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 반 아크 콘퍼런스보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 간 통상 갈등이 단기적으로 세계 경제 성장세를 꺾진 못하겠지만 경제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무역전쟁이 지속되면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 의사 결정을 지연시켜 경제 성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보호무역주의에 의해 세계 경제가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11일 독일 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9%로 유지한다고 언급하면서 "IMF가 6개월 전 암시했던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은 징조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가장 크고 어두운 징조는 무역이 이뤄지는 방식과 다국적 기구들이 운영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발생한 신뢰의 저하"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관세 부과가 촉발한 무역전쟁 위협이 세계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라가르드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은 캐나다 퀘벡주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G7 공동성명을 거부하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맹비난하면서 불거졌다. 캐나다 영국 등은 미국의 철강 고율 관세에 맞대응해 보복관세를 매기겠다는 방침을 강조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보복한다면 실수하는 것"이라고 상대 교역국들을 압박했다.
유럽연합(EU)은 이날 G7 공동성명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행보에 일침을 가했다. 마르가리티스 시나스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같은 날 정례브리핑에서 "EU는 G7 회의 폐막 때 채택된 공동성명에 찬성하며 국제적이고 법규에 기반을 둔 다자 시스템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캐나다 하원은 미국의 철강 관세 조치를 비난하면서 자유당 정부의 보복관세 부과 결정을 초당적으로 지지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한편 콘퍼런스보드가 이날 발표한 올 1분기 `글로벌 소비자신뢰지수`에서 한국이 최악의 경제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베네수엘라와 비슷한 수준을 보여 충격을 주고 있다. 조사 대상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 정도로 한국 소비자가 한국 경제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콘퍼런스보드는 세계 64개국 소비자 3만2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소비자신뢰지수 조사에서 베네수엘라가 57로 최하위에 머물렀고 한국은 59로 62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인도가 130으로 1위를 차지했고 필리핀(128), 인도네시아(127), 베트남(124), 미국(123)이 그 뒤를 이었다. 무난한 경제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중국이 115, 유럽의 맹주 독일이 108에 달했다. 반면 자국 통화가치 급락세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83)를 비롯해 정치 불안 리스크에 노출된 이탈리아(66)가 하위권을 형성했다. 소비자신뢰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낙관과 비관의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100 이상이면 경제 여건을 낙관적으로 보는 소비자가 많다는 얘기다. 이번 1분기 조사 평균치는 106으로 작년 4분기(105)보다 다소 개선됐다.
린 프랑코 콘퍼런스보드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매일경제 기자와 만나 "한국 경제는 대내적으로 노동시장이 불안을 겪고 있고, 대외적으로 글로벌 무역전쟁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며 "한국 소비자들이 이런 부정적 경제 변수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해석했다.
대규모 감세 등 경기부양책 `약발`을 받고 있는 미국은 올 1분기 소비자신뢰지수 123을 기록해 탄탄한 소비심리를 반영했다. 글로벌 선진경제권 36개국 중 미국 독일을 포함한 14개국 소비자신뢰지수가 작년 말 대비 2포인트 이상 개선된 것으로 집계됐으며 전체 조사 대상 64개국 중 17개국은 하락세를 보였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