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18. 20:09ㆍC.E.O 경영 자료
[Weekly BIZ] 호기심 키우는 훈련을 하라… 새 세상이 열리리니
입력 : 2017.02.18 03:00
[Cover Story] 브라이언 그레이저 이매진엔터테인먼트 회장
직원에게 "이거 해" 대신 "어떻게 이 문제 해결할까" '질문 경영'의 놀라운 힘
호기심 많은 소년 브라이언은 글을 잘 읽지 못했다. 열 살이 됐는데도 책을 못 읽어 학교 성적표엔 종종 'F'가 찍혔다. '난독증(難讀症)'이 대중에 알려지기 전인 1950년대 미국이었다. 그는 다른 친구들처럼 고래, 공룡, 별에 관한 책을 읽고 싶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브라이언은 책 대신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질문하며 궁금증을 풀었다. 소년은 머릿속 하얀 도화지에 끝없는 이야기를 그려나가며 세상을 배웠고 이야기가 주는 감동에 푹 빠졌다. 어른이 된 브라이언은 결국 '스토리텔링'으로 먹고 사는 영화업계에 뛰어들었다. '다빈치코드' '8마일' '라이어라이어' '그린치' '아폴로13' 등 굵직한 할리우드 영화를 만든 브라이언 그레이저(Grazer·65) 이매진엔터테인먼트 회장이다. 그레이저 회장이 지금까지 만든 영화로 벌어들인 매출은 40억9800만달러(약 4조7300억원). 미국 내 영화 제작자 9위(박스오피스 모조 집계)에 해당한다. 그가 만든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발걸음한 관객 수도 6억명이 넘는다. 그레이저 회장은 미국 인기 드라마 '24'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 등으로 우수한 미국 TV 프로그램에 주는 에미상을, 노벨 경제학 수상자 존 내시 교수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로 오스카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 2007년엔 타임지(誌)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 ▲ 미국 영화 제작사 이매진엔터테인먼트의 브라이언 그레이저 회장은 “호기심이 창의성 있는 인재를 키우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
그레이저 회장은 지난해 출간한 '큐리어스 마인드(A Curious Mind)'라는 책에서 자신의 유별난 호기심이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창의력 있는 인재가 되려면 '호기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교와 기업, 사회가 호기심을 격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LA) 베벌리힐스에 있는 이매진엔터테인먼트 본사에서 그레이저 회장을 만나 그의 '호기심 철학'에 대해 들었다. 부스스한 회색 머리는 번개라도 맞은 듯 뾰족 치솟아 있었다. 1993년부터 매일 같이 고수하는 그만의 머리 스타일이다.
호기심은 혁신의 원동력
―왜 지금 호기심을 논해야 하는가.
"호기심의 힘은 대단히 저평가됐다. (판례와 뉴스 검색 엔진인) 넥시스에 검색해보니 2000년 '혁신'이란 단어는 미국 주류 매체에서 하루 260번 정도 언급됐고 '창조'는 90번 언급됐다. 그리고 2010년엔 혁신이 하루 660번, 창조는 550번으로 증가했다. 이에 반해 '호기심'이란 단어는 2000년이나 2010년이나 160번 정도 나오는 데 그쳤다. 혁신과 창조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는데, 사람들은 호기심에 대해선 전혀 얘기하지 않는다. 혁신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교과서를 외운다고 혁신이 나오는 게 아니다. 대신 사람들이 창조적이거나 혁신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불어 넣어줘야 한다. 호기심은 창조적 사고방식에 불을 붙이는 도구이자 혁신을 일깨우는 핵심 자질이다."
―호기심에 대해 이렇게 극찬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당신은 왜 호기심이 성공 동력이라고 생각하나.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생각하는 게 창의성 아닌가.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호기심을 갖고 태어난다. 다른 자질처럼 꾸준히 호기심을 키우는 훈련을 하면 이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을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다. 나의 취향과 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제껏 내가 알아온 것과 완전히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뜻이다."
―어떤 식으로 호기심을 늘려가야 하나.
"호기심은 질문으로 발현된다. 안타깝게도 요즘 사람들은 질문을 부정적으로 본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권위를 앞세워 질문을 무시한다. 어른이 되면 호기심을 갖는 것이 부적절하고 방정맞게 느껴진다. 요즘 사회는 질문이 너무 많은 사람한텐 '당신은 참 호기심이 많군요'라고 말하는데 여기엔 굉장히 틀에 맞지 않는 사람이란 의견이 녹아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질문을 했는데 어른들이 이것을 꾸짖으면 아이는 질문이 잘못된 행동이란 관념을 갖는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끈기있게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획일적인 시험제도가 보편화하면서 질문은 이탈 행위처럼 여겨진다. 사무실이나 일터에서도 호기심은 환영받지 못한다. 하지만 호기심은 현대인이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하고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열쇠다. 우리는 먼저 질문에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1991년 미국 서부영화 ‘파 앤드 어웨이(Far and Away)’ 촬영장을 찾은 그레이저 회장은 29세 배우 톰 크루즈를 불러 앉혔다.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들의 서부 개척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아일랜드와 LA를 오가며 촬영했다. 엑스트라 800명과 말 400필, 마차 200대가 동원되는 영화라 제작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루에 30만달러가 들었다. 배우들이 밥 먹고 잠자는 시간에도 돈은 쉬지 않고 시간당 1만2500달러씩 빠져나갔다. 사소한 것부터 비용을 줄여야 했다. 그레이저 회장은 톰에게 “자네가 리더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톰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했다.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모범을 보여 예산 안에서 영화를 완성할 수 있게 돕겠습니다. 화장실을 가야 하면 트레일러(대기실로 쓰는 캠핑카)까지 뛰어갔다가 다시 촬영장으로 뛰어오겠습니다!”
그레이저 회장은 당시 일을 떠올리며 “(부하 직원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권한을 주면서 스스로 책임감을 갖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며 “명령이 아닌 질문으로 경영해야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기심 경영 1
명령보다 질문으로 경영해라
―창의성 있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질문에 관대해지라고 했는데, 경영자 관점에선 질문하는 문화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나.
“우선 사람들은 ‘너 지금 이거 해’라는 명령을 들으면 즉시 그 일을 하기 싫어한다. 사람의 성향이 그렇다. 대신 그 사람의 의견을 묻는 말로 시작해라. 예를 들어 부하 직원에게 ‘당신과 내가 어떻게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할 수 있을까’ ‘당신의 의견대로 해보는 건 어떨까’ ‘당신은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해?’라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부하 직원은 자신에게 권한 또는 자율적인 범위 내에서 책임이 주어졌다고 느낄 것이다.”
―경영자가 일방적인 명령보다 질문을 하면 조직을 이끌기 더 쉽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부하 직원에게 질문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방법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것이다. 부하가 더 좋은 방법을 알면 그 방법대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나는 톰 크루즈한테 뭘 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다. 상황을 설명한 뒤 톰이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게 권한을 줬다. 촬영장에서 프로듀서와 감독은 ‘상사’다. 톰은 나의 ‘부하 직원’이지만 나는 그를 리더로 대한 것이다. 상사인 내가 어쩌다 가끔씩 아일랜드 촬영장에 가서 현장 사람들한테 ‘돈 좀 아껴 쓰세요’ ‘빨리빨리 찍으세요’ ‘밥값도 줄이세요’라고 명령한다면 어땠을까. 그럼 사람들 눈에는 LA에서 비행기 타고 날아와 이래라저래라 하는 프로듀서로 비칠 것이다. 나는 직원들을 문제 해결의 일부로 끌어들여 그들이 스스로 해결책을 만들도록 했다. 어떤 아이디어라도, 어떤 해결책이라도 좋다. 내가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보단 훨씬 효과적일 테니까. 그리고 이것은 ‘명령보다 질문으로 경영한다’는 마음가짐에서 시작한다.”
호기심 경영 2
여러 우물 파야 아이디어 나와
그레이저 회장은 “시야와 관점을 확장하기 위해 나와 전혀 무관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는 얘기도 열심히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호기심 대화’를 실천해왔다. 처음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해 배우려는 목적으로 시작했다.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유명한 영화 제작자나 작가가 길을 지나가면 쫓아가 잠깐 만나 달라고 사정했다. 지금은 전혀 영화계와 연관이 없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만난다. 본인 스스로 호기심을 채우고 새로운 관점에서 사고하는 힘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쿠바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 예술가 앤디 워홀과 제프 쿤스, 소아마비 백신을 만든 조너스 소크 박사, 수소폭탄을 만든 에드워드 텔러 박사, 멕시코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도 만났다. 그레이저 회장이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을 때, 카스트로가 물었다. “왜 당신은 머리카락이 그렇게 쭈뼛 서 있소.” 그레이저 회장이 답했다. “남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항상 그렇게 하고 다닙니다.” 그레이저 회장은 “누구든지 자신이 몸담은 산업의 사람들만 만나면 대단히 고립된, 좁은 시야를 갖게 된다”며 “나와 다른 분야의 관점과 지식이 나중에 언제 어떻게 쓸모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우물의 맛을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 ▲ 브라이언 그레이저 이매진엔터테인먼트 회장과 론 하워드 영화감독은 40편이 넘는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동그라미 속 사진들은 그레이저 회장이 제작한 작품들의 한 장면이다. /블룸버그
호기심 경영 3
전혀 모르는 사람을 쫓아다녀라
―지금도 ‘호기심 대화’를 위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쫓아다니고 있나.
“약속을 잡기 위해 몇 개월에서 몇 년에 걸쳐 공을 들인다. 편지를 쓰고 회유하고 여러 명을 귀찮게 한다. 영화나 TV에 써먹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는 힘을 훈련하기 위한 것이다. 완전히 서로 다른 분야를 접목했을 때 세상에 없던 아이디어가 나오듯, 나와 아예 동떨어진 분야에 대해 배울 때 창의적으로 남들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 ‘호기심 대화’는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명하고 바쁜 사람들이 일반인들을 쉽게 만나줄 수도 없다. 당신이 그간 해온 호기심 대화는 일반 대중에겐 어떤 의미가 있나.
“커리어 초반에는 돈이 없고 몸이 아프더라도 열심히 찾아가서 사람들을 만났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다. 정말 궁금했기 때문에 그런 끈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유명인을 만나는 건 중요하지 않다. 고립된 시각을 갖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호기심이라는 사다리를 오르지 않으면 나만의 생각 속에 갇히고 만다. 익숙함은 호기심의 적(敵), 그리고 창조적 사고방식의 적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데 너무 익숙해져 세상이 자기가 보는 것과 동일하다고 착각한다. 1800년대 미국 법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워트는 호기심이 발동하는 그 순간을 흘려보내지 말라고 했다. 흘려보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무지한 상태로 남게 된다고 말이다.”
“플랫폼 홍수 속 콘텐츠 좋아질 듯”
그레이저 회장이 영화 히트 작품을 대거 배출했던 시기(1990~2000년 초반)는 사람들이 영상 콘텐츠를 TV 혹은 VCR·DVD로 소비하던 때다. 지금은 인터넷과 모바일, 그리고 스트리밍이 대세가 됐다. 최근 그레이저 회장은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화성과 관련한 드라마 등 고품질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트렌드 변화 중심에 있는 그레이저 회장이 보는 영상 콘텐츠 산업의 미래는 어떨까.
―영상 콘텐츠 소비 방식이 ‘스트리밍’으로 바뀌고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들이 경쟁하고 있다. 이매진엔터테인먼트 같은 콘텐츠 제작사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넷플릭스, 아마존프라임, 훌루와 같이 주문형(온디맨드) 콘텐츠 플랫폼들이 등장한 것은 나 같은 고품질 콘텐츠 프로듀서한테는 대단한 기회다. 고품질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최근 우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과 함께 ‘마스’라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공상과학 드라마를 만들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등장한다. 이런 깊이 있고 품질이 높은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높다. 콘텐츠 생산자들에겐 무궁무진한 기회가 열렸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스트리밍 플랫폼 업체들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돈을 대단히 많이 쓰고 있다.
“마케팅과 광고 비용이 비싸지면서 영화 한 편을 개봉하는 데 드는 최소 비용이 3000만~5000만달러(약 600억원)로 치솟았고, 결국 콘텐츠 산업의 양극화를 불러왔다. 요즘 영화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저예산의 가벼운 코미디와 드라마, 그리고 그보다 몇십 배 많은 돈이 들어간 고예산 애니메이션과 액션 영화다. 마블, 픽사, DC코믹스 등 대형 브랜드에서 내는 시리즈물들이 대부분 고예산에 속한다. 이매진엔터테인먼트가 작년 10월 개봉한 ‘인페르노’는 제작 비용이 7900만달러였는데, 앞서 말한 값비싼 시리즈물에 비하면 예산이 3분의 1에 그친다.”
―어느 하나의 플랫폼이 독주하게 되진 않을까.
“플랫폼 간에는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자 입장에선 시장이 커졌기 때문에 좋다. 소비자들 역시 더 좋은 콘텐츠를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페이스북 라이브, 유튜브, 훌루, 넷플릭스, 쇼타임, HBO 등 여러 플랫폼이 있고, 전부 다 스토리텔링이라는 분야에 뛰어들어 뭔가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스토리텔링의 생김새는 조금씩 다르다. 호흡이 긴 영화일 수도 있고 그보다 더 긴 다큐멘터리일 수도 있고, 1분짜리 스토리일 수도 있다. 각 플랫폼의 소비자 취향도 많이 다르다. 따라서 플랫폼들이 소비자들의 취향을 잘 파악하는 것이 플랫폼 관점에선 중요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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