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前대통령 법정발언]
직접 쓴 원고 4분간 읽고, 변호인 전원 사퇴 결정… "참는게 능사 아닌 것 같다"
6개월만에 입 연 박 前대통령… 떨리는 목소리로 "참담·비통"
유영하 변호사 "殺氣 가득한 법정에 피고인 홀로 두고 떠난다"
지지자들, 재판부 향해 高聲
"재판장님 말씀에 대해 피고인(박근혜 전 대통령)도 할 말이 있습니다!"
16일 오전 10시 5분쯤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재판 시작 5분 만에 유영하 변호사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며 재판장인 김세윤 부장판사를 향해 발언하자 법정이 크게 술렁였다. 재판부와 검찰, 방청객들의 시선이 모두 유 변호사 옆자리에 앉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쏠렸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 이래 80차례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한 번도 의견을 말한 적이 없었다. 첫 공판 인정(人定)신문 때도 '네' 하며 짤막한 답변만 했고, 재판부가 여러 차례 '할 말 있느냐'고 발언권을 줬을 땐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그런데 이날은 발언을 신청한 것이다. 김 부장판사가 지난 13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다시 발부해 구속 기한을 연장한 일과 관련해 "피고인에 대한 추가 영장 발부는 법리적으로 위법하지 않다. 최대한 재판을 신속히 진행해 구금 기간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한 직후였다.
16일 오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원의 구속 연장 결정 후 처음 열리는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앞으로 사실상 재판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
무테안경을 쓴 박 전 대통령은 피고인석에 앉아 준비해 온 원고를 약 4분간 읽었다. "구속돼 주 4회씩 재판을 받은 지난 6개월은 참담하고 비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
떨리던 목소리는 자신의 결백을 강조하는 대목부터 단호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저는 롯데·SK뿐만 아니라 재임 기간 그 누구로부터도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사실이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고 했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며 발언을 마무리한 박 전 대통령의 시선은 내내 책상 위에 올려진 원고에 고정돼 있었다.
방청석에 있던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떤 방청객은 재판부를 향해 "천벌을 받을 겁니다"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하며 소리쳤다.
김세윤 부장판사가 '20분간 휴정(休廷)하겠다'며 법정 분위기를 식히려 했다. 그러나 휴정 이후 유영하 변호사가 "변호인들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피고름을 토하는 심정을 억누르며 살기(殺氣)가 가득한 법정에 피고인을 홀로 두고 떠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방청석 곳곳에서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유 변호사는 "이번 피고인에 대한 재판부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는 사법 역사에 치욕적인 흑역사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도 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김 부장판사는 수차례 헛기침을 한 뒤 유 변호사 등의 사임을 만류했다.
김 부장판사는 "변호인들이 모두 사퇴하면 결국 구금 일수가 늘어나 피고인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지만 변호인단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결국 50분 만에 재판을 끝내며 다시 한 번 변호인단에 사임을 재고(再考)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때 한 여성 방청객이 "나를 사형시켜 달라"고 법정에서 울부짖다 법원 관계자에게 끌려나가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10일부터 서울중앙지법 앞에 천막을 치고 철야 농성을 벌여온 지지자 50여 명은 이날도 태극기를 흔들며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날 변호인단의 전원 사임 결정은 박 전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지난 13일 법원이 구속영장을 추가로 발부하자 회의를 거쳐 여러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변호인단은 박 전 대통령을 서울구치소에서 접견해 이런 방안들을 전달했고 박 전 대통령이 이 방안들 가운데서 전원 사임하는 것을 최종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읽은 원고 역시 주말 동안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 독방에서 직접 작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인단과 마지막에 내용 조율만 한 번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쓴 그대로"라고 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은 그동안 재판 진행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해 발언을 참아 왔다"며 "그런데 최근에는 '참는 게 능사가 아닌 것 같다'는 뉘앙스로 말씀을 좀 했다"고 전했다.
[신수지 기자]
직접 쓴 원고 4분간 읽고, 변호인 전원 사퇴 결정… "참는게 능사 아닌 것 같다"
6개월만에 입 연 박 前대통령… 떨리는 목소리로 "참담·비통"
유영하 변호사 "殺氣 가득한 법정에 피고인 홀로 두고 떠난다"
지지자들, 재판부 향해 高聲
"재판장님 말씀에 대해 피고인(박근혜 전 대통령)도 할 말이 있습니다!"
16일 오전 10시 5분쯤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재판 시작 5분 만에 유영하 변호사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며 재판장인 김세윤 부장판사를 향해 발언하자 법정이 크게 술렁였다. 재판부와 검찰, 방청객들의 시선이 모두 유 변호사 옆자리에 앉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쏠렸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 이래 80차례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한 번도 의견을 말한 적이 없었다. 첫 공판 인정(人定)신문 때도 '네' 하며 짤막한 답변만 했고, 재판부가 여러 차례 '할 말 있느냐'고 발언권을 줬을 땐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그런데 이날은 발언을 신청한 것이다. 김 부장판사가 지난 13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다시 발부해 구속 기한을 연장한 일과 관련해 "피고인에 대한 추가 영장 발부는 법리적으로 위법하지 않다. 최대한 재판을 신속히 진행해 구금 기간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한 직후였다.
16일 오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원의 구속 연장 결정 후 처음 열리는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앞으로 사실상 재판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
무테안경을 쓴 박 전 대통령은 피고인석에 앉아 준비해 온 원고를 약 4분간 읽었다. "구속돼 주 4회씩 재판을 받은 지난 6개월은 참담하고 비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
떨리던 목소리는 자신의 결백을 강조하는 대목부터 단호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저는 롯데·SK뿐만 아니라 재임 기간 그 누구로부터도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사실이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고 했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며 발언을 마무리한 박 전 대통령의 시선은 내내 책상 위에 올려진 원고에 고정돼 있었다.
방청석에 있던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떤 방청객은 재판부를 향해 "천벌을 받을 겁니다"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하며 소리쳤다.
김세윤 부장판사가 '20분간 휴정(休廷)하겠다'며 법정 분위기를 식히려 했다. 그러나 휴정 이후 유영하 변호사가 "변호인들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피고름을 토하는 심정을 억누르며 살기(殺氣)가 가득한 법정에 피고인을 홀로 두고 떠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방청석 곳곳에서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유 변호사는 "이번 피고인에 대한 재판부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는 사법 역사에 치욕적인 흑역사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도 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김 부장판사는 수차례 헛기침을 한 뒤 유 변호사 등의 사임을 만류했다.
김 부장판사는 "변호인들이 모두 사퇴하면 결국 구금 일수가 늘어나 피고인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지만 변호인단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결국 50분 만에 재판을 끝내며 다시 한 번 변호인단에 사임을 재고(再考)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때 한 여성 방청객이 "나를 사형시켜 달라"고 법정에서 울부짖다 법원 관계자에게 끌려나가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10일부터 서울중앙지법 앞에 천막을 치고 철야 농성을 벌여온 지지자 50여 명은 이날도 태극기를 흔들며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날 변호인단의 전원 사임 결정은 박 전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지난 13일 법원이 구속영장을 추가로 발부하자 회의를 거쳐 여러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변호인단은 박 전 대통령을 서울구치소에서 접견해 이런 방안들을 전달했고 박 전 대통령이 이 방안들 가운데서 전원 사임하는 것을 최종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읽은 원고 역시 주말 동안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 독방에서 직접 작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인단과 마지막에 내용 조율만 한 번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쓴 그대로"라고 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은 그동안 재판 진행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해 발언을 참아 왔다"며 "그런데 최근에는 '참는 게 능사가 아닌 것 같다'는 뉘앙스로 말씀을 좀 했다"고 전했다.
[신수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