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어쩌다 592억 원이 된 박근혜 뇌물

2017. 4. 20. 04:54C.E.O 경영 자료

 

[송평인 칼럼]어쩌다 592억 원이 된 박근혜 뇌물

송평인 논설위원 입력 2017-04-19 03:00수정 2017-04-1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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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어디는 뇌물, 어디는 강요… 검찰도 확신 없이 특검 따라 
모래성처럼 쌓은 592억 원… 박근혜-최순실 경제공동체 입증 안 되면 다 무너져

송평인 논설위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 액수가 592억 원으로 정해져 기소됐다. 592억 원이나 되는 뇌물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에게 몰수 추징해야 할 돈은 없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특이한 뇌물이다.

검찰 기소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SK에 89억 원의 뇌물을 요구했으나 받지 못했다. 롯데로부터는 70억 원을 받았다가 돌려줬다. 이게 제왕적이라는 대통령의 수뢰 시도가 맞나 싶다. 어쨌든 여기 적용된 박 전 대통령의 정확한 혐의는 제3자 뇌물이다. 제3자는 최순실 씨가 아니라 미르·K스포츠 재단이다.

자신이 마음대로 돈을 꺼내 쓸 수 있는 재단을 만들고 그 재단에 돈을 넣도록 했다면 그것은 직접 받은 뇌물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제3자 뇌물은 한 단계 더 복잡하다. 미르·K스포츠 재단은 박 전 대통령이 아니라 최 씨가 좌지우지했다. 따라서 제3자 뇌물이 성립하려면 박 전 대통령과 최 씨 사이에 경제공동체 관계가 성립하고, 최 씨가 재단의 돈을 개인 용도로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다는 두 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하지만 경제공동체 관계는 말 자체가 생소하고 재단 출연금 중 실제 사용된 돈도 최 씨가 개인 용도로 마음대로 꺼내 썼다고 보기 어렵다.


검찰의 논리가 억지스럽다는 것은 다음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대기업들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낸 출연금은 모두 774억 원이다. 검찰은 이 중 삼성이 낸 출연금 204억 원만 뇌물로 보고 나머지 570억 원은 뇌물로 보지 않았다. 기업들이 각각의 재력에 비례해 다 같이 출연금을 냈는데 어떤 회사가 낸 돈은 뇌물이고 어떤 회사가 낸 돈은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건 누가 봐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 검찰도 삼성의 출연금이 뇌물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앞선 특검의 공소 유지에 혼란을 끼치지 않기 위해 특검의 논리를 따랐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삼성의 출연금 204억 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 원에 SK와 롯데가 요구받은 추가 출연금 159억 원을 더하면 379억 원이 된다. 뇌물 총액 592억 원에서 이 379억 원을 빼면 213억 원이 남는다.  

213억 원은 최 씨 딸 정유라를 위한 삼성과 코레스포츠의 후원계약 액수다. 그마저도 실제 지급된 돈은 77억 원이다. 삼성같이 돈 많은 회사가 대통령이 나서 그 회사로서는 가장 중요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도와주겠다는데도 화끈하게 돈을 주지 못하고 이 부회장이 대통령에게 레이저까지 맞을 정도로 우물쭈물했다는 건 우리가 통상 떠올리는 뇌물의 전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 돈은 미르·K스포츠 재단이 아니라 최 씨가 받은 돈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돈을 박 전 대통령이 최 씨로 하여금 받도록 한 제3자 뇌물이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로 구성했다. 왜 그랬을까.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과 최 씨를 이미 경제공동체로 봤는데 갑자기 최 씨를 제3자로 본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의 모든 뇌물 혐의는 그와 최 씨가 경제공동체임이 입증되지 않으면 다 무너지게 설계돼 있다.


경제공동체 관계가 입증된다 해도 뇌물이 성립하려면 대가가 있어야 한다. SK 회장의 사면은 그가 형기를 거의 다 채운 시점에 이뤄져 특혜라고 할 수도 없다. SK와 롯데 면세점 허가에 대해서는 5년이란 짧은 주기로 허가와 불허를 오가는 시스템이 불합리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승인에 대해서도 여론은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이런 것도 대가라고 우기면 우길 수 있겠지만 최소한 뇌물을 받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해준 것은 아니다.  

정유라 승마를 비롯한 최 씨의 각종 민원에 해결사 역할을 한 박 전 대통령의 행동은 분노를 자아낸다. 강요 행위만으로도 그는 탄핵되고도 남는다. 다만 뇌물 혐의는 억지스러운 데가 많다. 국회는 탄핵소추에서 수사도 안 된 뇌물죄를 집어넣었다. 특검은 사후적으로 이를 보완하느라 경제공동체라는 말까지 만들어 뇌물 혐의를 쥐어짜냈다. 헌법재판소는 뇌물죄 판단을 유보하고 기업 재산권 침해라는 헌법 위반으로 결정했다. 검찰은 특검에서 인계받은 뇌물죄를 이어받지 않을 경우 거센 후폭풍을 맞을 것이 두려웠다. 이것이 592억 원 뇌물죄에 이른 경과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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