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기업 58곳 최소 578명이 ‘부정채용’, 합격 취소는 2%뿐

2017. 9. 26. 19:30이슈 뉴스스크랩

[단독] 공기업 58곳 최소 578명이 ‘부정채용’, 합격 취소는 2%뿐

[한겨레] [공공기관 부정채용 민낯]

공공기관 313곳 채용감사 5년자료 전수조사

부정채용 58곳 중 37곳

지원자 또는 제3자 청탁에

성적증명서 등 문서 위·변조

고위간부 지시로 점수 조작도

윗선에서 은밀히 청탁 진행

응시자 책임 묻기 힘든 구조

“청탁 밝혀지면 임용 취소

관련 법규 강화할 필요 커”






“합격 여부만 미리 알려 달라.” → “검토해봐라.” → “합격시켜라.” 가볍게 날아든 청탁도 아래로 전달될수록 무거워진다. 청탁자 힘이 크면 종국에 지시가 된다. 하물며 “뽑아달라” 청탁도 넘친다. 가장 큰 피해자는 탈락자다. 탈락자는 약간의 수고를 도둑맞기도 하지만, 인생 항로가 통째로 바뀌기도 한다. 스물다섯 김인영(가명)씨는 지난해 초 한 공공기관 인턴직에 지원했다 탈락했다. 정규직도 아닌 인턴 자리에까지 청탁이 끼어든 탓이다. 돈 없고 ‘빽’ 없는 김씨의 자리를 ‘연줄’ 있는 누군가가 가로채기 했다. 부정 합격자는 인턴 경력을 바탕으로 더 좋은 자리에 또 ‘빽’을 써 들어갔을지 모른다.

김씨는 2015년 하반기부터 187차례나 입사 원서를 쓴 끝에 올해 초 한 금융사에 취업했다. 김씨가 도둑맞은 것은 공공기관 인턴직 한번뿐이었을까.



한겨레

지난해 11월 유일호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6년 공공기관 채용박람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취업 준비생들에게 꿈의 직장인 공공기관 5곳 중 1곳은 채용 부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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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 새 공공기관 5곳 중 최소 1곳꼴로 청탁에 의한 성적 조작 등 ‘부적정한 채용’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가 채용비리를 취재하는 동안 “왜 우리 기관만 문제 삼느냐”는 각 기관의 불평이 억지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채용 과정에서 부당한 특혜를 입은 합격자가 분석 대상 313개 기관에서 최소 578명에 이르는 것으로 25일 집계됐다. 외부 공직자의 청탁, 지원 서류 변조, 점수 조작 등 노골적 범죄행위가 특정한 1인을 입사시키기 위해 보란 듯이 이뤄졌다. 그때마다 수많은 청년들이 영문도 모른 채 ‘들러리’를 섰다.

하지만 이런 부정행위가 드러나 합격 내지 임용이 취소된 이들은 14명(2.4%)뿐이었다. 회사 안팎 감사 기구가 해임 처분을 통보했거나 검찰 수사가 착수된 뒤였다. 불공정 합격자 100명 중 97명은 채용 비리에 따른 법적 책임은커녕 신분상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한겨레>가 지난 두달 남짓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실 16곳을 통해 정부 지정 공공기관 332곳 가운데 313곳(94.3%)으로부터 채용 관련 감사 자료들을 받아 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이 가운데 2013년 1월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만 외부 감사기구들로부터 ‘부적정한 채용’으로 지적받은 곳이 58곳으로 파악됐다. 분석 대상의 18.5%를 차지한다. 이는 최소치다. 언론 보도 뒤에야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해 사실로 확인한 부정채용 사례도 있다. 여전히 숨은 사례가 많다는 추정이 지나치지 않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수년에 걸쳐 이뤄진 채용비리를 구조화된 설문지를 바탕으로 전수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부적정한 채용이 있었던 58곳 중 37곳(64%)에선 심각한 부정이 이뤄졌다. 지원자 또는 제3자가 채용 청탁을 했거나 성적증명서, 경력증명서 등 문서를 위·변조했거나, 채용기관의 사장이나 고위 간부의 부당한 지시와 개입으로 점수 조작, 전형 기준과 절차 변경, 채용 인원 증대 등 적극적인 불법행위가 있었다.

나머지는 비공개 특채, 특정인을 위한 맞춤형 공채, 채용 제도의 미비, 규정 오인, 행정 착오나 실수 등 채용기관의 부정 의도가 “불분명하다”(감사원)며 주의, 개선 시정 권고 등을 받은 경우였다. 하지만 ‘맞춤형 공채’ ‘비공개 특채’ 따위의 이면에 실제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특히 청탁은 없었는지까지 감사원 등이 충분히 살피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감사로 불법 행위가 적발된 경우마저 청탁의 뒷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경우는 적기 때문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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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채용 의도가 있든 없든 억울한 탈락자가 생겼다는 사실이 달라지진 않는다. 2013년 강원랜드 신입채용 때 자유한국당 의원 3명과 회사 감사위원장, 임직원까지 부정청탁자로 이름을 올렸다는 내부 감사 사실이 최근 <한겨레> 보도로 드러났다. 그러나 유력자 청탁과 성적표 조작에 힘입어 취업의 바늘구멍을 뚫은 수혜자들 중 합격이 취소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2012년 11월 신규채용 때 고위 임원이 채용청탁을 받은 지원자의 점수를 고쳐 순위를 조작하고 채용 계획인원을 늘려가며 부정 채용을 했다가 들통났다. 그러나 부정합격자는 별 탈 없이 재직 중이다.

부정 채용은 도덕적 해이를 넘어, 심각한 범죄 행위이지만 불공정한 게임의 결과를 ‘원인 무효화’해 바로잡는 경우가 드물다. 감사원 관계자는 “지원자가 허위서류를 제출하는 등 본인의 귀책 사유가 확인되고 그 행위가 채용기관이 공지한 ‘합격 취소’ 요건에 부합해야, 그것을 근거로 ‘임용 취소’ 처분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공기관 채용 비리의 대부분이 지원자 본인의 서류 조작보다는 해당 기관장이나 고위 임원의 인맥, ‘힘 있는 제3자’의 청탁, 낙하산 인사 등 정치적 거래에서 비롯하는 게 현실이다.

부정 합격자의 임용 취소 요건을 응시자 귀책 사유만으로 한정해서는 한계가 너무 크다는 뜻이다. 이상민 한양대 교수(경영)는 “응시자 귀책 사유가 없더라도 채용 과정에서 상당한 외부 압력이나 청탁이 밝혀지면 임용 취소 규정을 확대 적용하고 채용 공정의 엄격한 기준을 갖추도록 관련 법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고용이 안정적이고 연봉도 높아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들이 구직자들에게 청탁이나 서류 조작 등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일단 합격만 하면 된다는 그릇된 심리를 부추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