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유공자’가 누리는 귀족대우

2017. 3. 16. 20:06이슈 뉴스스크랩

‘5.18 유공자’가 누리는 귀족대우

기사승인 2017.03.15  23:20:01

 

 ‘광주5.18 유공자’는 10% 가산점 받는 금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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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운

1. 수만 명 자식들에까지 국가고시, 임용고시, 내부승진시험에 5-10% 가산점 제공

2. 국가기관, 국영기업, 금융기관, 대기업에 대한 취업우선 및 취업알선

3. 수억대의 일시 보상금, 월 수십-수백만 원의 연금

4. 본인, 배우자 및 자녀 학비 면제.  의료비 100%까지 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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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은행대출, 주택청약, 공과금, 교통비 항공료 무료 및 감면

6. 아들 병역면제(6개월 공익근무)  

국가고시 임용고시 5-10% 가산점, 공직자리 싹쓸이

‘5.18 유공자’, 이들의 자녀들은 국가고시, 임용고시에 5-10% 가산점을 받아 정부기관, 국가기관, 경찰, 법원, 검찰, 교원, 정부산하기관, 국영기업 등의 자리를 거의 싹쓸이하고 있으며, 금융기관 대기업 일자리까지 최우선으로 차지합니다. 노량진, 신림동 등에서 고생을 하면서 똑똑한 사람들이 5수 10수 탈락하는 이유는 바로 이들 5.18 유공자 자녀들이 먼저 차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특혜는 내부승진시험에도 적용됩니다. ‘5.18 유공자’ 아들은 병역도 면제되어 6개월 간 공익근무로 끝냅니다. 반면 병역 의무를 필한 사람들에 주어지던 2% 가산점은 김대중 시절에 소멸되었습니다.  

금전 혜택

‘5.18 유공자는 1990년부터 당시 화폐로 1인당 평균 5,800만원을 받았습니다. 최고액수는 3억 7,00만원, 최저액수 500만원이었습니다. 19세에 경찰을 닭장차에 가두었다는 공로로 2억을 보상받은 윤기권은 2001년 월북하여 대남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일시금에 추가해 매월 연금을 받습니다. 최고는 월 4,226,000원, 최저는 월 362,000원입니다. 1990년에 4억이라면 지금의 화폐 단위로 환산하면 얼마 이겠습니까?  태극무공훈장, 그 수훈자가 사망하면 참모총장이 상주가 되는 엄청난 훈장입니다. 그런데 6.25 전투에서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수십 년 동안 월 37만원으로 깍두기 하나를 놓고 밥을 먹는다 합니다. 

복지 혜택

1. 교육지원 : 본인, 배우자, 자녀에 학자금 수업료 전액면제, 대학원 특수학교에 장학금 지원

2. 취업지원 : 본인, 배우자, 자녀들에 취업알선 및 가산점 취업, 직업훈련 무료

3. 의료지원 : 본인 100% 무료, 가족 및 유족 30-60% 감면.

4. 금융대부지원 : 농토구입자금, 사업자금, 주택구입비 대부, 아파트 우선분양

5. 수송시설 이용료 감면 : 철도, 지하철, 시내버스, 시외버스, 고속버스, 내항여객선, 국내선 항공기 30-100% 무료.

6. 기타지원 : 양로지원, 보훈요양원 이용, 5.18 묘지 안장 및 부대비용 , 동사무소 수수료 면제, 고궁, 공원 무료, 개인택시 우선 면허  

해마다 늘어나는 5.18 유공자, 권노갑-한화갑 등 5,679명

5.18 유공자란 무엇인가? 1980년 5.18 광주 폭동 때 계엄군을 상대로 폭동을 일으키다 사망한 사람으로부터 뺨을 맞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2014년 7월, 광주시가 공식 확인한 5.18 유공자 수는 4,634명, 사망자 155, 행방불명 81, 상이 후 사망 110, 상이 3,378, 연행-구금 910명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탄핵기간에 슬며시 광주시가 권노갑 이훈평 등 폭동에 참여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을 포함해 117명을 추가하였습니다.  

2017년 2월 현재 5.18 유공자는 5,769명입니다. 3년 만에 무려 1,135명이나 늘어난 것입니다. 이 숫자는 광주시민 사망한 155명, 1심에서 유좌판결 받은 사람 282명을 보탠 437명을 13배 이상 부풀린 숫자입니다. 이들 중에는 주유소 휘발유 드럼통을 4번째 훔쳐가다가 총에 맞은 사람도 있는데 1억을 받았다며 광주시민들까지 입을 삐쭉입니다.  

유공자 명단과 공적 내용은 개인정보라 공개할 수 없다는 정부

하지만 베트남 전투부대에서 박격포 피격으로 부상당한 제 부하가 유공자신청 소송을 걸었고, 제가 나가 증언을 했는데도 행정법원 판사의 눈초리는 싸늘했습니다. 결국 이리 저리 천대만 받다 불허되어 지금은 다리에 살이 썩어갑니다. 이처럼 국가의 부름을 받고 조국을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내놓았던 참전장병들은 전사자나 부상자나 조국으로부터 차디찬 천대를 받고 있습니다.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분향소에는 김대중 눈치를 보느라 국방장관 해군총장 장군들은 물론 그 어느 군인들도 찾지 않았습니다.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은 보상금도 받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2억원이 지급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용산에서 불법농성을 하다 사망한 사람은 1인당 7억원, 세월호 희생자들에는 1인당 8억-12억이 지급되었고, 1989년 부산동의대에서 경찰관 7명을 불에 태워죽였다는 혐의로 종신징역을 받은 폭력학생에게는 2002년 6억원이 지급되었습니다. 국가폭력배인 경찰을 죽인 것은 최고의 민주화 공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광주시민들이 5.18 유공자인 이유 역시 국가 폭력배인 경찰과 군을 공격한 것이 최고의 민주화 공적이라는 것입니다. 광주-전라도 사람들은 시위현장에 가지 않은 사람들까지 5.18 유공자가 되었습니다. ‘5.18 유공자’가 받는 혜택이 하늘이라면 일반 ‘국가유공자’가 받는 혜택은 땅입니다. 이 많은 유공자들이 도대체 누구이며, 무슨 공적을 세웠기에 특별 귀족 대우를 받는 것인지 보훈처-광주시-국가기록원을 상대로 정보공개를 신청했지만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며 공개를 거부합니다. 이러한 혜택을 극력 보호하기 위해 박지원과 국민의당 38명이 5.18에 대해 이의 달지 말라는 “5.18 조롱금지법”을 국민의당 입법추진 제1호로 제기해놓고 있습니다.  

55만 민주화 유공자 자녀도 가산점 싹쓸이에 동참

3-6공 시대에 간첩질-반국가 활동을 해서 감옥에 갔던 사람들이 줄줄이 재심을 받아 1인당 수억에서 수십억의 보상금을 받았고, 이렇게 나간 국민세금은 2조가 넘습니다. 가산점을 누리는 대상자는 1990년 172,000여명, 2000년 560,000여명, 2002년 663,000여명, 2003년 718,000여명으로 무자비하게 늘었습니다. 김대중이 55만 명을 늘린 것입니다. 김대중이 무더기로 늘린 가산점 혜택자 55만명이 대체로 다 민주화 유공자 관련자들일 것입니다. 여기에 5.18 유공자 관련자 3만을 더하면 58만, 58만명이 가산점 혜택을 받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58만 규모가 가산점을 가지고 해마다 덤비니 남는 자리기 어떻게 있을 수 있습니까? 이 많은 가산점 수혜자들을 없애지 않으면서 고시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민주화의 성지는 5.18입니다. ‘5.18 유공자’를 없애버리면 민주화 유공자는 설 자리가 없어 즉시 소멸됩니다. 국가를 반역한 사람들이 국민 세금을 약탈해가고 1급 일자리들을 싹쓸이 하는 것은 국민저항운동으로 반드시 폐지시켜야 할 악입니다.

도대체 5.18이 무엇이기에

5.18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발생한 무장폭동이었습니다. 광주시민 155명이 사망했고, 군인23명, 경찰 4명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5.18을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386민주화 세력이 사회를 장악하면서 5.18은 전두환이 일으킨 내란사건인 것으로 뒤집혔습니다. 검찰 수사기록은 1980년 것이나 1995년 것이나 똑 같았지만 판사들의 해석이 정반대였습니다. 1997년 4월 17일의 대법원은 총기로 무장한 광주의 폭도들을 헌법을 지키기 위해 결집한 준-헌법기관이라는 참으로 기막힌 판결을 했고, 국가를 살인집단이라 판결했습니다. 사실과 전혀 다른 억지 판결이었습니다,  

검찰수사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대학생으로 위장한 맥가이버 집단 600명은 전투서열이 매우 높은 제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가 광주 톨게이트를 5월 21일 08시에 통과한다는 극비정보를 알아가지고 몽둥이 화염병 등을 소지한 채 매복해 있다가 08시가 되자 통과하는 차량부대를 기습해 사단장 지프차를 포함해 14대의 지프차를 털어가지고 군납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차량대열을 마주한 군납업체 사람들이 놀라서 신형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에 열쇠를 꽂아주었습니다. 이 600명은 전라남도 17개 시, 군에 꼭꼭 숨겨져 있는 44개 무기고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 12시부터 불과 4시간 만에 5,403정의 총기를 털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다이너마이트를 탈취해 전남도청에 운반해 놓고, 뇌관과 도화선을 연결해 2,100발의 폭탄으로 조립해놓고 계엄군에 광주시를 폭발시키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과연 이런 낯선 집단이 대한민국 헌법을 지키려 한 집단입니까? 이런 능력은 세계최고의 특공대나 할 수 있는 능력 즉 북한특수군의 능력입니다.

이어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015.5.5.부터 18개월 동안 선진국 정보기관에서 영상을 분석하던 전문가팀이 광주 현장사진들을 대거 발굴해 내고, 그 사진 속의 (일명 광수)478명 얼굴이 북한 핵심 권력층 인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입니다. 광주 얼굴과 북한 얼굴을 비교한 영상 화보집이 국영문으로 발간돼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이나 국과수에는 이러한 능력을 아직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광주는 478명의 얼굴 사진들을 6개월 동안 광주시 전체에 전시했지만 사실상 “현장 주역의 이 얼굴이 바로 나요”하고 나타난 사람 없습니다. 이로써 5.18은 김대중의 광주가 북한군 전투조 600명, 정치모략공작조 600여명, 계 1,200여명을 불러들여 국가전복을 목적으로 일으킨 여적폭동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