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85명씩 사라지는데..뒷전으로 밀리는 성인실종 수사

2016. 12. 24. 18:35이슈 뉴스스크랩

[경찰팀 리포트] 매일 185명씩 사라지는데..뒷전으로 밀리는 성인실종 수사

김동현 / 성수영 입력 2016.12.24 09

해마다 늘어나는 성인실종
상반기에만 3만3676건 신고 접수
접수되면 95%가 자진 귀가
아동 실종에 우선순위 밀려
미해결 사건, 작년의 2배 급증
18세 이상은 위치추적 불가
납치·감금 등 범죄피해 의심돼야
휴대폰 통화내역 등 조사 가능
"성인도 실종아동법 적용을"

[ 김동현 / 성수영 기자 ]


한미약품 공시·회계담당 임원 김모씨(46)는 여전히 실종 상태다. 지난달 1일 오전 출근한다고 집을 나선 뒤 지금까지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늑장공시 의혹, 미공개 정보 사전 유출 등과 관련해 하루 전날 참고인 자격으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조사받은 직후였다. 김씨 가족은 곧바로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은 닷새 후 경기 남양주시 북한강변에서 김씨 차를 발견했다. 여덟 차례에 걸쳐 100명에 달하는 인원과 수색견, 드론(무인항공기)까지 투입해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펼쳤지만 김씨를 발견하지 못했다.

김씨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한미약품을 수사한 검찰 관계자는 “자살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살아있을 경우와 아닐 경우를 둘 다 가정하고 수사 중”이라며 “사건을 처음 접수한 송파서에서 실종자의 생존 가능성을 계속 확인하고 있고, 남양주서에선 자살 가정하에 수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인 실종이 늘고 있다. 김씨 같은 실종자는 매일 185명가량 발생한다. 경찰 신고 기준이다. 성인 실종은 끔찍한 범죄나 자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은 단순 가출로 판명난다. 경찰 대응도 양면적이다. 적극 개입하자니 인력이 부족하고, 실종 가족을 생각하면 대충 넘길 수도 없다. 성인 실종은 아동이나 청소년 실종과 달리 법적으로 위치정보 파악 등과 같은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

“성인 실종 95% 단순 가출”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성인(만 18세 이상) 실종 신고는 2012년 5만건에서 지난해 6만3471건으로 늘어났다.

올해도 상반기까지 3만3676건이 접수돼 한 해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5%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성인 실종 통계에는 상황 판단력이 떨어지는 치매환자나 지적장애인은 제외된다.

성인 실종은 늘어나는 반면 아동·청소년 실종은 줄어들고 있다. 18세 미만 실종 신고는 2012년 2만7295건에서 지난해 1만9428건으로 급감했다.

경찰은 범죄 가능성이 드러나지 않는 한 성인 실종자를 ‘가출자’로 본다. 대부분은 가정불화에서 비롯된다. 경찰청 관계자는 “가정에서 가족과 다투면 바로 집을 떠나는 등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실종 신고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올해 가출 원인은 ‘가정 문제’(53.8%) ‘자살 의심’(17.2%) ‘정신질환’(6.3%) ‘보호자 이탈’(5.6%) ‘이성 문제’(5.4%) 순으로 분석된다.

성인 실종은 심각한 일이지만 경찰은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아동이나 지적장애인 실종과 달리 범죄 가능성이 짚이지 않으면 후순위로 밀린다. 실제 지난해 접수된 성인 실종자의 95.3%가 단순 가출로 자진 귀가했다. 범죄로 인한 실종은 15건에 불과했다.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매일 실종 신고가 쏟아지는데 이에 대응할 수사 인력은 매우 부족하다”며 “단순 가출이 대부분이어서 적극 대응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해결 사건’ 급증

문제는 미해결 사건이다. 미해결 사건은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1712건의 실종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올해는 상반기에만 1691건이 미해결 사건으로 분류됐다. 2012년 미해결 사건이 666건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올해 5월 부산 수영구에서 갑자기 사라진 30대 부부는 6개월 넘게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통신기록 조회 결과 남편 전모씨(35)의 휴대폰 전원이 5월28일 부산 기장군에서, 부인 최모씨(35)의 휴대폰 전원은 같은 날 서울 천호동 부근에서 각각 꺼진 게 확인됐지만 경찰은 더 이상 추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단순 가출로 보였다가 사건이 커지는 일도 발생한다. ‘홍익대 인근 클럽 여대생 실종 사건’도 그런 사례였다. 지난 14일 밤 서울 홍익대 앞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사라진 뒤 행방불명된 여대생 이모씨(19)는 실종 신고 8일 만에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위치정보 등 법적 지원도 못 받아

아동이나 청소년 실종자는 실종아동법(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조속하게 발견될 수 있도록 법적 지원을 받는다. 실종 이후 발빠른 수색이나 위치정보 검색, 유전자 검사 등을 지원하도록 명문화했다.

성인 실종자는 지원 대상이 아니다. 실종자를 찾는 첫 단계인 휴대폰 위치 추적도 어렵다. 위치정보법(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18세 미만 아동, 지체장애인, 치매환자 등 특정 신분자의 실종에 대해서만 전화 위치 추적이 허용된다. 실종자가 납치·감금 등 범죄 피해가 의심되거나 자살 징후가 발견될 때 정도다. 경찰 관계자는 “휴대폰 위치 추적은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높아 대상과 요건이 엄격하다”고 말했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5명의 의원은 ‘실종아동법’ 적용 대상자에 18세 이상 성인을 포함시키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실종아동법은 경찰청이 아니라 보건복지부가 주무부처다.

복지부는 물론 경찰청은 난색을 보이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이 통과되면 법률 소관부처가 복지부가 아니라 경찰청으로 변경될 것으로 보이지만 경찰은 인력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현/성수영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