기보단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최소한 미국에서라도 개인의 소득과 미덕이 일치하고, 재산과 도덕적 가치가 상응하는 ‘실력주의’를 되살려야 한다는 일갈이다.
▲1% 독주…경제가 문제? 정치가 문제!
“상위 1%의 부가 소득의 20%를 넘으면 경제대재앙이 온다”는 주장이 특히 눈에 띈다. 지난 100년을 통틀어 미국 소득불균형이 절정을 이룬 시기는 1928년과 2007년. 당시 1%의 소득이 국가소득의 23%를 웃돌았고 이는 곧 ‘대공황’과 ‘글로벌경제위기’로 닥쳐왔다는 논지다. 상위 1%의 독주를 멈추게 하고 언제부턴가 갑질만 해대는 자본주의를 구해낼 때 자본주의의 미래가 다시 열린다고 단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시장은 부유한 이익집단에 유리한 정치적 결정만 해대고 있다. 시장을 통해 이윤을 분배하는 제도는 근로자의 ‘가치’에 절대 부합하지 않는다. 가령 거대기업 임원의 급여가 끝없이 치솟고, 증권가의 매니저나 트레이더의 연봉이 해마다 뛰는 이유가 결코 그들의 능력이 대단해서가 아니란 소리다. 시장규칙을 결정하는 영향력이 세졌을 뿐이다. 뒤집은 설명도 가능하다. 중산층이 쪼그라드는 까닭, 근로빈곤층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결코 그들의 결함 탓이 아니다. 시장규칙에 미치는 영향력을 잃어버려서다.
다만 도덕성과는 거리를 뒀다. 높은 자리에 앉아 규칙을 주무른다고 무조건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란다. 왜냐고? 어쨌거나 그들은 체제 안에서 ‘완전’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거니까. 되레 중산층 이하의 집단이 힘을 잃어가는 게 더 큰 문제라고 했다.
결국 중산층이 대항세력으로 나서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아메리칸 드림은 오래전 ‘깨몽’이 됐고 열심히 일하면 성공한다는 얘기는 유머에도 끼지 못한다. 그러니 남은 건 뭉쳐서 상위 1%에 맞서는 것뿐이란다. 그래, 장밋빛 판타지보다 현실을 똑바로 보라는 돌직구가 차라리 낫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반세기도 훨씬 전의 ‘미국해법’을 자꾸 기웃거린다는 거다. 못내 거슬린다. XM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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