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이재용과 고영태
2017. 2. 28. 04:51ㆍ이슈 뉴스스크랩
[매경시평] 이재용과 고영태
A34면 기사입력 2017-02-26 17:40 최종수정 2017-02-26 20:40
지금 국내에서 벌어지는 일은 평범한 법상식을 갖고 있는 필자의 눈에 너무나 이상하게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등을 통해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그러나 이들 재단을 장악해서 사익을 취하려던 고영태와 그 일당은 참고인 조사만 받았을 뿐 백주에 자유롭게 다닌다. 많은 국회의원들과 언론은 고영태를 심지어 '의인'으로까지 취급했다.
범죄 여부를 밝히는 증거나 재판도 받기 전에 구속하는 사유를 비교해보면 사법부가 두 사람을 지나치게 불균형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다. 먼저 증거를 보자.
이 부회장의 경우 특정 목적을 위해 '뇌물'을 바쳤다는 '증거'라고 할 것이 없다. '정황'이라고 얘기되는 것들만 있을 뿐이다. 재단 출연이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을 위한 '뇌물'이라고 하기에는 시기가 안 맞는다. 합병 결정 이후에 출연 요청을 받았는데, 그전부터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작업'했다고 보기 어렵고 그 증거도 확보되지 않았다.
반면 고영태 일당은 범죄를 기획하고 실행하려고 했던 물증이 있다. "틀을 딱딱 몇 개 짜놓은 다음에 빵 터져서 날아가면 이게 다 우리 것"이라거나 "한 방에 죽일 수 있다"는 등의 발언을 한 통화 파일이 일찍부터 검찰에 확보됐다. 그러나 검찰과 특검은 이들을 '피의자'로 조사하지 않았다. 특검은 "특검 기간을 연장해주면 조사하겠다"는 지극히 비법(非法)적인 발언까지 했다.
구속 사유도 마찬가지이다. 재판 받기 전에는 '무죄추정'이 원칙이고 그전에 구속하려면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부회장에게 '도주 우려'가 적용됐다. 개인재산이 8조원에 달하는 사람이 그걸 버리고 도주한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 유명한 사람인데 세계 어디에 가든 숨기도 어렵다. 반면 고영태 일당은 도주할 수도 있고 해외에 나가면 이들의 얼굴을 알아볼 사람도 별로 없다. 또 "월요일부터 기사 나간다.… 메일을 못 보도록 (계정을) 삭제해버려"라며 증거인멸을 시도한 통화 파일도 있다.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하다가 이 문제를 얘기하게 됐다. 이 친구는 법조계에서 잔뼈가 굵었는데도 "탄핵이 기각되면 나라가 두 동강 나니까 어떻게든 뇌물죄를 성립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여기가 지금 국민들이 두 동강 나 있는 지점인 것 같다. 이 친구는 탄핵이 성사돼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법이 불균등하게 적용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많은 정치인들과 언론도 이런 주장을 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신념을 법 위에 놓는 것이다. 신념은 크게 다를 수 있다. 서로 다른 신념이나 이해관계가 부딪칠 때에 공정하게 조정하는 틀이 법이다. 신념이 법보다 앞선다고 하는 순간 법치는 무너진다. 그러면 신념과 신념 간의 무한투쟁이 벌어지고 사법부가 한쪽의 신념에 따라 죄인을 양산해내는 일이 반복된다. 조선시대의 사화(士禍)와 다를 바 없다. 사법부가 그 수단이 되기 때문에 '사화(司禍)'라고 이름만 바꾸면 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지금 큰 산을 넘고 있다. 그동안 사법부는 탄핵을 성사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법을 무리하게 적용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피의자' 굴레조차 씌우지 않을 정도로 법을 느슨하게 적용해 왔던 것 같다. 앞으로 남아 있는 헌재의 탄핵 판결이나 다른 사법 처리과정에서는 평범한 법상식을 가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공정성이 발휘되기를 기대해본다.
공정성에서의 기본은 '법 앞의 평등'이다. 이것은 '금수저'에게도 '흙수저'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신념 때문에 이것이 무시되면 나라가 두 동강 나는 것에 더해서 사법 정의의 보루마저 없어진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지금 국내에서 벌어지는 일은 평범한 법상식을 갖고 있는 필자의 눈에 너무나 이상하게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등을 통해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그러나 이들 재단을 장악해서 사익을 취하려던 고영태와 그 일당은 참고인 조사만 받았을 뿐 백주에 자유롭게 다닌다. 많은 국회의원들과 언론은 고영태를 심지어 '의인'으로까지 취급했다.
범죄 여부를 밝히는 증거나 재판도 받기 전에 구속하는 사유를 비교해보면 사법부가 두 사람을 지나치게 불균형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다. 먼저 증거를 보자.
이 부회장의 경우 특정 목적을 위해 '뇌물'을 바쳤다는 '증거'라고 할 것이 없다. '정황'이라고 얘기되는 것들만 있을 뿐이다. 재단 출연이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을 위한 '뇌물'이라고 하기에는 시기가 안 맞는다. 합병 결정 이후에 출연 요청을 받았는데, 그전부터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작업'했다고 보기 어렵고 그 증거도 확보되지 않았다.
반면 고영태 일당은 범죄를 기획하고 실행하려고 했던 물증이 있다. "틀을 딱딱 몇 개 짜놓은 다음에 빵 터져서 날아가면 이게 다 우리 것"이라거나 "한 방에 죽일 수 있다"는 등의 발언을 한 통화 파일이 일찍부터 검찰에 확보됐다. 그러나 검찰과 특검은 이들을 '피의자'로 조사하지 않았다. 특검은 "특검 기간을 연장해주면 조사하겠다"는 지극히 비법(非法)적인 발언까지 했다.
구속 사유도 마찬가지이다. 재판 받기 전에는 '무죄추정'이 원칙이고 그전에 구속하려면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부회장에게 '도주 우려'가 적용됐다. 개인재산이 8조원에 달하는 사람이 그걸 버리고 도주한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 유명한 사람인데 세계 어디에 가든 숨기도 어렵다. 반면 고영태 일당은 도주할 수도 있고 해외에 나가면 이들의 얼굴을 알아볼 사람도 별로 없다. 또 "월요일부터 기사 나간다.… 메일을 못 보도록 (계정을) 삭제해버려"라며 증거인멸을 시도한 통화 파일도 있다.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하다가 이 문제를 얘기하게 됐다. 이 친구는 법조계에서 잔뼈가 굵었는데도 "탄핵이 기각되면 나라가 두 동강 나니까 어떻게든 뇌물죄를 성립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여기가 지금 국민들이 두 동강 나 있는 지점인 것 같다. 이 친구는 탄핵이 성사돼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법이 불균등하게 적용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많은 정치인들과 언론도 이런 주장을 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신념을 법 위에 놓는 것이다. 신념은 크게 다를 수 있다. 서로 다른 신념이나 이해관계가 부딪칠 때에 공정하게 조정하는 틀이 법이다. 신념이 법보다 앞선다고 하는 순간 법치는 무너진다. 그러면 신념과 신념 간의 무한투쟁이 벌어지고 사법부가 한쪽의 신념에 따라 죄인을 양산해내는 일이 반복된다. 조선시대의 사화(士禍)와 다를 바 없다. 사법부가 그 수단이 되기 때문에 '사화(司禍)'라고 이름만 바꾸면 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지금 큰 산을 넘고 있다. 그동안 사법부는 탄핵을 성사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법을 무리하게 적용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피의자' 굴레조차 씌우지 않을 정도로 법을 느슨하게 적용해 왔던 것 같다. 앞으로 남아 있는 헌재의 탄핵 판결이나 다른 사법 처리과정에서는 평범한 법상식을 가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공정성이 발휘되기를 기대해본다.
공정성에서의 기본은 '법 앞의 평등'이다. 이것은 '금수저'에게도 '흙수저'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신념 때문에 이것이 무시되면 나라가 두 동강 나는 것에 더해서 사법 정의의 보루마저 없어진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이슈 뉴스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기춘의 '대반격'.."DJ·노무현때 좌편향지원 그것도 범죄인가" (0) | 2017.02.28 |
---|---|
특검 박영수의 정체 (0) | 2017.02.28 |
롯데, 사드부지 교환 승인…28일 국방부와 교환계약 (0) | 2017.02.27 |
VX 미사일 한발에 12만명 사상…화학탄체 용접돼 해체 어려워 (0) | 2017.02.26 |
강일원 재판관, 병역기피·자녀특혜 비리 드러나 (0) | 2017.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