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20. 23:53ㆍC.E.O 경영 자료
“포용적 성장의 방점은 ‘성장’에 찍혀 있다··· 톱다운 방식 예산 편성 강화돼야”
백웅기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KDI 수석이코노미스트2017년 02월호
새해 경제전망들을 보니 한국경제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어떻게 진단하나.
1990년대 이후만 하더라도 IMF 외환위기 때만 빼면 평균 7~8%씩 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성장률은 6%대로 떨어졌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또 확 떨어졌다. 올해 KDI가 전망한 경제성장률이 2.4%다. 이제 저성장구조가 고착화됐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단순히 경기변환 사이클의 문제냐 아니냐인데 내 생각엔 구조적 성격이 강하다. 더 큰 문제는 잠재성장률 역시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구조적이라면 어디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기회균등에 문제가 생겼다. 요즘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는 사회 계층이동성에서의 문제, 즉 좋은 일자리에 갈 수 있는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고 차별적임을 말한다. 헬조선은 또 어떤가. 예전에는 개개인의 노력을 강조했다. 노력하면 뭔가 이룰 수 있고 꿈을 성취할 수 있다고. 그런데 요즘은 열심히 노력해도 그에 상응하는 결실을 거두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기회균등, 공정성, 계층이동성 등 모든 것이 부모세대에 비해 열악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포용적 성장’이라는 화두를 꺼내게 되는 거다.
국민들에게 ‘포용적 성장’이라는 단어는 아직 낯설다. 어떤 개념인가.
포용적 성장은 쉽게 얘기해 사회통합적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소기업 간, 산업 간, 세대 간, 종사자 지위에 따른 격차에 이르기까지 날로 심화되는 갈등과 분열로 훼손된 생산구조에서는 높은 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성장률도 낮을 수밖에 없다. 능력과 노력의 차이가 아니라 시장의 경직성에 기인하는 과도한 소득격차를 축소하고 효과적 재분배를 통해 탈락자의 시장 재진입과 취약층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요체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포용적 성장’을 정책어젠다로 삼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처음엔 세계은행(World Bank)이 개발도상국 지원을 위한 전략으로 장기적 시각에서 접근했다. 지금 같은 논의가 활발히 전개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다. 이때 개도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청년일자리 부족, 취약계층의 재취업 어려움 문제 등을 겪으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이 앞장서 당면 문제로 다루게 됐다. 특히 OECD에서는 장관급회의 어젠다로 포용적 성장을 채택하면서 이슈가 됐으며, 미 대통령보고서에도 등장했고 다보스포럼 주제로도 채택됐다. 이는 포용적 성장이 우리만의 이슈가 아니라 개도국은 물론이거니와 OECD에 속해 있는 상당한 선진국들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포용적 성장’을 그간 논의돼 온 ‘경제민주화’나 ‘사회적 경제’ 등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경제민주화’는 경제활동 과정에서 과도한 경제력 집중이나 소득격차가 발생하는 경우 국가가 이를 조정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헌법에도 명시돼 있는데, 소득불균형 완화의 측면에서 포용적 성장과 일맥상통한다. ‘사회적 경제’는 경제활동에 참여하거나 경제활동을 조정하는 시장과 국가가 적절한 자원배분에 실패해 거기서 소외당하는 경제주체들이 발생하게 되고, 그들이 협동조합·마을기업 등의 형태로 경제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포용적 성장이 강조하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사회적 기업), 경쟁적 시장구조 속에서 참여 기회를 잃은 기업에 새로운 기회창출을 지원(협동조합, 마을기업)한다는 점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개념들이 곧 포용적 성장인 것은 아니다. 포용적 성장의 방점은 ‘성장’에 찍혀 있고, 소득불균형 완화는 성장을 이루기 위한 전략 중 하나다. 만약 소득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어떤 수단(정책)을 썼는데 그 결과 불균형은 완화됐지만 경제성장에는 역행한다면 이는 포용적 성장이라고 볼 수 없다.
OECD에서 논의되는 포용적 성장을 위한 세부 과제들을 보면 구조개혁, 인적역량·교육, 노동·일자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한국의 과제는 무엇인가?
‘금수저가 갑질하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인식도 바뀌어야 하지만 각 분야에서 포용적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입법 조치, 법질서 확립, 공정한 법집행, 투명·신뢰사회로의 전환 등이 병행돼야 한다. 시스템과 제도에 의해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구현되는 사회로의 전환이 필수다. 무엇보다 좋은 경력을 쌓고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실질적 기회를 제공하는 요체는 ‘양질’의 일자리 제공일 것이다.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도 매우 중요한데 이 투자는 초기 아동기부터 시작해 의무교육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한다. 학업생태에서 취업생태로의 전환이 일어나면 노동생활 전체에 걸쳐 고용주와 노동자들이 기술에 투자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가 제공돼야 한다.
재정전문가로서도 한 말씀 부탁드린다.
포용적 성장 예산을 ‘성인지예산(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예산과정에서 고려해 예산이 성평등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예산 배분구조와 규칙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일련의 활동. 따라서 성인지예산은 전체 예산 중 특별한 예산의 종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산의 책정과 배분에 대한 과정을 일컬음.)’처럼 법으로 만들어 관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 단계가 아직 이르다면 포용적 성장을 위해 각 부처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예산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예산당국이 파악해야 한다. 예산 편성과정에서도 현재의 바텀업(bottom-up) 시스템은 지나치게 단위사업별로 접근해 부처 간 칸막이를 강화시키는 측면이 강하다. 전략적 자원 배분을 위해서는 2004년 도입했던 톱다운(top-down)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재정 당국이 포용적 성장이라는 전략 아래 복지나 미래성장동력과 같은 취약 부문에 대한 예산총량을 정한 뒤 각 부처에서 단위사업을 발굴하는 식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전제는 ‘포용적 성장이 국가적으로 긴급한 과제가 돼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OECD의 최근 논의를 보면 포용적 성장과 ‘생산성’에 대한 이슈가 눈에 띈다.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한 우리로서는 주목할 만한 것 같다.
중요한 이슈다. 저출산·고령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장래인구추계를 봐도 그렇고 고령화율, 노인부양비율은 계속 올라갈 거다. 고령화 사회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가 혁신이 떨어지고 그에 따라 경제성장도 둔화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산성은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우선 노동투입을 늘리는 방법이 있는데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서는 이민을 대폭 받지 않는 한 어렵다. 투자수익률이 많이 떨어져 있는 현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에 투자하라고 나설 일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본다면 대표적인 것이 벤처기업이다. 요즘 사회 전반적으로 창의를 많이 강조하는데 벤처는 누가 하느냐, 창업 아이디어를 지닌 사람이다. 모험자본도 받쳐줘야 한다. 그런데 고령화 사회에서는 나이든 사람일수록 모험을 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혁신할 수 있는 젊은 층에 인센티브를 주고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 마련돼야 한다.
끝으로 한 말씀 해주신다면.
올해는 대선이 있어 표를 얻기 위한 인기영합주의적 정책, 즉 포용적 성장정책의 탈을 쓴 포퓰리즘정책이 난무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소득분포를 보면 중위소득이 평균소득보다 적어 균등하게 분포돼 있지 않은 형태다. 이렇다 보니 표를 의식해 소득불균형 완화를 위한 소득이전정책을 과도하게 내놓을 수도 있다. 유권자들이 중·장기적 시각을 갖고 경계해서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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