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 최대 수혜국 베트남 투자
한국 법인 2700개에 직격탄
멕시코 공장 둔 기업 180곳
“NAFTA 관세 부활 땐 피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선언한 데 이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행정명령에도 서명함에 따라 미국 발(發) ‘보호무역주의 쓰나미’가 한국을 격랑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글로벌 통상체제의 큰 틀이었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폐기와 이에 따른 글로벌 시장 위축이 불가피해져 우리 기업들의 수출 전선에 빨간 불이 켜졌다. 특히 한국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환율조작국 지정과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한미 통상관계가 올해 최대 고비를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24일 정부 및 통상전문가들은 당장 한국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트럼프 정부의 NAFTA 재협상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는“북미 지역 주력 수출상품인 자동차와 가전 분야의 한국기업들은 멕시코 시장을 중간재 조립시장으로 활용해 북미 시장 진출 교두보로 사용하고 있다”며 “해당 기업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멕시코에 진출한 현대기아자동차와 포스코, GS칼텍스, 효성 등 180여개에 달하는 한국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당장 기아차는 멕시코에 1조원을 투자해 지난해 9월부터 추가로 생산기지를 가동했지만, 나프타 재협상 가능성에 미국 투자로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멕시코 자동차 제조업체들에 강판을 판매하는 포스코는 대미 수출 위축에 따른 수익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멕시코에 TV와 냉장고, 세탁기 공장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NAFTA 재협상으로 관세가 부활하면 한국기업들이 멕시코에 공장을 운영할 이유가 없어진다”며 “멕시코 투자금액을 한국기업들이 피해액으로 고스란히 떠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TPP 탈퇴를 선언함에 따라 TPP 최대 수혜국으로 꼽혀온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기업들의 대미 수출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법인은 2,700여개에 달한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미국 신행정부 통상정책 전망과 영향’이란 보고서에서 “TPP 발효가 연기될 경우 베트남의 대미 수출이 위축되면서 한국의 대 베트남 수출도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TPP 발효 시 베트남과 미국 간 관세철폐를 기대해 베트남 투자에 나선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기업들의 피해가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 LG전자는 베트남 하이퐁 공장을 새로운 대미 수출용 생산 거점으로 삼고 수 년간 대대적인 투자를 해왔다. 이혜민 외교부 G20국제협력대사는 “트럼프는 TPP 탈퇴 후 미국과 일본 간 FTA를 추진할 예정”이라며 “그럼 한국이 대미 자동차 수출 등에서 누렸던 한미 FTA의 특혜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정부가 무역수지에서 큰 적자를 보고 있는 한국에 환율조작국 지정은 물론 한미 FTA 재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실제 노무라증권은 24일 “미 재무부는 올 4월에 발표하는 환율 보고서를 통해 중국과 한국, 대만 등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해당국의 환율 정책을 감시하고, 자국의 조달시장 참여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없을 것"이라며 “만약의 상황에 철저하게 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의 인준과정이 끝나는 대로 미국을 직접 방문할 계획인 등 정부 차원에서 발 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미 FTA는 미국이 NAFTA 외에 지금까지 맺은 13개의 FTA 중 가장 큰 경제권과의 양자 협상이다. 민간농업연구기관인 GS&J의 송주호 이코노미스트는 “한미 FTA 재협상은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한 트럼프에게 상징적 조치가 될 수 있다”며 “미국의 대 한국 무역수지 적자가 2013년 229억 달러에서 2015년 306억 달러까지 늘어난 만큼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다만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본부장은 “한미 FTA를 재협상 한다 해도 미국이 지금보다 이득을 얻는 균형점을 찾기 어렵다”며 “기존의 FTA가 한미 간에 모두 이익이 된다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